
위화 작가의 산문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은 그가 베이징, 프랑크푸르트, 뉴욕, 서울 등 세계 곳곳에서 강연한 내용을 한 권으로 묶은 두툼한 책이다. 그의 날것 그대로의 육성이 문자로 기록된 이 책은, 수십 년 전 골방에서 창문도 열지 않고 줄담배를 피우던 한 작가 지망생이 진솔한 언어로 세계인의 마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위화는 현실에서 문학이 갖는 위치를 먼저 사유한다.
현실이 하나의 '법정'이라면, 문학은 과연 어느 자리에 앉은 걸까?
위화에 따르면, 우선 문학은 피고석에도 원고석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문학은 현실을 재단하고 판정하는 판관 역시 아니고, 또 배심원단 중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한 명이지도 않다.
위화는 현실의 법정에서 문학은 서기원의 자격을 획득한다고 봤다. "법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 할 때는 서기원의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발표 당시 적잖은 논쟁의 대상이 됐던 작품들이, 훗날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지의 걸작을 상상해보자. 이 작품에는 현실의 법정에서 발생한 사건을 낱낱이 기록하려는 서기원의 의지가 개입된다. 이 작품이 동시대적으로 읽힐 때, 여기에는 그 시대에 통용됐던 기준이 작용한다.
하지만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들은, 이 작품이 집필될 당시의 사람들은 이미 죽고 없다. "한 시대의 옳고 그름, 고마움과 원한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걸작의 위상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위대한 정신을 기록한 책들은 그래서 당대의 독자나 비평가를 겨냥하지 않고, 후대의 독자나 비평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위화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문학의 한 형태로 '넓은 문학'을 이야기한다. 문학은 우물 속의 인간이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강력한 언어다. 저 하늘은 삼라만상을 포괄할 만큼 넓은 크기다.
넓은 문학을 위해선 자신을 초극해야 한다. 위화는 습작생 시절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흠모해 그의 문학을 체화하고자 4년간 힘썼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한 작가의 스타일을 부단히 연구하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제약이 됐다고 느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더 이상 날개가 아니라 함정이었다"고 생각한 그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버렸다. 함정을 하나씩 넘음으로써 그는 지금의 위화로 거듭났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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