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문학과 미학을 가르치던 교수가 정부 임시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겪은 좌충우돌 근무기다. 서로 다른 세상이 충돌한 이야기 안에는 공무원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뿐 아니라 지역과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시선, 책과 문화에 대한 사랑과 신념이 녹아 있다.
이미 20대 중반에 문학박사가 돼 대학 강단에 10년 넘게 선 젊은 학자가 돌연 공무원 사회에 발을 들인 건 "사회를 이해해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중국엔 박사 학위자에게 지방 행정기관 임시직으로 근무하며 정무를 훈련받게 하는 '박사 봉사단' 제도가 있어 여기에 자원했다. 저자는 열정적으로 공무에 임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았던 자기 경험을 인터넷에 글로 올렸다.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중국중앙TV(CCTV) 등 방송에도 소개됐고, 2024년엔 아예 책으로 출간해 중국 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가 시안시 베이린구 문화관광체육국의 부국장으로 부임해 근무한 건 2020~2021년. 시안은 진·한·수·당나라의 수도였던 옛 '장안'으로, 중국 천년 고도이자 북서부 개발의 중점 도시다. 저자는 특히 베이린구의 첫 공공 도서관을 짓는 업무를 맡았다. 입지, 장서 등 어느 하나 호락호락한 게 없었다. 햇빛이 드는 창가와 나무 그늘은 언감생심, 당장 연내 복합쇼핑몰 지하에 도서관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 몇 권을 사는 데에도 이해관계가 얽힌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대강 업자들이 가져오는 장서를 받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그들도 잇속을 챙겼겠지만, 저자는 "도서관의 영혼은 도서 목록이니 요긴한 곳에 돈을 써야 한다"며 타협하지 않는다. 목록 하나하나 뜯어보며 지역사회와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양서를 들였다. "내가 꾸릴 책장을 모두 삼류 서적으로 채운다면 그 사이를 걸을 때마다 얼마나 풀이 죽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책 애호가의 순수한 열정이 묻어난다.
중국 공산당 정부의 실무자들은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업무 담당과 직급을 따지고 내실보다 허울을 앞세우는 관료제의 폐단은 어디든 크게 다르지도 않다. 저자는 공무원의 의전이나 특유의 말투에 젖어 들지 않도록 다짐하는가 하면, 천편일률적 사무실의 자기 공간만큼은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로 소소하게 장식하며 하나씩 자기 색깔을 입혀 나간다.
점차 종이가 사라지고 즐길 거리도 많아진 시대에, 종이책과 도서관은 왜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저자의 글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추천사를 쓴 저자의 박사 지도교수인 왕야오 쑤저우대 문과대 교수는 "책과 숟가락, 망치, 자동차 바퀴 혹은 가위는 똑같이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 일단 발명되면 고칠 필요가 없다"는 움베르트 에코의 말을 인용했다. 좋은 도서관이 상징하는 '빛'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기에 그 존재 가치도 대체될 수 없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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