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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원주민 출신 작가, 남미수탈의 역사를 그리다

자이데르 에스벨 작품 서울 전시
형광색 안료로 강한 색감 특징

  • 김유태
  • 기사입력:2025.04.25 16:02:17
  • 최종수정:2025-04-25 16: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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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는 멀어 보인다. 예술은 숭고한 이데아를 지향하고, 정치는 척박한 현실에 기초해서다. 둘은 재회하지 못할 친구처럼 멀다. 그러나 브라질 원주민 출신의 현대미술가인 자이데르 에스벨(1979~2021)에게 예술은 정치를 겨냥한, 그리하여 현실을 갱신하는 힘을 가진 무엇이었다. 예술의 도구화가 아닌, 숭고한 미학과 현실 개조가 상호 조응하는 예술이었다.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고민한 에스벨의 예술 세계를 아티비즘(artivism)이라 부른다. 예술(art)와 사회운동(activism)의 합성어다.

에스벨의 생전 '아티비즘' 작품을 서울 한복판에서 확인 가능한 전시가 서울 청담동 갤러리 글래드스톤에서 열린다. 짙은 검은색 위의 형광빛 안료를 사용한 그의 작품은 인간의 권리에 대한 하나의 깊은 선언서이기도 하다.

남미 수탈의 역사를 16개 캔버스에 만화 형식으로 고발한 자이데르 에스벨의 2016년 작품 '무제(Untitled)'.  김유태 기자
남미 수탈의 역사를 16개 캔버스에 만화 형식으로 고발한 자이데르 에스벨의 2016년 작품 '무제(Untitled)'. 김유태 기자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에스벨의 2020년 작품 'A festa da chegada das chuvas'가 눈에 들어온다. '우기를 맞이하는 축제'란 뜻의 포르투갈어다. 이 작품은 중앙의 핑크빛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우주와 조응하는 자연과 인간이 형상화돼 있다. 신화적 식물인 우주목(cosmic tree)을 연상시키는 에스벨의 저 나무는 인간과 자연, 우주와 생명의 관계망을 떠올리게 한다.

에스벨의 관심사는 그가 브라질 원주민 출신의 작가란 사실과 늘 유관했다. 그는 아프로-브라질리안 공동체와 원주민, 즉 역사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향했는데 이는 남미가 지배국에 의해 당초 살아온 공간으로부터 '추출'돼 버린 역사 때문이었다. 탈식민주의적 경향은 글래드스톤 지하 1층에 전시된 2016년 작품 '무제'에서도 두드러진다.

1960년대 금 수요가 폭증하면서 남미는 수탈의 역사를 경험한다. 에스벨은 16개 캔버스에 '만화' 형식으로 그려진 이 작품을 통해 식민주의를 고발해낸다.

금이 채굴되고, 송전탑이 세워지면서 자연은 폐허로 변해갔고 인간의 목숨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에스벨은 이 작품들을 통해 지옥도로 변해버린 인간의 땅, 그리고 그곳에서 행해졌던 악을 사유해낸다.

에스벨은 브라질 원주민 집단 마쿠시족의 일원이었으며 화가일 뿐만 아니라 교육자이자 작가, 큐레이터, 활동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41세 때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로 발견됐는데, 그가 남긴 작품들은 오히려 생생히 살아 신화적 존재들, 그리고 영혼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 중이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무료.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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