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뼈빠지게 모아 놓으면 인간이 다 가져간다”…이 녀석들, 화낼 줄 아는걸까 [Book]

벌의 마음 라스 치트카 지음, 고현석 옮김, 형주 펴냄

  • 송경은
  • 기사입력:2025.04.20 06:23:05
  • 최종수정:2025.04.20 06:23:05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벌의 마음
라스 치트카 지음, 고현석 옮김, 형주 펴냄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벌도 감정을 갖고 있을까. 라스 치트카 영국 퀸메리대 감각행동생태학 교수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벌들이 꽃에 앉을 때마다 모형 게거미의 공격을 받도록 했다.

이후 벌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꽃에 내려앉길 매우 주저하게 된 것은 물론, 착륙 전 모든 꽃을 광범위하게 살펴봤다. 그리고 꽃에 거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도 착륙하기를 거부하는 벌도 나타났다.

벌들은 공격을 받은지 며칠이 지난 후에도 이런 불안행동을 계속했고, 때로는 마치 유령을 보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일종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호소한 것이다.

치트카 교수는 “벌들은 포식의 위협이 전혀 없는, 완벽하게 좋은 꽃조차 거부하는 기이한 심리적 효과를 보여줬다”며 “이는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과 동일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신간 ‘벌의 마음’은 30년 간 꿀벌 연구에 매진해온 치트카 교수의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꿀벌의 감각과 인지능력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에 따르면 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하다.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숫자까지 식별하며,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간단한 도구 사용법과 추상적 개념을 학습할 수 있다. 또 벌은 사람과 비슷한 감정을 지녔으며 계획과 상상이 가능하고, 자신을 다른 벌과 구별되는 독특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설명

치트카 교수는 “벌들은 감정과 비슷한 상태를 느낄 수 있다”며 “벌들에게 어느 정도의 의식적 자각이 있다는 암시적 증거가 나왔다”고 밝혔다.

치트카 교수는 벌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도록 훈련을 진행한 결과도 공개했다. 벌에게 흑백으로 된 사람의 얼굴사진 여러 장을 보여준 뒤, 그 중 정해진 하나를 고르면 설탕을 보상으로 주는 방식이었다. 반복된 실험에 참여한 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얼굴 사진 가운데 연구진이 의도한 얼굴을 찾아냈다.

그는 “12~24회의 훈련만 거치면 벌들이 이 같은 얼굴인식 과제를 능숙히 수행한다”고 밝혔다. 일부 벌들은 다른 벌보다 더 강한 호기심과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군체 내에서 한 개체만 훈련시켜도 그 기술이 모든 벌에게 빠르게 확산됐다.

치트카 교수는 벌이 식물의 수분을 도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유용한 존재임과 동시에 지각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벌의 생존을 보장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벌이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있고, 이에 따라 우리가 어떤 태도로 벌을 대하는지도 벌의 보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이다. 그는 “우리는 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