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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AI지각변동] 책 제목에 AI·챗GPT 들어가야 팔린다

출판·문학 트렌드 급변
관련 도서 年 553종 출간
작년 판매 65.3% 급증해
번역·편집·창작 의존도 쑥
제작시간 줄여 도움되지만
저작권·윤리 문제는 과제
문학 번역은 여전히 제한적

  • 박윤예
  • 기사입력:2025.02.13 16:48:38
  • 최종수정:2025-02-18 15: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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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그린 저자와 AI의 공동작업 이미지.   챗GPT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그린 저자와 AI의 공동작업 이미지. 챗GPT
일상생활 속에 깊게 파고든 인공지능(AI)의 영향이 출판계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AI 관련 도서가 1년 만에 2배 이상 많이 쏟아져 나왔고, 출판계 내부에서도 번역·편집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보의 신뢰성과 정확성이 중요한 보수적인 출판계답게 AI 활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13일 예스24에 따르면 정보기술(IT)·모바일 분야 내 AI 관련 도서가 작년 553종 출간돼 2023년 234종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이들의 작년 판매량 역시 전년 대비 65.3% 증가했다. 책 제목에 AI나 챗GPT가 들어가야 책이 팔린다는 얘기가 출판계에서 나올 정도였다.

주요 출판사 5곳과 예스24·교보문고 등에 AI 활용 현황에 대해 질의한 결과 가장 적극 활용되는 분야로 번역 및 외국어 콘텐츠 처리가 꼽혔다. 출판사의 외국 도서 담당자가 딥엘(DeepL) 등 AI 번역기를 활용해 직접 외서를 빠르게 검토할 수 있게 됐다.

원미선 민음사 해외문학 담당 부장은 "외서 검토에 소요되는 시간이 현격하게 줄어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몇몇 해외 에이전시에서 보내오는 자료들은 이미 AI 번역기를 사용한 자료로 도서소개를 하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번역출판에는 이제 막 AI가 활용되는 추세다. 한국학술정보사가 빠르고 편리한 번역출판을 위해 '하이링고'를 자체 개발했다. AI가 번역도 하지만 번역문을 편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세로쓰기가 보편화한 일본 만화에 맞게 가로쓰기로 된 한국어 원문을 세로쓰기 일어로 편집하고 폰트 크기부터 색상, 문장 위치까지 원문의 스타일 형식을 유지한다.

다만 문학의 정교한 번역에는 아직 AI가 활용되지 않는다. 원미선 부장은 "해외 문학의 번역 계약서에 'AI 모델로 번역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조항이 추가되는 추세"라며 "번역 작업의 속도를 거대언어모델(LLM)이 높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전히 섬세한 문학 텍스트 번역은 전문 번역가의 역량으로만 해석되고 고유한 문체로 재탄생돼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출판사의 도서 편집 단계에서도 AI가 활용된다. 특히 AI를 활용해 도서의 제목, 부제, 카피를 도출한다. 이리현 21세기북스 정보개발팀 팀장은 "처음엔 상투적인 문장이 도출되지만 질문을 조금씩 다르게 반복하면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단어나 이색적인 문장 조합을 얻곤 한다"며 "또 시장조사, 기획 키워드 도출, 기획 구체화, 기획안 작성, 후보 저자 서칭, 제안 메일 작성 등을 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이미지 생성 모델을 통해 책 표지를 만들기도 한다. 출판사 서랍의날씨는 '살의의 형태' '진흙탕 출퇴근'의 표지를 생성형 AI를 활용해 만들었다. AI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을 통해 책 내용에 적합한 이미지를 고를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 AI와 관련된 저작권 문제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표지에는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작가들은 이미 리서치와 데이터 분석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문학계에서 AI를 활용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된다. 소설가 7명과 챗GPT가 공동 집필한 SF소설 일곱 편을 묶은 소설집 '매니페스토'가 2023년 처음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정지돈 작가는 챗GPT와 지속적인 대화를 하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복도가 있는 회사'라는 제목의 단편을 쓰기도 했다. 이들은 단편 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외국에서는 일본의 구단 리에가 챗GPT를 시켜서 만든 문장을 적절히 활용한 장편 소설 '도쿄도 동정탑'이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아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술렁였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는 AI 도서 표지 검색 서비스, AI 도서 추천 서비스 등을 하고 있다. 고객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책 표지를 촬영하면 도서 구매 링크로 자동 연결되고, AI와 채팅을 하면 도서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한편 보수적인 출판업계는 AI를 조심히 사용하는 분위기다.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을 위한 교정 작업에서는 AI의 사소한 오류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어 반드시 전문가의 팩트체크를 거치고 있다"며 "저작권 및 디자인 소유권 등 윤리 문제가 불거질 수 있고, AI의 소설 쓰기와 같은 기계적 창작은 독창성 및 정체성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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