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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절대악, 아군은 절대선의 이분법 모든 전쟁은 '정의의 가면'을 쓴다

진주만공습부터 이라크전까지
현대사 관통한 전쟁 본질 분석
전장에는 인지적 오류 만연해
의도적 망각·선택적 기억통해
성전으로 둔갑하는 과정 비판

  • 박윤예
  • 기사입력:2025.01.10 16:11:54
  • 최종수정:2025-01-10 19: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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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로파간다(선전) 포스터. 왼쪽은 1945년 당시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엉클 샘이 등장한 전쟁 포스터로 삽화가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가 그렸다. 포스터에는 "쪽발이, 다음은 너다(JAP, YOU'RE NEXT)"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오른쪽은 일본 사무라이가 연합군 태평양 함대를 격파하는 모습을 담은 이탈리아 엽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로파간다(선전) 포스터. 왼쪽은 1945년 당시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 엉클 샘이 등장한 전쟁 포스터로 삽화가 제임스 몽고메리 플래그가 그렸다. 포스터에는 "쪽발이, 다음은 너다(JAP, YOU'RE NEXT)"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오른쪽은 일본 사무라이가 연합군 태평양 함대를 격파하는 모습을 담은 이탈리아 엽서.
'기습 공격, 미국의 정보 실패, 비전투원 표적화를 동반한 테러, 대량살상무기와 버섯구름의 망령, 사방에서 들려오는 성전의 수사(修辭)….'

2001년 9·11 알카에다의 기습 공격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을 떠올릴 만한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동은 뚜렷한 지역적·국가적 차이가 있는 엄연히 다른 두 세계다. 두 세계를 관통하는 현대 전쟁의 문화적 패턴이 두드러지는 이유다.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인 저자 존 다우어는 지난 수십 년간 전쟁의 근원과 결과를 다루어 왔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무자비한 전쟁'에서는 태평양전쟁의 잔혹성, 비인도적인 양상을 분석했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페어뱅크스상 등 수많은 영예를 안은 '패배를 껴안고'는 태평양전쟁 직후 패전국 일본이 미국 주도 연합군의 점령하에 폐허가 된 땅에서 새출발하기 위해 겪은 고투를 역사사회학적으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미·일 관계 전문가인 저자는 이번 책에서 진주만 공격, 히로시마 폭격, 9·11 테러, 이라크 침공이라는 네 사건을 통해 전쟁의 이면에 깔린 문화적 패턴을 분석했다.

전쟁의 문화 존 다우어 지음, 최파일 옮김 아르테 펴냄, 5만8000원
전쟁의 문화 존 다우어 지음, 최파일 옮김 아르테 펴냄, 5만8000원


우선 전쟁의 문화란 '적과 나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가리킨다. 각종 심리적·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오직 자신이 보고 싶은 측면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들으려 하는 것, 그리고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양쪽 모두 심리전을 펼치기 때문에 정치 선전, 문화, 미디어가 지배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편견, 신앙, 희망적 사고 등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인지적 오류가 만연한 상황을 통칭한다.

미국은 어떻게 전쟁을 시작하는지는 알지만 어떻게 끝내는지는 모른다. 한국전쟁, 베트남에서의 철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무책임한 철수가 이를 보여준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오히려 만성적인 전쟁 국가가 됐고 전쟁의 문화는 미국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의 일부가 됐다. 저자는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받은 이후와 9·11 이후 이라크 전쟁에서 오류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의도적 망각, 기억의 정치적 편집, 잘못된 정책 결정의 악순환이다.

사실 힘에 대한 정통적인 잣대로 볼 때 1941년 일본의 위협과 2001년 알카에다와 이슬람주의 테러의 위협은 공통점이 거의 없다. 일본 제국은 재래식 전쟁을 치르는 주요 열강으로 인종적 동질성과 극렬 민족주의, 육중한 전쟁 기구를 갖췄다. 반면 알카에다는 국가와 종족의 경계를 넘나드는 느슨한 네트워크였다. 알카에다 조직은 국가 후원에 의존하지 않았고 육군이나 해군, 대량 화력을 보유하지도 않았다. 알카에다 전사들은 그저 성전의 정치적·종교적 열정으로 불타는 지원자들이었다.

그렇지만 미국 전쟁 문화의 핵심에는 인종주의와 기독교적 메시아주의가 있다. 합리적인 세계라면 미국은 일본을 얕보지 말았어야 했지만, 인종주의 관점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쪼그만 노란 개자식들'로 보았다. '노랗다'는 것은 낯설면서 위협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쪼그만'은 그냥 멸칭이었는데 체격이 작은 사람들만 뜻하는 게 아니라 더 넓게는 백인보다 선천적으로 능력과 성취가 떨어진다고 여겨지는 인종을 뜻했다.

'쪼그만 노란 인간' 사고방식이 중동으로 옮겨 갔다. 미국 정부와 군의 고위 지도자들이 알카에다와 이슬람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비대칭적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데에는 인종적 오만과 문화적 자만심이 있다.

워싱턴 엘리트들은 씻지도 않고, 글자도 모르고, 비민주주의적이고, 비백인이고, 반여성적이고 지저분한 수염에 헐렁한 외투를 걸친 채 아프간 사막과 산악지대의 모닥불에 둘러앉아 있는 몇몇 아랍인 무리가 미국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전쟁 문화는 매우 기독교적인데 언제나 용서할 수 없는 '절대 악'을 설정하고 자신은 '절대 선'으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진주만과 9·11 이후 미국인들이 갖게 된 트라우마는 이러한 선과 악의 대립, 복수심과 잔인한 보복 공격, 관타나모 기지에 체포된 테러범에 대한 인권침해 등을 모두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지점을 지칭하던 '그라운드제로'라는 용어가 9·11 이후 미국의 희생자 코드로 전유된다. 이는 미국이 과거에 자행한 민간인 대량살상에 대한 어떠한 자기 성찰도 없음을 보여준다.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전쟁의 문화에서는 허위와 기만이 적극 활용된다. 무수한 언어의 달인과 시작 이미지의 장인은 진실과 반진실, 상상된 진실, 아이콘적 이미지, 귀에 쏙 들어오는 구호, 완곡어법, 과장, 얼버무림, 대놓고 하는 거짓말을 쏟아냄으로써 밥벌이를 한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나타나기 전부터 라디오, 인쇄매체, 사진이 해외 팽창과 침략을 홍보하는 데 이용됐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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