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속 살인 연극 만들기 위해
父 살해범 만난 극작가 이야기
신화·문학·음악 등 사례들이
관객의 감상 풍성하게 해
연극은 늘 소수자 이야기 다뤄
비주류 가치 파는 게 예술 역할
“연극에 등장하는 신화,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사례는 관객이 작품에 다가갈 수 있게 안내하는 요소입니다. 이들을 읽어내는 것이 ‘테베랜드’를 보는 하나의 방식이죠.”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애착을 갖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연극 ‘테베랜드’를 무대에 올린 신유청 연출가가 작품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테베랜드’는 존속 살인을 주제로 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극작가 S(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김남희)가 실제로 아버지를 죽인 죄수 마르틴(이주승, 손우현, 정택운, 강승호)을 만나 그를 세상과 화해시키는 이야기를 그린다.
“오이디푸스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에게 약간은 막연하게 느껴지는 테베(오이디푸스 신화의 배경인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지니고 있어요. 조금 혼란스럽고 어두컴컴한 곳”이라는 극 중 대사처럼 ‘테베랜드’에는 부친 살해 모티프와 관련된 다양한 사례가 등장한다. 음악과 결혼에서 아버지와 갈등한 모차르트, 부친 살해 서사를 다룬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교도 아버지를 끝내 개종시키지 못한 천주교 성인 마르틴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리키는 이들 소재에 대해 신유청은 “관객의 감상을 풍성하게 하는 요소들”이라며 “‘테베랜드’가 이들을 장식적으로 제시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테베랜드’의 사례들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갈등의 씨앗이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특히 마르틴과 이름이 같은 성 마르틴의 이야기는 존속 살인자와 성인이 서로 별종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S와 마르틴은 늘 감옥의 농구 코트에서 만나고, 마르틴은 대화를 하면서 시시때때로 농구를 하는데, 성 마르틴이 미사 집전을 할 때 머리 위에 농구공 같은 주황색 불의 고리가 떠있었다는 대사 등 두 사람을 동일시하는 내용이 제시된다.
‘테베랜드’는 치유에 대한 연극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은 마르틴은 참된 어른인 S를 만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회복과 성장으로 나아간다. 아버지에게 폭행당하고 평생 쓸모 없는 존재로 취급받던 마르틴은 S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연극을 만들기 위해 찾아 온 S 역시 마르틴과 마음 깊이 교류하며 스스로의 영혼을 되돌아본다. 영화 ‘굿윌헌팅’(연출 구스 반산트)에서 정신과 의사 숀(로빈 윌리엄스)이 상처를 품은 청년 윌(맷 데이먼)을 치료하며 자신의 아픔을 극복한 것처럼 쌍방향으로 치유가 이뤄진다.
신유청은 “S의 아버지가 농구 선수였지만 S가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 아버지에 대한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은 것 등은 S 역시 마르틴과 모차르트, 오이디푸스처럼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며 “마르틴이 S에게 반복해서 시간을 묻고, 연극의 종반부에 이르러 마침내 시간의 흐름이 묘사되는 것 역시 S의 시간이 그동안 멈춰있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신유청은 ‘대학로 봉준호’로 불릴 만큼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연출가다. 계원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레바논 내전의 참상을 그린 ‘그을린 사랑’(백상연극상 수상),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인물들을 여러 시간대로 확장한 ‘와이프’(동아연극상), 조승우 배우가 출연해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햄릿’ 등을 연출했다.
신유청이 최근 연출한 작품들은 ‘와이프’(2023) ‘엔젤스 인 아메리카’(2024) 등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연극들이 많다. ‘테베랜드’ 역시 동성애 코드가 있는 작품이다. 신유청은 “이 시대에 가장 비주류인 존재들이 성소수자들이어서 그들에 대한 작품을 많이 의뢰받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시대든 연극은 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왔고, 소외된 사람들, 주류에서 먼 가치들을 천착해야 기존의 질서에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