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두 가지 난제, 즉 '고령화'와 '저성장'의 해법을 자본시장 활성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면 은퇴 후 30년 이상 살아가야 할 국민 개개인의 연금소득과 투자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다.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7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국민 개개인이 꾸준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노후 보장에 매우 중요하다.
둘째,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한 연기금의 수익률 향상은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 따르면 12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 수익률이 1%포인트만 높아져도 기금 소진 시기를 최대 7년 늦출 수 있다. 마찬가지로 5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조금만 개선돼도 국민의 노후 기반은 한층 더 든든해진다.
셋째, 자본시장 활성화는 저성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혁신 기업에 대한 자본조달을 통한 생산적 금융으로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살리고 잠재 성장률을 증가시킬 수 있다. 요컨대 자본시장은 우리 국민의 '두 번째 월급통장'이 돼야 한다. 그 역할을 수행할 충분한 잠재력 또한 갖추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본시장 활성화 논의가 상대적으로 미시적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배당소득 분리과세나 세율 인하와 같은 이슈는 곧바로 '부자 감세' 논란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단순히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장치가 아니다. 이는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고, 저성장과 고령화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난제를 풀어내는 데 필요한 전략적 도구가 될 수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부동산 시장과 자본시장의 세제를 비교·분석해 부동산 시장에만 적용되는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주식과 펀드에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소액주주의 장기투자에 분리과세와 낮은 배당세율을 적용하는 등 유인책을 마련한다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몰려들 것이다. 또한 디폴트옵션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통해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여 국민의 노후를 보장해야 한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 역시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 확대를 두고 긍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해법은 단순하다. 연기금의 투자 확대를 흡수할 만큼 우리 자본시장을 키우는 일이다. 상장기업의 저변을 넓히고,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며, 세제를 손질해 투자 매력도를 높이고,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면 연기금의 몸짓에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미시적인 부자 감세 논란을 벗어나 자본시장 활성화가 주는 전략적 의미와 중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이현승 전 SK증권·KB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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