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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스트] 호텔 경제학 그리고 소비쿠폰

생산 없는 경제성장은 한계
재정 투입해 경제 살리려면
소비쿠폰보다 고용 늘려야
근속장려금은 노사에 '윈윈'
생산·고용 선순환 구축해야

  • 기사입력:2025.08.18 17:43:54
  • 최종수정:2025-08-18 19: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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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21대 대통령 선거 직전 '호텔 경제학'이 논란이 됐다. 야권에서는 '노쇼 경제학'이라 공격했으나, 이미 대세로 굳어진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당선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에는, '노쇼 경제학'이라는 비난에 대해 면박이라도 하듯,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전 국민 대상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을 지급 중이다. 자연스레 호텔 경제학을 둘러싼 논쟁도 그것에 기반한 소비 쿠폰 지급이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을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호텔 경제학에는 애당초 '생산'이 없었기에, '성장'을 논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모든 재화는 이미 생산돼 재고로 쌓여 있었고, 모든 서비스 생산 여력은 유휴화돼 있었다. 이런 과잉생산 경제에서는 소비 쿠폰의 주입이 일시적 순환을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현실 경제에서 경제 성장은 투자와 고용을 통한 생산으로 견인되며, 그것은 다시금 개별 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결정된다. 더구나 수출 중심 경제에서 투자와 고용을 무시한 내수 진작책만으로는 지극히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성장만 달성 가능하다.

정부가 국가 채무를 늘려서라도 민생 회복과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고용을 통한 생산이 내재된 모형에 기반해서, 고용 확대 방안부터 추진해야 한다. 가령 근속 장려금 제도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 업종별, 기업별로 차등화해 한 직장에서 6개월 연속 근무할 때마다 정부가 근속자에게 장려금을 지급하자. 기업의 노동 비용 상승 없이 노동자의 소득이 늘고, 근속 연수 증가와 함께 생산성 향상도 기대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소득 증대, 고용 안정과 촉진,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물론 근속 장려금 제도는 상당한 재정 지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6개월마다 근속 장려금을 일시 지급함으로써, 또한 지역별, 업종별, 기업별로 지급 대상과 지급액을 차별화함으로써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고용노동부는 특정 청년과 장애인 고용의 경우, 기업과 노동자 양측에 고용 장려금을 지급하고, 국세청은 반기마다 소득보조를 위해 특정 저소득층 노동자들에게 근로 장려금을 지급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고용 및 근로 장려금이 있다. 그러나 현행의 어느 것도 지속적으로 근속 유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각종 고용 및 근로 장려금을 면밀히 검토해 통합 재설계한다면 재정 부담은 최소화하고 기대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최저임금 제도와 고용 안정을 위한 여러 제도의 강화는 기업의 노동 비용을 상승시켜 고용 창출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근속 장려금은 정부가 노동자에게 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노동 비용 상승 우려 없이 노사 모두에게 근속의 당근을 제공한다. 특히 근속 장려금은 지역별, 업종별, 기업별 차등 지급이 가능한 만큼, 기존 제도와 달리 정부에 별도의 재량적 툴을 선사한다.

이미 제1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효과가 소멸됐다는 낙담과 벌써부터 제2차 소비쿠폰만 기다린다는 소상공인들의 푸념이 들린다. 안타깝지만 경제주체들이 재정 여력에 기대 소비쿠폰만 기다리는 경제라면, 성장은 어렵다. 호텔 경제학 순환의 끝점이 반드시 '노쇼'일 필요가 없듯, 시작점 역시 '소비'여야 하는 이유도 없다. 정부가 재정 여력을 활용해 내수를 진작시키기보다는 고용을 촉진해 생산을 증대시킬 때, 비로소 선명하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달성될 것이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에 관한 학계의 논의 역시 한계소비성향뿐 아니라 고용창출계수까지 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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