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투갈 극작가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희곡 '바이 하트'(알마 펴냄)의 한복판에 놓인 간절한 바람이다. 작품은 의자 열 개가 놓인 텅 빈 무대에서 시작한다. 무대에 오른 작가는 관객 열 명을 초대해 앉힌 후 시 한 편을 외우자고 말한다. "감미롭고 고요한 명상에 잠기어/ 지나간 옛 기억을 불러올 때면"으로 시작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30'이다. 죽어가는 할머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다.
작가의 할머니는 포르투갈 산골에 살고 있다. 아흔네 살의 그녀는 평생 여관을 운영하고 요리사로 살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릴 때 집안 형편 탓에 공부를 더 하지 못하고 일을 시작해야 했던 아픔 때문이었다. 우리 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할머니다.
양로원에 들어간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가 갖다주는 책들을 읽으며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열정의 날들이 멈추게 된다. 나이가 들어 눈이 약해지면서 시력을 잃게 된 것이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부탁한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골라 달라고. 작가는 관객들에게 소네트를 한 행씩 외게 하면서 메고 온 상자에서 책을 하나씩 꺼내면서 이야기한다.
문학이 침묵을 강요 당하고, 책이 불태워지는 순간들을 인류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알려주는 일화들이다. 서슬 푸른 작가동맹회의에서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낭송한 시인 파스테르나크, 나치 수용소에서 놀라운 기억력으로 동료들에게 외운 책을 빌려준 유대인 사서, '화씨 451'에서 책과 함께 화형 당하기를 택한 노파, 압류된 오시프 만델슈탐의 시 한 편을 사람들 열 명에게 알려주어 지켜낸 그 아내 나데즈다, 그 시를 외웠다가 영어로 옮겨 세상에 알린 요제프 브로드스키 등.
바이 하트(By Heart)는 '외우다'란 뜻이다. 작품을 마음에 새기는 건 "내면의 집을 아름다운 가구로 꾸미는" 일이고, "내면의 집에 위대한 정신과 거룩한 영혼을 동행"시키는 길이고, 파괴할 수 없도록 무언가를 영원히 사랑하는 길이다.
"좋아하는 시나 산문에 바칠 수 있는 가장 값진 헌사는 그것을 외우는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온 마음으로."
눈먼 할머니가 마음속에 간직한 건 셰익스피어 시집이다. 묻고 싶다. 죽을 때 온 마음으로 간직하고 싶은 당신의 책 한 권은 무엇인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