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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스트] 런던증권거래소 쇠락에서 배울 점

한때 위용 떨친 英 금융시장
규제·디스카운트 등 겹치며
지난해 88개 기업 최다 이탈
韓정치, 대주주 압박에 골몰
밸류업 커녕 시장 쇠퇴 우려

  • 기사입력:2025.05.14 17:30:47
  • 최종수정:2025.05.14 17: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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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증권거래소(LSE)는 한때 세계의 금융 수도였던 런던의 증권거래소로서 전 세계 자본을 끌어들이던 곳이다. 비록 절정기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세계적 위상을 지키고 있던 LSE가 최근 몇 년 눈에 띄게 힘든 모습이다. 한국에서 밸류업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지금, LSE의 어려움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드러지는 사실은 기업들이 투자자를 만나는 플랫폼으로서 LSE를 선택하는 경향이 줄었다는 것이다. 2024년에 LSE를 떠난 회사는 88개나 됐다. 신규 상장은 18개에 불과하다. 그 결과 작년은 LSE의 대표적인 주가지수인 FTSE 100에서 가장 많은 기업이 이탈한 해가 됐다. 거래소가 상장회사를 잃는 것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회사가 다른 거래소로 상장을 옮기거나 상장을 폐지하는 것이다.

LSE에서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스포츠 베팅 회사인 '플러터 엔터테인먼트'가 뉴욕증권거래소로 떠났고, 유럽 최대 음식 배달 플랫폼 '저스트 잇 테이크어웨이'는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있던 회사가 떠난 것은 아니지만 런던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반도체 팹리스 기업 Arm이 미국의 나스닥에 최초 상장한 것도 LSE에는 큰 타격이었다.

LSE의 올해 상황도 좋지 않다. 저스트잇 다음으로 영국에서 큰 음식 배달 플랫폼 '딜리버루'가 미국 경쟁사 '도어대시'에 인수될 것 같다는 보도가 지난주 나왔다. 충격적인 것은 평가액이다. 딜리버루는 2021년 최초 상장 당시 평가액의 절반 미만으로 인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도어대시의 시가총액이 거의 두 배가 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상장을 옮기는 것과 상장 폐지를 하는 것은 결이 다른 원인을 갖고 있다. 우선 영국도 미국에 비해 디스카운트의 문제를 겪고 있다. 즉 LSE의 상장회사들이 비슷한 속성의 미국 회사들보다 낮게 평가되는 것이다. 미국 증권시장에서 더 많은 거래가 일어나서 상장회사 주식의 유동성이 큰 것은 영국의 디스카운트 문제와 맞물려 있다. 미국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의 관심을 더 받고 더 활발하게 거래되기 때문에 더 높게 시장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상장 폐지를 선택하는 회사들은 행정적 부담과 규제의 복잡성을 이유로 든다. 그러나 행정 부담과 규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오히려 LSE는 규제 개혁을 추진해왔다. 대표적으로 회사가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면 FTSE 100에 포함될 수 없는 등의 규제가 작년에 폐지됐다. 하지만 해외의 경쟁자들에 비해 LSE의 강점이 크지 않은데 규제 개혁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명분으로 정치인들은 대주주를 압박할 방법에만 골몰하고, 행동주의 펀드들은 수익을 냈으면 당장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한국 회사들의 주주환원 성향이 낮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장이 커진 것은 한국의 상장회사들이 대한민국과 함께 고도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성장이 멈추자 그때그때 버는 거라도 나눠 갖자는 분위기로 급격히 바뀐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이 해외 거래소로 상장을 옮기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상장의 괴로움이 커지면 상장 폐지는 늘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국장은 더 매력을 잃을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부가 국장 기업들을 가둬둔 물고기 취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제대로 진단하고 바꾸지 않으면 밸류업은커녕 국장의 쇠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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