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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춘추] '어버이날' 할 일

  • 기사입력:2025.05.05 17:29:43
  • 최종수정:2025-05-05 20:4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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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재작년 산수(傘壽)를 넘긴 나이에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하다. 가정의 달과 명절이 있는 달에는 더욱 그렇다. 취미로 틈날 때마다 끄적인 시(詩)의 주제도 대부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어머니 떠나실 때 더 힘껏 안아드리지 못해 그런가 보다.

내 인생을 지탱해온 기둥은 '책임'이다. 그것은 어머니에게서부터 시작됐다. 1944년 소위 '있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6·25전쟁 이후 끼니를 때우기 어려울 만큼 빈곤에 시달렸다. 끼니를 먹는 날보다 굶은 날이 흔했다. 그래서 '밥 먹듯'이란 말이 자주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남들보다 늦게 알았다. 피죽도 먹지 못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 밭에서 조(좁쌀)를 몰래 따오셨다. 찬 하나 없이 맨밥으로 차려진 밥상은 굶주린 나에게 황홀했다. 내 입에 넣기 바쁘던 중에 외할아버지가 불쑥 찾아오셨다. 어머니는 밥그릇을 밥상 밑으로 급히 감추셨다. 그때 나는 맹세했다. 다시는 어머니가 외할아버지 밭에서 몰래 조를 따오지 않게, 내가 책임지겠다고.

어버이날의 유래는 미국, 영국, 그리스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시작은 모르겠지만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다. 미국은 '어머니날(Mother's day)'과 '아버지날(Father's day)'이 따로 있다.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7월 넷째 일요일을 어버이날(Parents' day)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부모에게 감사 편지를 드리거나, 함께 시간을 공유한다. 우리나라는 1956년 한국전쟁 이후 양육과 생업까지 책임지는 어머니들을 위로하기 위해 '어머니날'을 만들었다. 이후 1973년 '어버이날'로 바꿔 지정했다.

모든 '어버이'는 누군가의 '자녀'이다. 단언컨대 어버이는 자녀로부터 받아 누리는 기쁨보다 베푸는 기쁨이 더 클 것이다. 필자 역시 이미 성인이 된 손주까지 품에 안은 어버이다. 항상 자녀와 손주의 방문이 기쁘지만, 한편으로 그리움을 느낀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절반도 되돌려드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서다. 그때는 부모의 직언이 서운해 따뜻하게 되돌려주지 못했다. 조금 더 살아본 부모의 조언이 '다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 '틀림'을 지적하는 것으로만 들렸다. 그런데 부모가 되어보니 필자도 같았다. 자녀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 한마디보다, 부족함을 지적하는 '날것'의 말이 먼저 나온다. 회사 구성원에게는 직함과 존대를 빠뜨리지 않으며 조심스레 말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녀에게는 아무런 '쿠션어' 없이 뱉어진다. 마음만 앞선다. 날것의 메시지임을 알고 있음에도 실천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더라도 가족에게는 야박하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가족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뒤늦게 더 표현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은 미련하다. 올해로 인생 82년 차를 맞은 노인의 진심이다. 필자는 그 옛날 어머니의 손을 더 따스하게 잡아드리고, 더 다정하게 애정을 표현하지 못해 사무치게 후회한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현금도 좋지만 작은 편지라도 곁들인다면, 수십 년 뒤 후회할 일이 줄어들 것이라 확신한다.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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