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는 독일 업계의 '절실함'이었다. 독일 정부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었다. 중국·한국의 시장 잠식에 직면한 독일 산업계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계산업협회쯤에 해당되는 민간단체(VDMA)를 중심으로 고민을 거듭하며 전략을 만들어 나갔다.
두 번째는 CPS(사이버-피지컬 시스템)였다. 독일의 막강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시도였다. 제품·공정·설비·공장 등(물리적 공간)을 디지털 모델(사이버 공간)로 구축하고, 두 공간을 센싱과 시뮬레이션으로 실시간 통합하는 개념이었다.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자동화와 지능화를 추구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세 번째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네트워크 통합·데이터 분석·보안·표준화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현을 위한 전략과 과제들을 제시했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회장이 인더스트리 4.0을 계기로 기민하게 4차 산업혁명의 확산에 기여했다면, 인더스트리 4.0은 빅데이터·디지털 트윈·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 혁신의 원형을 실제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한편 인공지능(AI)에 대한 단상은 2017년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우리 측과의 면담에서 '첫째도 AI, 둘째도 AI, 셋째도 AI'라고 단언하던 것을 목격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2022년 11월 드디어 챗GPT가 등장했다. 거대언어모델(LLM)들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면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우려 등을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올 초 CES 2025에서는 AI가 기업 현장은 물론 건강·교통·돌봄 등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혁신적 변화를 예고했고, 트럼프 2기 출범 후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발표한 새로운 개발 방식은 미국 빅테크에 충격을 던져주며, 이러저러한 의문 속에서도 판을 흔들고 있다.
우리 산업과 기업들도 AI 혁신에 분주하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AI 도입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 그리고 비용 절감을 기대하는 한편, 혁신 촉진·제품 및 서비스 개선·고객관계 강화 등도 주된 목표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혁신 이슈들이 유행처럼 스쳐 지나간 사례들을 목격했던 필자로서는 우리 기업들이 AI의 혁신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인내와 끈기를 보여줄 수 있을지, 혹여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관심이 사그라들지 않을지 내심 걱정이 적지 않다.
AI 도입과 관련해 전문가들의 조언은 경청할 만하다. 획일적 접근 방식이 없으며,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매우 다양하므로 도입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가치를 추구할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데이터 품질의 문제는 계속해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며, 솔루션을 단순 구매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는 없다고도 한다. 직접 AI를 실제 업무에 접목하며 그 잠재력을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도 있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것이 있다. 인더스트리 4.0을 만들어 나갔던 독일 산업계의 위기감 그리고 명확한 목표와 치밀한 전략 및 실천 과제가 그것이다. AI는 빅데이터에 기반한 엄청난 학습량이라는 측면에서 인더스트리 4.0과 차이가 있지만, CPS를 추구했던 철학은 AI 혁신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들은 기술의 영향력을 '단기적으로는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한다고 한다. 기술 진보에 대한 흥분보다는 인더스트리 4.0을 수립했던 독일 산업계의 마음가짐으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AI 혁신을 차분하게 실현해 나가야 할 때이다. 2025년 지금의 우리가 더 절실하지 않은가?
[문동민 한국표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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