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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번아웃’…리더가 점검할 다섯 가지 [김성회의 리더십 코칭]

  •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 기사입력:2025.09.26 13:13:28
  • 최종수정:2025-09-27 10: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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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요즘 번아웃인가 봐.”

직장인이 입버릇처럼 던지는 이 말에는 단순 피곤을 넘는 무엇이 숨어 있다. ‘번아웃(burnout)’은 본래 불꽃이 다 타 더는 태울 것이 없이 재만 남은 상태를 뜻한다.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어두운 사바나(A Burnt-Out Case)’는 이 감각을 극적으로 형상화한다. 한때 명성을 떨친 건축가가 삶의 의미를 잃고 콩고 밀림으로 숨어들며 스스로를 ‘더는 남은 게 없는 인간’이라 부르는 장면은, 불꽃처럼 일하다 재만 남은 자의 공허를 묘사한다.

미국심리학회(APA)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67%가 스트레스로 집중력이 저하된다고 답했고, 58%는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답했다. 한국 직장인 현실도 다르지 않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유아이패스(UiPath)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의 93%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번아웃은 단순히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시대의 경고음으로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임을 보여준다. 과연 번아웃이 경계경보가 공습경보로 번지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Q. 번아웃은 과로나 일반 스트레스와 무엇이 다른가.

김 코치: 피로는 휴식을 취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 스트레스는 요구와 자원의 불균형에서 생기지만, 적정 수준에서는 오히려 발전 동력이 되기도 한다. 탈진은 번아웃의 출발 신호일 수 있지만, 탈진만으로는 번아웃이 아니다. 냉소와 개인적 효능감 저하가 겹칠 때 비로소 번아웃이라 부른다. 번아웃은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지연되고, 일과 나의 관계 자체가 틀어진다.

학계에선 번아웃을 세 축으로 설명한다. ① 정서적 고갈: 에너지가 바닥나 비어 있는 느낌이 지속된다. ② 냉소(비인격화): 일과 사람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③ 개인적 효능감 저하: “해봤자 소용없다”는 무력감이 굳어진다. 결국 번아웃은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율성·의미·회복이 끊긴 종합적 소진이다.

사진설명

Q. 개인이 번아웃 신호를 조기에 알아차리고 대처하려면.

김 코치: 번아웃은 열대지역에서 쏟아지는 스콜처럼 갑자기 한번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가랑비 옷 젖듯 미세 피로의 누적에서 온다. 몸(두통·불면·소화 불편), 마음(무관심·짜증·허무), 행동(회피·지연·사소한 실수)의 미세 신호를 일주일만 진단해 기록해 관찰해도 패턴이 보인다. 한방의 예방주사로도, 한 번의 ‘짠’ 하는 마법도 없음을 명심하자. 즉 ‘크게, 한 번’이 아니라 ‘작게, 자주, 그때그때’다. 일은 바꿀 수 없더라도 일하는 방식, 감정 대응은 조절해나갈 수 있다. 우선 내 최적 상태를 아는 게 필요하다. 그 리듬패턴을 생활 언어로 기록해본다. 내 최고의 하루 일과는 어땠는가. 50분 집중, 10분 휴식 루틴에서 집중도 향상, 평일 7시간 수면, 점심 10분 걷기, 오전 90분 집중 업무 같은 나름의 최적 루틴을 가지는 게 좋다. 일, 수면·식사·운동은 모두에게 기본이지만 최적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감지 → 조정 → 리듬 회복의 루프를 돌리면서 자신만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Q. 같은 번아웃인데 어떤 날은 날카롭게 반응하고, 어떤 날은 무기력하다.

김 코치: 번아웃은 과각성형과 저각성형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과각성형은 심박이 오르고, 손끝이 차가워지며, 말의 속도가 빨라지고, 사소한 일에도 과잉 반응한다. 이때는 진정 루틴이 필요하다. 회의 직전 90초 심호흡, 복도 끝까지 5분 걷기나 산책, 말 속도를 반 박자 늦추고 말의 톤도 낮추기, 창밖 먼 곳 보기, 메신저 알림 일시정지 등이 효과적이다. 저각성형은 만사 귀찮고, 몸이 가라앉으며, 시작하는 것 자체가 막막하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집중이 안 되는 경우다. 이때는 점화 루틴이 효과적이다. 타이머를 10분으로 맞추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일단 시작해본다. 의도적으로 활력 있는 음악을 듣는다든가, 동료들과의 짧은 스몰토크, 햇빛을 쬐는 야외 산책이 도움이 된다. 작업 루틴은 50분 집중, 10분 휴식으로 일하면서 반드시 짧은 휴식을 규칙적으로 넣는다. 매일 퇴근 전 3가지(오늘 한 일·배운 점·내일 할 것 한 가지)를 생각하면 자기효능감을 올릴 수 있다.

이렇게 과각성, 저각성을 오르내릴 때 나만의 ‘적정영역’으로 재진입하는 절차나 방법을 평소에 적어두면 적절 영역으로 빨리 진입할 수 있다.

1단계 Re-scope(범위 축소): 이번 주 반드시 끝낼 3가지, 미룰 3가지 분리한다. ▲2단계 Re-route(경로 전환): 나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자동화 등 2가지 지정해 요청 메시지 바로 발송한다. ▲3단계 Re-pace(속도 조절): 오늘 집중 시간 2블록(각 50분)의 ‘집중 시간’을 넣어 일하기 + 알림 금지(연락 차단) 등으로 자신의 통제감 회복하기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팀의 루틴에 반영해도 효과적이다. 핵심은 ‘끝낼 때까지’보다 ‘리듬을 회복하기’에 목표를 두는 것이다.

Q.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등 많은 세계적 리더들이 ‘워크 스마트’는 물론이고 ‘워크 하드’를 강조한다. 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이처럼 활력과 번아웃이 갈리는가.

김 코치: 많이 오래 일하면 번아웃이고, 적게 짧게 일하면 웰빙이란 공식은 오해다. 번아웃이냐 활력이냐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는 근무 시간, 업무량 과다보다 일의 질, 조직문화이다. 고강도라도 자율성·의미·회복이 설계된 팀은 오래 버티고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적어도 역할 모호성, 불공정, 심리적 안전감이 없으면 번아웃은 빠르게 진행된다. 번아웃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직무, 직책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신노동·감정노동뿐 아니라 육체 노동군에서도 번아웃은 공통적이었다. 또 낮은 직급뿐 아니라 높은 직급에서도 느낀다. 기준에 못 미칠까봐 걱정하는 마음도 작용하지만, 다 잘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에너지를 과용해도 번아웃은 온다.

리더로서 번아웃을 개인 차원을 넘어 조직 설계 면에서 관찰해야 한다. 조직에서 번아웃 호소가 늘었다는 것은 중요한 경고음이다.

예전 탄광에서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광부들과 함께 내려갔다. 카나리아는 인간보다 일산화탄소·메탄 등에 훨씬 민감해 공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이상 징후를 보였다. 이상징후를 보이면 광부들은 즉시 대피하고 환기부터 했다. 번아웃 호소도 같다. 누군가 “숨 가쁘다”는 말은 개인의 약함이 아니라, 조직의 공기(과도한 요구, 낮은 자율성, 회복 부재)가 나빠졌다는 조기 경보일 수 있다. 카나리아를 탓하기보다 환기와 구조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리더가 점검할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춰지지 않을 때 번아웃은 작업량, 시간과 무관하게 빠르게 진행되고 만연된다.

-자율성: 목표는 명확하되 방법은 팀이 결정하게 하는가.

-의미: 일-고객-가치의 연결을 꾸준히 해석·소통하는가.

-회복: 예측 가능한 휴식·집중 시간과 업무 루틴을 설계하는가.

-공정성: 보상·기회·피드백의 기준이 투명한가.

-심리적 안전감: 문제 제기가 커리어 리스크가 되지 않는가.

Q. 팀원이 “번아웃이다”라고 호소할 때, 리더는 어디까지 개입하는가.

김 코치: 우선 필요한 것은 안전한 대화다. 평가와 훈수를 거두고 “함께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부터 시작하자. 다음은 증상 강도에 따른 구분이다. 경증일 경우엔 위에서 말한 대책을 팀 차원에서 지원하고 코칭한다. 요즘은 중증 번아웃 팀원에 대한 리더들의 고민도 부쩍 늘었다. 이 경우엔 리더가 혼자 끙끙대며 혼자 해결하기보다 전문가 경로 안내가 필요하다. 당사자의 불안이 크다면 병가·단축근무·업무 재배치를 현실적으로 제안하고, 복귀 시점·역할·성과 기준을 미리 합의한 재적응 계획으로 심리적 부담을 낮춘다. 팀에는 개인정보를 존중해 필요한 범위만 알리자.

단 공백을 메우는 커버리지 플랜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뒷말을 막는 대신 심리적 안정감을 강화해 이번 경험을 일하는 방식 전반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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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코칭경영원 코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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