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력 분립을 처음 주장한 정치철학자인 존 로크는 국가권력을 입법권·집행권·동맹권·대권으로 나눴다. 이 중 의회가 가진 입법권이 최고의 권력으로, 군주에 속한 나머지 것들보다 상위라고 봤다. '권력 균형'보다는 '권력 분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사법권은 집행권에 부수된 것에 불과했다.
법률가 출신인 몽테스키외는 사법권을 분리시켜 지금의 '삼권분립' 체계를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권력 간 분리를 넘어 대등한 균형을 강조했지만 헌법학자들은 그가 사법권을 경시한 경향도 지적한다. 예컨대 사법을 맡을 독립기관을 별도로 두지 않고 배심재판을 선호했으며(양건 '헌법강의'), 사법권에 대해 '비상설 법정을 통한 소극적 독립성'(권영성 '헌법학원론'), '집행권 테두리 내에서 이해'(허영 '한국헌법론') 등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법권은 전통적으로 취약한 권력이다. 우리 헌법에서도 사법부의 견제 권한은 상대적으로 작다. 국회에 대해선 위헌법률심판 제청 정도다. 반면 국회는 대법원장·대법관 임명 동의, 법관 탄핵소추 의결, 사법부 예산 심의 확정 등 다양하다. 법원은 정치적 호소를 통해 국민 여론을 환기하는 데도 서툴다. 이에 더해 최근엔 대통령실과 여당으로부터 '비선출 권력'이라는 핸디캡까지 가중됐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처럼 국민이 직접 뽑은 권력이 법원 같은 임명된 권력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법부는 입법부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하자 여당에선 대법원장 사퇴 요구 등 임명 권력 무시 행태가 확연해졌다.
선출 권력 우위론은 새로 불거진 논쟁은 아니다. 2020년 12월 서울행정법원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재가한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 처분을 무효화하고 업무 복귀를 결정하자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법원)이 선출된 권력(대통령)을 짓밟는 일을 막겠다"고 했다.
대다수 헌법학자는 선출 권력 우위론이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에 위협이라고 본다. 선출 권력이 위세를 뽐내더라도 삼권분립과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같은 헌법적 가치를 해칠 권한까지 국민이 준 것은 아니다. 헌법에는 '선출·임명 권력'이란 표현도 없을 뿐만 아니라 3~6장에서 국회·정부·법원·헌법재판소에 대해 독립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만 헌법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간접적이나마 국민 의사가 반영되도록 했다. 만일 판사를 국민이 선출한다면 대중 영합적 재판부 구성으로 법적 안정을 기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물론 현 사법부에 대한 겁박과 불신은 법원이 자초한 면도 있다. 정치인 재판에서 판사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고 신속한 결론을 내렸다면 법원의 위상과 권위는 달라졌을 것이다.
진보 논객인 고(故) 신영복이 쓴 '담론'에는 '다수 의사가 힘이고, 그 자체가 정의이자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나온다. 하지만 다수 의사가 만능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법원 의견도 묻지 않고 진행 중인 사법개혁이나 대법원장 사퇴를 국민 뜻 운운하며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중우(衆愚)정치'의 폐단으로 기록될 것이다.
헌법학 서적은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 가운데 입법권과 행정권이 동일 집단에 속할 경우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질 것이라고 적고 있다. 지금 우리 정치가 이를 입증하려 하고 있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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