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이 사람은 뭐하고 사나'라는 생각을 부쩍 자주 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텔레그램 가입 알림 메시지다. 기억 저편 너머 잊고 있던 사람들, 연락하고 지내지 않지만 뭘 하나 궁금했던 사람들이 새로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며 알림이 날아온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새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작년 말 온 나라를 뒤흔든 비상계엄과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상황에서 기존에 텔레그램을 썼다가 탈퇴한 후 새로 가입한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기자의 주소록에 한정해서 본 것이긴 하지만, 메신저 앱을 새로 깐 사람 중 상당수는 대통령실에서 근무했거나, 정치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었다. 혹시나 탄핵 이후 '털릴까봐' 휴대폰을 바꾸고 새로 메신저를 깔았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을 해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카카오톡이나 다른 메신저보다 텔레그램을 선호했다. 국내 메신저의 보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아서다. 텔레그램의 경우 카카오톡과 달리 '대화 지우기'가 가능하다는 점, '비밀 대화방'을 열면 대화 캡처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도 아마 비밀이 많은 정치권하고 잘 맞았던 것 같다.
몇 년 전 용산 대통령실을 출입했을 때 행정관들과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찾아보려 하면 이미 대화가 모두 삭제된 경우가 허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안'을 이유로 전 정부에서 즐겨 썼던 텔레그램은 신규 앱 설치를 알람으로 송신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측면의 '보안'에 취약하다는 걸 드러냈다.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고 나흘이 지난 작년 12월 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텔레그램에 새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은 그가 '깡통폰'을 내고 텔레그램 계정을 삭제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을 수 있다고 봤고, 결국 그는 구속됐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여러 일이 온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우리는 지난 4일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사고는 정치하는 자들이 치고, 그 뒤처리는 세금으로 했으며, 스트레스는 국민이 받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2주가 돼 간다. 정권 말 현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은 '텔레그램 가입 알림'이 이번 정부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엔 적었으면 한다.
[박인혜 금융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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