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의 5대조 할아버지 효공(孝公)은 진(秦)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뛰어난 군주였다. 나중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효공이 기초를 쌓아놓은 덕이었다. 효공은 법가 사상을 도입해 부국강병을 이루었는데, 효공에게 법가 사상을 알려준 사람이 바로 상앙(商鞅)이라는 재상이었다.
법가 사상은 백성을 법으로 다스리려는 이론이다. 덕으로 교화한다는 유가 사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진나라 국정을 담당하게 된 상앙은 자신의 법가 사상을 담은 아주 자세한 법을 제정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노비도 해방시켜주고, 오가작통(五家作統)법이라고 해서 다섯 집을 한 단위로 묶어 세금과 병역을 공동 책임으로 부담하게 했으며, 건장한 남성이 일하지 않으면 엄청난 세금을 부과해 일할 수 있는 남성들이 모두 근면하게 생산활동을 하게 하는 등 아주 자세한 내용의 법을 시행함으로써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그중 아버지와 장성한 아들이 한 집에 머물면 안 되고 아들은 반드시 독립하도록 하는 등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세밀한 법조문도 있었다.
상앙이 국정을 맡기 이전에는 법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던 진나라 백성들은 갑자기 이런 자세한 법조문이 반포되자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법을 정말로 지키라는 것인지 반신반의했을 수도 있다. 이때 상앙이 진나라 백성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행한 것이 ‘이목지신(移木之信)’이었다. 나무를 옮겨 믿음을 이끌어 낸다는 뜻이다. 상앙은 궁궐 남문에 나무 막대기를 세워놓고 이를 북문으로 옮기면 10금의 상금을 준다고 했다. 어린아이 장난 같은 일을 하면 엄청난 돈을 준다는 의미였다. 이런 상앙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게 느껴져 농담이라고 생각한 진나라 백성들이 아무도 나무를 옮기지 않자 상금을 50금으로 올렸다. 이때 한 사람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옮겼더니 상앙은 약속대로 50금을 지불했다. 이 광경을 본 진나라 백성들은 상앙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앙의 법이 지나치고 어처구니없다고 느껴질지라도 반드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시그널링을 받은 것이다.
경제학에게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사람들의 거짓말이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 공약이 대부분 허위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반인도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 보고를 하고, 회사 직원들은 자신의 업무가 너무나 과도하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고 과장해서 말하고는 한다. 직장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보면 한결같이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이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아서 말을 하지만 막상 합격한 후에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다른 회사로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개인적으로는 연세대 면접에서 서울대에 합격해도 연세대로 오겠다고 말하는 고등학생을 심심치 않게 만나는데, 그런 학생 중 서울대에 합격한 후 연세대 등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확고한 의지로 진실을 말한다 해도 다른 사람이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를 ‘시그널링(signaling)’이라 부른다.
국가가 아무리 훌륭한 법을 만들어도 백성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따라서 국가는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고 법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을 준다는 것을 국민에게 확실하게 시그널링할 필요가 있다.
다시 상앙 사례로 돌아가보자. 상앙이 나무 작대기를 옮긴 사람에게 큰 상금을 주는 이목지신의 방법으로 일반 백성에게 자신의 법은 농담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시그널링했지만 그 정도 시그널링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정도의 행동은 잠시 보여주기 위한 쇼(show)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법을 강행할 의지가 별로 없는 재상이라도 손쉽게 시늉을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래서 상앙은 실제로 이목지신보다 훨씬 강력한 시그널을 보냈다.
사실 상앙의 법에 의해서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된 이들은 왕족과 귀족이었다. 상앙의 법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노비든 그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공을 세우면 상을 주고 승진시켜주며 죄를 지으면 왕족이나 귀족도 동일한 잣대로 벌을 하는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상앙이 법을 집행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가장 강하게 시그널링하고 싶었던 대상은 왕족과 귀족이었다.
그러던 중 진나라 왕인 효공의 맏아들로 차기 왕위 계승자인 태자가 상앙의 법을 어겼다. 설마 법을 어겼다 해도 차기 왕위 계승자인 태자를 벌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상앙은 예상을 깨고 태자에게 벌을 주었다. 물론 태자를 직접 벌하지는 못하고 태자의 스승이며 왕족의 한 명이었던 공자 건(虔)의 코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정말 대담한 행동이다. 태자가 잘못했을 때 벌을 준다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시늉만 내는 재상이라면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강력한 시그널링이었다. 당연히 태자의 스승 코를 베어낸 것을 본 진나라 모든 백성은 상앙이 자신의 법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에 진심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진나라 백성은 상앙의 법 규정의 아주 사소한 부분도 모두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시그널링은 그 자체로서 위험이 존재하는데 바로 상앙의 최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진나라 효공의 보호를 받으면서 자신의 법가 정책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든 상앙이지만, 효공이 병으로 죽고 태자가 즉위하자 운명이 완전히 바뀐다. 새로운 왕으로 즉위한 과거의 그 태자가 자신의 스승인 공자 건의 코를 베어 자신을 욕보였던 상앙을 사형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앙의 최후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한 시그널링을 보낼 필요가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야말로 상앙은 자신의 법가 정책 시행 의지를 시그널링하기 위해서 실제로 목숨을 바쳤으니 말이다.
현대의 경제에서 목숨을 건 시그널링이 필요한 분야의 하나가 바로 중앙은행 총재가 인플레이션을 잡을 때다.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는 “반드시 물가를 잡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물가를 잡다 보면 반드시 따르는 것이 경기 침체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지 않아야 물가가 진정되는데, 돈이 안 풀리면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정치인인 대통령은 중앙은행 총재에게 돈을 풀어달라고 압력을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민들이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물가를 잡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바로 물가가 잡힐 수 있다. 그러나 말은 물가를 잡겠다고 해도 금방 압력을 이기지 못해 돈을 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물가는 잡힐 수가 없다.
1980년대 미국 물가를 진정시킨 것으로 유명한 당시 FRB의 폴 볼커(Paul Volcker) 의장은 금리를 20%가 넘도록 책정해 실업자 숫자가 수백만명으로 늘어나면서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권총을 차고 다녔다. 여차하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물가를 잡았던 폴 볼커의 모습은 좋은 시그널링이 되어 결국 미국 물가는 급격히 안정되었다.
자신의 진심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시그널링은 결코 가벼운 시늉이 아니라 상앙이나 볼커처럼 목숨을 걸겠다는 각오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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