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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눈을 마주치면 웃는 까닭 [의사소통의 심리학]

(8) 정서 조율(Affect-attunement)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 기사입력:2025.05.30 13:12:04
  • 최종수정:2025-06-01 15: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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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서 조율(Affect-attunement)

서양인을 볼 때마다 참 신기하게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눈을 마주치면 웃는다는 것입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한 경험 탓에 요즘은 함께 웃으며 고개를 까닥이지만, 처음에는 어쩔 줄 몰랐습니다. 민망함에 고개를 돌려 피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인격적으로 더 성숙해서 낯선 이에게도 친절한 걸까요? 그게 아니었습니다. ‘시선’의 차이였습니다.

대화 중 시선이 집중되는 부위가 문화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서양인은 눈과 입 부위에 더 많이 눈길이 가는 반면, 동양인은 얼굴의 중심 부분, 즉 코 주변에 시선을 고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양인은 눈과 입을 고루 주시하며 감정을 읽는 반면 동양인은 주로 눈썹과 눈매에 집중하는 까닭에 입 주변 변화에는 둔감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얼굴 인식과 관련한 문화적 차이는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눈과 입 주변에 시선이 고정되는 서양인은 표정 변화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밝은 표정을 지으려 애쓰는 겁니다. 반면 동양인은 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동양인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입니다. 화난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방 감정 변화에 둔감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동양인은 전체 맥락을 통해 상대방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파악합니다. 이러한 맥락적 감정 해석 능력을 한국어로 ‘눈치’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계 청소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들이 한국 학생에 비해 유난히 잘 웃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특히 여학생이 더욱 잘 웃습니다. 남성보다 젊은 여성에게 더 자주 미소 짓도록 요구하는 서구 주류 문화(특히 미국)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연구 결과들을 참조한다면, 눈과 입의 감정 표현에 민감한 서양 문화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그녀들의 미소는 진심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감정 표현을 해석하는 방식도 동서양이 다릅니다. 서양에서는 ‘흥분’ ‘열정’ ‘감탄’과 같은 높은 수준의 감정 표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동양에서는 이를 경박하고 자기통제가 부족한 것으로 여깁니다. 문화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입을 다물고 미소 짓는 표정, 즉 낮은 수준의 감정 표현을 긍정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동서양 경계가 느슨해지고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오늘날, 정서 표현과 해석의 양상은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 치어리더들의 표준화된 미소. 미국의 젊은 여성들은 유난히 잘 웃는다. 얼굴에서 눈과 입에 시선이 집중되는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남성보다 젊은 여성에게 미소를 강요하는 서구 주류 문화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치어리더들의 표준화된 미소. 미국의 젊은 여성들은 유난히 잘 웃는다. 얼굴에서 눈과 입에 시선이 집중되는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울러, 남성보다 젊은 여성에게 미소를 강요하는 서구 주류 문화의 영향이라는 주장이 있다. (AFP=연합뉴스)

‘뒤센 미소(Duchenne Smile)’

정서 표현의 문화적 차이로 인한 ‘문화 충격’을 겪기도 하지만,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기본적인 감정 표현은 동일하다고 느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연구 결과도 그렇습니다.

심리학자 폴 에크먼(Paul Ekman)은 인간에게 보편적이고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감정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쁨·행복(enjoyment· happiness), 슬픔(sadness), 분노(anger), 두려움(fear), 놀람(surprise), 혐오(disgust)라는 6가지 ‘기본 감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감정들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기에 문화, 인종, 언어와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경험한다고 주장합니다. 아울러 그 감정은 표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지요. 즉,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 표정은 보편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폴 에크먼과 월리스 프리젠(Wallace Friesen)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얼굴 동작 부호화 시스템(FACS·Facial Action Coding System)’을 개발했습니다. ‘행복’이나 ‘슬픔’ 같은 감정 개념으로 표정을 분류하는 대신, 얼굴 근육 움직임에 집중하여 감정을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각 근육의 움직임을 ‘액션 유닛(AU·Action Unit)’이라는 번호로 구분하여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입꼬리가 올라가는 근육의 동작은 AU12, 눈가의 주름을 만드는 동작은 AU6로 표기합니다. 이 시스템에 따르면 행복한 미소는 바로 이 AU12(입꼬리 올리기)와 AU6(눈가 주름)의 조합이라는 겁니다. 이를 서양에서는 ‘뒤센 미소(Duchenne Smile)’라고 합니다.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Guillaume Duchenne de Boulogne)은 전기 자극을 이용해 얼굴 근육을 하나씩 움직여 표정 변화를 관찰했고, 이를 당시로서는 혁신적 매체인 사진으로 기록했습니다. 뒤센은 표정이란 인간 영혼의 감정과 직접 연결된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입꼬리와 눈가 근육이 동시에 움직일 때 나타나는 미소를 ‘진정한 행복’의 표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입꼬리 근육(대광대근·zygomatic major)은 의지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눈가 주름을 만드는 근육(눈둘레근·orbicularis oculi)은 진정한 감정에서만 활성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뒤센이 찾아낸 바로 이 표정을 폴 에크먼은 ‘뒤센 미소’라고 명명한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에크먼의 ‘얼굴 동작 부호화 시스템’도 뒤센의 아류라고 할 수 있지요.

뒤센 미소와는 달리 입만 웃고, 눈은 웃지 않는 표정도 있습니다. 이런 표정을 서구에서는 ‘팬암 미소(Pan Am smile)’라고 합니다. 미국 팬암 항공사의 전성기였던 1960~1970년대, 항공사는 승무원들에게 항상 밝게 미소 지으면서 고객 응대를 하도록 교육했습니다. 그런데 이 승무원들 미소가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웃지 않는 ‘형식적인 억지 미소’로 여겨지면서 ‘팬암 미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폴 에크먼은 의지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입꼬리만의 팬암 미소를 ‘가짜 미소’로, 뒤센 미소를 자연스러운 ‘진짜 미소’로 구분합니다.

모나리자의 얼굴(가운데 그림)을 좌우로 나누어 각각을 거울상으로 복제한 그림(챗GPT로 제작). 실험 결과, 왼쪽-왼쪽 얼굴(왼쪽 그림)을 피험자들 대부분은 행복한 표정으로 평가했다. 오른쪽-오른쪽 얼굴(오른쪽 그림)을 행복하다고 평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자들은 모나리자의 비대칭 미소는 ‘가짜 미소’라고 결론 내렸다.
모나리자의 얼굴(가운데 그림)을 좌우로 나누어 각각을 거울상으로 복제한 그림(챗GPT로 제작). 실험 결과, 왼쪽-왼쪽 얼굴(왼쪽 그림)을 피험자들 대부분은 행복한 표정으로 평가했다. 오른쪽-오른쪽 얼굴(오른쪽 그림)을 행복하다고 평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자들은 모나리자의 비대칭 미소는 ‘가짜 미소’라고 결론 내렸다.

‘미소’라기에는 애매한 ‘모나리자의 미소’

인류 역사상 ‘미소’와 관련해 가장 많은 논란이 된 사례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다빈치는 이 그림에 이름을 붙인 적이 없지만, 영어권에서는 ‘Mona Lisa’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라 조콘다(La Gioconda)’라고 불립니다. 이는 ‘조콘다 부인’ 또는 ‘조콘다의 아내’라는 뜻이지만, 이탈리아어로 ‘giocondo’는 ‘명랑한’ ‘유쾌한’이란 의미도 있어서 이 그림의 제목을 ‘명랑한 여자’ 혹은 ‘웃는 여자’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모나리자는 처음부터 논란거리였습니다. 그녀의 미소 짓는 표정 때문입니다. 이는 여성의 미소에 대한 오래된 서양 문화의 편견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와 같은 동시대 미술사가는 ‘그 미소는 너무나 기쁘고 신성해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의 작품 같다(…quella bocca, con quel suo sorriso, e piu divina che umana…)’라고 찬사를 보냈지만 비판과 비난도 많았습니다. 중세와 근대 초기, 여성의 미소는 ‘위험하고 부도덕한 것’ ‘유혹적이고 기만적인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미소가 긍정적이고 세련된 것으로 ‘강요’되기 시작한 것은 광고, 사진 등이 대중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부터입니다.

뒤센과 그의 조수가 노인의 얼굴 근육을 자극하여 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뒤센은 표정이 인간의 본질적 감정으로 영혼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입꼬리와 눈주름으로 만들어지는 표정을 ‘진정한 행복’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뒤센과 그의 조수가 노인의 얼굴 근육을 자극하여 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뒤센은 표정이 인간의 본질적 감정으로 영혼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입꼬리와 눈주름으로 만들어지는 표정을 ‘진정한 행복’의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19세기에도 프랑스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뒤메닐(Alfred Dumesnil)은 모나리자의 미소를 두고 “그 미소는 매혹으로 가득 차 있으나, 병든 영혼의 배신적인 매혹이며, 그 병을 전염시킨다. 이토록 부드러운 시선, 그러나 바다처럼 탐욕스럽게 삼키는 눈빛”이라고 평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나리자의 미소는 일반적인 미소와는 사뭇 다릅니다. ‘신비로운 미소’라고 다들 이야기하지만, ‘웃는 표정이 맞는 거야?’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의문은 나만 든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미국 신시내티대 루카 마르실리(Luca Marsili) 등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전형적인 ‘뒤센 미소’와는 달리 비대칭적인 것에 주목했습니다. ‘가짜 미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실제 모나리자의 얼굴을 좌우로 나누어 각각을 거울상으로 복제한 두 개의 ‘키메라(chimeric) 이미지’를 제작(왼쪽-왼쪽, 오른쪽-오른쪽)했습니다. 그리고 42명의 연구 참가자에게 각각의 표정을 비교하라고 했지요. 그 결과, 92.8%(39명)가 왼쪽-왼쪽 이미지가 ‘행복’해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오른쪽-오른쪽 이미지는 대부분 무표정하다거나 슬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행복하다고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연구자들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경심리학적으로 ‘가짜 미소’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사실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엄청난 대작으로 각광받은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말까지도 루브르의 중요한 작품이기는 했지만, 오늘날처럼 압도적인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지요. 대중에게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1911년 루브르에서의 도난 사건입니다.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훔쳐 이탈리아로 반출했습니다. 이 도난 사건은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수많은 시민이 그림이 사라진 루브르의 빈 벽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1914년 그림이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는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후 엽서, 인형, 각종 상품에 모나리자 이미지가 활용되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모나리자 그림이 문화사적으로 깊은 관심을 끈 것은 도난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프로이트의 논문 때문입니다.

1910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심리를 모나리자와 연관시켜 해석한 논문을 발표합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다빈치는 유년기에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남편의 대체물로 삼아 과도한 애정을 쏟아부었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합니다. 다빈치의 모순적인 애착 경험이 모나리자의 비대칭적인 미소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모성적 온화함과 감춰진 성적 욕망, 신비로움과 위협이 공존’하는 미소라는 것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레오나르도 어머니의 미소였으며, 그는 그것을 모나리자의 입술에서 다시 찾았다. 더 정확히는 이 그림에 마법처럼 미소를 불어넣었다. 이 미소는 매우 신비롭고, 매우 온화하며 동시에 매우 유혹적이어서, 보는 이를 매혹시키고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프로이트는 다빈치의 모순적 감정에 대한 해석을 확대하여, 모나리자를 비롯한 다빈치의 그림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여성에게서는 ‘마돈나(성모)-창녀’의 이중성이 반복해서 나타난다고 주장합니다. 아무튼 꼭 프로이트의 해석이 아니더라도, 애매모호한 표정의 여인에게 남자들이 끌리는 경우는 요즘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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