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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목 하루 1시간 더 일하라는 게 공약? [편집장 레터]

  • 김소연
  • 기사입력:2025.05.11 21:00:00
  • 최종수정:2025-05-09 14: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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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생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오후 1시에 학교에서 나와 매일 7시까지 이리저리 학원을 돌았지요. 칼퇴를 해도 7시까지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밤이 빨라지는 겨울에는 늘 6시 언저리만 되면 맘이 콩닥콩닥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를 제대로 데리러 갈 수 있을까. 어느 날인가, 유독 늦어 7시 30분이 되도록 학원에 가질 못했습니다.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 아이와 계속 통화를 하면서 미친 듯이 운전을 했죠. “춥고 무섭다”는 아이에게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다려줘, 거의 다 왔어”를 연발하면서… 저녁 7시에 간당간당 아이를 데려와서 무슨 정신으로 저녁까지 해먹이겠습니까. 하루는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사 먹고, 하루는 돈가스 사 먹고, 하루는 정말 큰맘 먹고 간편우동 만들어 먹고….

# 그나마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친정에 아이를 전적으로 맡겼으니까요. 그래도 늘 변수는 존재하죠. 어느 날인가, 제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마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 오전 8시에 문을 여는 유치원에 8시에 데려다놓고 갈 수 없는 상황. 그날따라 정말 발목까지 푹푹 빠질 만큼 눈이 옴팡지게 내렸습니다. 하이힐을 신고 10㎝도 더 쌓인 눈길을 헤쳐가며 아이 손을 꼭 잡고 유치원으로 향했죠. 아직 어두컴컴한 시간, 야멸차게 닫혀 있는 유치원 정문 앞에 6살 아이를 혼자 두고는 “30분만 여기 서 있으면 선생님 오실 거야. 선생님 오실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꼭 여기 서 있는 거야. 절대 아무도 따라가면 안 돼”를 몇 번씩 되뇌고 돌아서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요. 20년 전 얘기지만, 아직도 그날의 저와 아이 모습이 선명하게 뇌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뜬금없이 20년 전 스토리를 소환한 게 “라떼는 말이야~”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겠죠. 6·3 대선을 앞두고 주 4.5일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주 4.5일제에 이어 장기적으로 주 4일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죠.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도 ‘주 4.5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웠고요.

지금의 ‘주 40시간 근무’와 ‘주 5일 근무제’는 2011년 들어 완전 정착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지금은 상수가 됐지만, ‘주 5일제’가 도입되던 당시 “나라 망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나라는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잘 버텨내고 있고, 고혜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근로 시간 단축과 삶의 만족’ 보고서에서 “주 40시간 근로제는 근로자의 직업 만족도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삶의 만족도 역시 높였다”고 얘기합니다. 또 한 번 진통을 거치겠지만, 나라는 여전히 망하지 않고 근로자의 삶의 만족도는 또 한 번 높아지길 바랄 수밖에요.

‘라떼’ 소환의 진짜 이유는 국민의힘이 내놓은 ‘유연근로형 주 4.5일제’ 때문입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1시간씩 더 일하고 금요일에는 4시간만 근무하자는 건데요. 아이를 더 빨리 유치원이나 학교에 데려다줄 수도 없고, 더 늦게까지 학원에 맡길 수도 없고, 많은 워킹맘이 “차라리 점심을 먹지 말고 점심에도 일해서 1시간 채워라 한다면 그걸 선택할 판”이라고 얘기합니다. ‘라떼’에 비해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워킹맘 육아는 최고 극한 직업입니다.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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