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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기관·방법 제각각…‘규제 중층化’ 심각 [좋은 규제, 나쁜 규제]

(7) ESG의 그늘

  • 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분과위원장
  • 기사입력:2025.05.09 13:08:47
  • 최종수정:2025.05.09 13: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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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SG의 그늘

환경보호와 사회적 책임, 투명한 지배구조를 지향하는 ESG 경영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과제다. 우리나라는 2026년 이후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에는 상장사 전반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의 ESG 규제가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그늘이 될 수 있다.

한국 ESG 규제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금융위·환경부·산업부 등 12개 부처에서 23개 ESG 관련 지침을 발표했고, 한국형 ESG(K-ESG) 가이드라인은 61개에 달하는 평가 항목을 제시했다. 부처별 규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중소기업은 ‘평가 맞춤형 대응’에만 집중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2024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3%가 ESG 준비에 매출의 1.5%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 공급망에 속한 협력 업체들은 대기업과 유사한 수준의 ESG 기준을 요구받으면서 비용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ESG 대응이 기업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는 ‘역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24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분석에 따르면, ESG 우수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이 비교군 대비 30% 낮았다. 또 2023년 중앙대 연구에서도 ESG 투자가 단기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A)을 1.2%포인트 하락시킨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ESG 대응에 자원이 몰리면서, 정작 혁신과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역설’을 보여준다.

한국의 ESG 평가 체계 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47개에 달하는 ESG 평가기관이 제각각 기준과 방법론을 적용하면서, 동일 기업에 대한 평가 결과가 크게 차이 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기업으로 하여금 실질적 개선보다 ‘평가 대응’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는다. 환경정책기본법 등 70여개 환경 관련 법령, 노동·공정거래 분야 사회법, 기업지배구조 관련 법률이 복잡하게 얽힌 규제 지형에서, ESG라는 새로운 층위 규제는 ‘규제의 중층화’ 현상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행정비용과 리스크를 가중시켜 기업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ESG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한국의 ESG는 어때야 할까?

해법은 ‘좋은 규제’로의 전환에 있다. 좋은 규제는 명확하고 단순한 기준, 평가의 일관성, 중복 규제 해소, 글로벌 기준과의 정합성을 갖춘 규제다.

ESG 핵심 공시 항목 과감히 축소해야

이를 위해 첫째, 정부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기준을 벤치마킹해 ESG의 핵심 공시 항목을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 공시 부담을 줄이면서도 신뢰성 있는 정보 공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중소기업을 위한 자가진단 시스템을 디지털 플랫폼에 구축하고, 이를 활용한 단계적 공시 의무화 및 소규모 기업에 대한 규제 유예를 검토해야 한다. ESG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식으로 운영돼서는 안 된다. 셋째, ESG 평가의 일관성을 제고하기 위한 통합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정부가 거래소와 ESG 플랫폼을 통합하고 글로벌 데이터를 연계해 이용의 편의성과 정보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넷째, 규제 중심에서 인센티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 ESG 경영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세제 혜택과 우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ESG 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ESG는 족쇄가 아니라 장기적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한 과도한 규제는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잠식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사진설명

[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분과위원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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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좋은규제시민포럼 지방규제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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