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인 이 모 씨(38)는 소형차 구입을 알아보던 중 온라인 판매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재규어에 이어 한국GM이 온라인 자동차 판매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온라인 구입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 씨는 “수입차의 경우 딜러를 통해 구입하면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옵션도 제각각이라 제값에 사는 건지 헷갈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동차를 미리 시승한 뒤 온라인에서 매매하면 저렴하고 편리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이제 자동차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시대가 열렸다. 최근 일부 업체들이 내놓은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자동차 구매 경로가 다양해지면서 소비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기까진 걸림돌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GM은 지난 9월 26일 오픈마켓 옥션을 통해 ‘쉐보레 더 뉴 아베오 LT(자동변속기)’ 10대를 선착순 한정 판매했다. 소비자가 옥션에서 차량 계약금 200만원을 결제하면 한국GM 담당자가 연락해 세부 옵션을 결정하고 최종 금액을 내는 방식. 영업점이나 딜러사가 아닌 제조사 본사를 통해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진행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결과는 대성공. 이날 정오부터 시작된 한정 판매는 불과 1분 만에 끝이 났다. 이번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인기를 끈 건 그만큼 차량 구입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옥션에서 판매한 한국GM ‘더 뉴 아베오’ 차량이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활성화될지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더 뉴 아베오.
더 뉴 아베오의 온라인 판매가격은 1779만원으로 일반 시중가격과 같지만 상당한 혜택이 숨어 있었다. 옥션은 차량 구매 고객에게 ‘스마일캐시’ 500만원을 증정하기로 했다. 스마일캐시는 옥션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전자화폐. 이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사실상 차량 가격을 30%가량 깎아준 셈이다.
한국GM 관계자는 “더 뉴 아베오 주 고객이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는 30~40대 주부라 신차 프로모션 차원에서 온라인 판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온라인으로 차량을 구입하는 게 낯설지만 워낙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인기를 끈 것 같다. 머지않아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면서 온라인 판매 차종이 다양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등 외국에선 온라인 판매 인기
GM·볼보도 온라인 판매 저울질해
구형 모델·저가차량 위주 확산될 듯
국내 자동차 온라인 판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8일 소셜커머스 티켓몬스터가 국내 최초로 온라인 자동차 판매에 나서 재규어 XE 포트폴리오(정상가 5510만원), XE R-Sport(정상가 5400만원) 모델 20대를 각각 700만원씩 할인된 가격에 내놨다. 이 모델 역시 온라인에 등장한 후 3시간 만에 ‘완판’되면서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이 있었다. 재규어 국내 유통사인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와 공식 딜러사 아주네트웍스가 “티켓몬스터와 할인 판매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며 반발해 ‘유령차 판매 논란’이 일어난 것. 이에 불안감을 느낀 구매자들이 예약을 취소해 실제 판매된 차는 한 대에 그쳤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옥션은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가능성이 있다 판단하고 한국GM 본사와 직접 계약을 맺어 온라인 판매를 진행했다.
비록 논란이 있긴 했지만 티켓몬스터에 이어 옥션에서도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인기를 끌면서 자동차 온라인 매매가 점차 확산될지 관심이 쏠린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 자동차 판매의 장점이 많은 만큼 소비자 입장에선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 분위기다.
온라인 자동차 판매는 일단 가격 경쟁력 면에서 유리하다.
자동차 전시장 임차료나 판매원 인건비 등 자동차 판매에 따르는 각종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하면 같은 브랜드 의류라도 백화점 상품보다 온라인 쇼핑몰 상품이 저렴한 것과 비슷한 논리다. 한 수입차 딜러는 “수입차의 경우 국내 유통마진이 최소 20%를 넘는데 오프라인 판매를 온라인으로 돌리면 이 마진이 줄어 할인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외국에선 온라인 자동차 구입이 낯선 일은 아니다. 미국GM은 2013년 온라인 판매 사이트인 ‘숍클릭드라이브(www.shopclickdrive.com)’를 열었고 볼보는 2014년 8월 유럽에서 온라인으로 신차 사전계약을 받았다. BMW도 지난해 말 영국에서 시범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도입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장둥닷컴도 온라인에서 신차를 판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 국내에서도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테슬라는 내년쯤 국내 시장에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 이미 국내 소비자를 상대로 온라인 사전계약을 받고 있다.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활성화되면 자동차 업체 간 할인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완성차 업체들이 대리점을 통해 차량 판매를 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온라인 등 판매 채널이 다변화되면 실시간 가격 비교가 가능해진다. 당연히 딜러 간 할인 경쟁이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온라인 자동차 판매가 단기간에 확산될지는 의문이다.
당장 자동차 대리점과 영업사원이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전국에 770여개 직영 대리점, 한국GM과 르노삼성 등도 각각 300여개 대리점을 보유했다. 2만5000여명에 달하는 국산 자동차 판매사원들은 자칫 일자리를 잃을까 우려해 온라인 자동차 판매에 강력 반발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한국GM 판매노조는 옥션에서 진행된 더 뉴 아베오 온라인 판매에 대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GM 판매노조 측은 “자동차 온라인 할인 판매는 판매 노동자를 다 죽이는 사망선고”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국GM 관계자는 “대리점주 동의를 얻어 온라인 판매를 기획한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당분간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국산차는 수입차에 비해 온라인 판매가 만만찮을 거란 분석이 많다. 국내 자동차 회사 가격 정책이 외국 업체와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은 완성차 업체가 딜러들에게 차량을 넘기면 딜러 스스로 차량을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의 경우 ‘생산자권장가격’이 있지만 차량 구매 고객이 딜러와 얼마든지 가격 협상을 할 수 있다. 딜러 입김에 따라 차값 할인 폭이 자유롭다는 의미다.
이에 비해 한국은 완성차 업체가 직영으로 대리점을 운영하거나 대리점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다. 대리점이 일종의 ‘원프라이스(One Price)’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완성차 업체의 공식 할인 외 추가 할인을 받기 어렵다. 아무리 온라인 판매를 통해 ‘제조업체-판매자-소비자’ 구조의 중간 단계인 판매자를 생략하더라도 가격 할인이 여의치 않다는 의미다.
“온오프라인에서 판매하는 자동차 가격 차이가 날수록 대리점에서 제값을 주고 산 소비자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 쇼핑몰은 홍보 이벤트, 제조업체 입장에선 재고 처리를 위해 온라인 판매 이벤트를 할 순 있겠지만 국산차 업체가 원프라이스 정책을 고치지 않는 한 온라인 판매 차종이 다양해지긴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가 전하는 분위기다.
한국GM 자동차 온라인 판매가 인기를 끌었지만 ‘완전한’ 온라인 판매가 정착되기까지 과제도 적잖다.
온라인에서 자동차를 구입하더라도 일반 온라인 쇼핑처럼 차량을 집에 가져다주는 건 아니다. 온라인으로 계약금을 내더라도 할부나 옵션 등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자동차 계약은 대리점에 직접 찾아가서 하는 일종의 ‘온오프라인 연계 시스템’이 자리 잡을 거란 전망이 많다. 온라인상에서 자동차 견적을 뽑은 뒤 계약금은 카카오페이로, 잔금은 오프라인 대리점에서 결제하는 르노삼성차 ‘e커머스 시스템’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온라인 판매 차종이 늘어날수록 소비자들은 환영하겠지만 BMW, 벤츠 등의 프리미엄급 모델이나 신차는 당분간 온라인 시장에 등장하기 어렵다. 대리점과 딜러 반발이 워낙 거센 데다 오프라인에서도 잘 팔리는데 굳이 가격을 낮추면서까지 온라인에서 판매할 이유가 없다. 당분간 신차 출시를 앞둔 구형 모델이나 저가 소형 차량 위주로 온라인 판매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의 종합적인 진단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78호 (2016.10.12~10.18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