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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 손잡고 ‘에너지 독립’ 외치는 이 나라[에스토니아 에너지 혁신현장 르포]

[오베르 산업단지 가보니] 축구장만 한 용지에 에너지뱅크 LG엔솔이 만든 배터리 빼곡 삼성물산과는 SMR 짓기로 “韓, 기술력·시공능력 뛰어나 ‘에너지 안보’ 핵심 파트너로”

  • 최원석
  • 기사입력:2025.10.01 17:59:44
  • 최종수정:2025.10.01 17: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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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산업단지 가보니]
축구장만 한 용지에 에너지뱅크
LG엔솔이 만든 배터리 빼곡
삼성물산과는 SMR 짓기로

“韓, 기술력·시공능력 뛰어나
‘에너지 안보’ 핵심 파트너로”
발트 지역 최대 에너지기업인 에스티 에네르지아가 운영하는 산업단지에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설치되어 있다. 하얀 캐비넷처럼 생긴 것이 사람 키 만한 배터리팩이다. [에스티 에네르지아 제공]
발트 지역 최대 에너지기업인 에스티 에네르지아가 운영하는 산업단지에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가 설치되어 있다. 하얀 캐비넷처럼 생긴 것이 사람 키 만한 배터리팩이다. [에스티 에네르지아 제공]

유럽의 강소국 에스토니아가 한국과 손잡고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중립 기조에 발맞추면서도, 러시아 위협으로부터 에너지 안보를 지켜내기 위한 행보다.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이 국가적 에너지 전환정책의 핵심 파트너가 됐다.

지난 달 1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경과 불과 20km 정도 떨어진 오베르 산업단지를 찾았다. 지난 2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에스토니아 최대 배터리 에너지저장시스템이다.

에스토니아 에너지 안보의 보루가 된 이곳에는 LG엔솔이 만든 사람 키 만한 배터리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축구장 크기의 단지 내 총 저장 용량은 26.5메가와트(MW), 12만 가구에 2시간 동안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러시아와 맞닿아있는 에스토니아는 빠르게 전력망 독립을 추진했다. 당시 최종 파트너사로 선정한 게 LG에너지솔루션이다.

발트 지역 최대의 에너지 그룹인 에스티 에네르지아가 처음에 발주했을 때, 총 네 곳의 시공사가 입찰했다. 세 곳은 중국 배터리를 사용하겠다고 했고, 한 곳이 LG엔솔의 배터리를 가져왔다.

LG엔솔을 선택한 곳은 에스티 에네르지아라는 회사다. 크리스탄 쿠히 에스티 에네르지아 이사는 ”민주 진영 국가 중에서 한국,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의 제품이 성능 면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했다. 수명과 효율을 따져봤을 때 기술력이 가장 우수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곳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 위협이 당면한 지금, 중국 제품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태양광과 배터리 등 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세가 무섭지만, 많은 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한국을 유력 선택지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의 우방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 공급망에 의존하는 게 정치적으로는 물론 산업적으로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 역시 주요한 원인이다.

예산과 준공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한국 기업의 시공력도 큰 매력이다. 이곳 에너지저장시스템 역시 계약 체결이후 불과 1년 만에 가동을 시작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올해 2월 10일을 전력망 독립의 날로 선언하면서, 공사를 예정보다 급하게 끝내야 했음에도 LG엔솔은 바뀐 일정까지 맞춰서 납품을 완료했다.

결국 이틀 전인 2월 8일 에너지저장시스템은 정상 가동할 수 있었다. 크리스탄 이사는 ”LG에너지솔루션이 에스토니아의 전력망 독립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에스토니아의 에너지 독립정책]
1)대형 에너지 저장시설 만들고
2)2035 SMR 건립계획 세우고
3)100% 재생에너지 정책 포기
에스토니아의 소형모듈원전(SMR) 업체인 페르미 에네르지아가 2035년까지 조성할 계획인 SMR의 조감도. [페르미 에네르기아 제공]
에스토니아의 소형모듈원전(SMR) 업체인 페르미 에네르지아가 2035년까지 조성할 계획인 SMR의 조감도. [페르미 에네르기아 제공]

에스토니아는 빠른 에너지 전환과 독립을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펼치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 등 일반적으로 경쟁 관계로 일컬어지는 에너지원들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사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여러 에너지 분야에 골고루 강점을 지닌 한국 기업들은 다방면에 걸쳐 에스토니아와 협력 중이다.

원전을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에스토니아는 2035년부터 소형모듈원전(SMR)을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 위도가 높아 일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저 전력원으로 SMR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요코 알렌더 에스토니아 의회 환경위원장이 “국민 3분의 2가 SMR을 지지하고, 의회도 규제를 풀어서 난관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치권과 국민 여론도 긍정적이다.

에스토니아 최초의 SMR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페르미 에네르지아는 지난해 11월 삼성물산과 업무협약(MOU)를 맺고, SMR 조달과 시공을 맡기기로 했다. 이미 예비 건설 부지까지 준비된 상태다.

이 회사가 삼성물산을 선택한 것 역시 기술력과 시공 능력, 경험이었다. 칼레브 칼레메츠 대표는 “삼성물산은 아랍에미리트 등 최근까지도 원전을 지은 경험이 있다”며 “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시간과 예산에 맞춰 시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칼레브 대표는 파트너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원전 시공업체에 직접 질문들을 보냈고, 답변을 한 여러 회사 중에 삼성물산을 낙점했다.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협업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에너지 분야 외에도 방산이나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접점이 커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이미 K9 자주포를 공급하는 등 에스토니아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인구가 적으면서도 혁신 친화적인 에스토니아가 유럽 시장 진출의 중요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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