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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수소연료전지 시작...그는 어떻게 미래를 봤을까[에스토니아 에너지 혁신현장 르포]

엔 운푸 엘코젠 대표 인터뷰 25년 전 아무도 관심없던 시절 기업가 정신 발판으로 기회 찾아 세계 최고 기술력 가진 회사로 키워

  • 최원석
  • 기사입력:2025.10.01 17:49:51
  • 최종수정:2025-10-01 17:5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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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운푸 엘코젠 대표 인터뷰
25년 전 아무도 관심없던 시절
기업가 정신 발판으로 기회 찾아
세계 최고 기술력 가진 회사로 키워
엔 운푸 엘코젠 대표가 지난달 17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운푸 대표는 25년 전 수소연료전지 회사를 설립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시켰다.
엔 운푸 엘코젠 대표가 지난달 17일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운푸 대표는 25년 전 수소연료전지 회사를 설립해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성장시켰다.

“어떻게 25년 전에 수소연료전지 회사를 세웠냐고요? 미래를 봤기 때문입니다.”

시릴 정도로 파란 눈의 남자는 항상 무언가를 지그시 쳐다봤다. 최근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회사의 두 번째 공장 개소식을 할 때도, 그는 말을 빨리 하는 법이 없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항상 침묵이 있었다.

엔 운푸 엘코젠 대표는 25년 전 수소연료전지 회사인 엘코젠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아직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대두되지 않았던 때였고, 수소 기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엑손모빌 같은 석유 회사가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을 기록하던 때였다.

엘코젠은 그 긴 시간을 버티고,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수소연료 셀과 스택은 전 세계 수소연료 기술의 표준이 된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마다 엘코젠 제품보다 성능이 좋은 지를 따질 정도다.

지금 엘코젠은 150명의 직원을 두고, 1억7000만 유로(약 28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HD현대도 정기선 부회장의 주도로 2023년 엘코젠에 4500만 유로(약 640억 원)을 투자했다.

이를 발판삼아 엘코젠은 지난 달 두 번째 공장을 열었다. 연 10메가와트(MW)였던 생산능력은 앞으로 360MW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 공장은 생산 공정을 처음으로 자동화해 셀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한 달에서 일주일로 줄였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다.

운푸 대표는 25년전 수소연료전지 회사를 세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연구개발 역량이 충분하고, 수소연료전지도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인프라도 갖춰져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은 전기전자 분야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0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타르투 대학에서 공부했고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오스트발트는 수소연료전지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었다. 전극과 전해질, 이온들이 전지 내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지, 전기화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오늘날 수소연료전지가 사실상 에스토니아에서 탄생한 셈이다.

엘코젠 사무소의 가장 큰 회의실 이름도 ‘오스트발트 방’이다. 문 바로 앞에 오스트발트의 업적을 기리는 팻말이 놓여져 있다.

다만 과학적 토대가 다 마련된 것과 그걸로 사업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운푸 대표는 “당시는 수소연료전지를 만들려면 비용 문제가 있었다”며 “바로 거기서 사업의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그는 “기술의 단가를 낮추고 사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업가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운푸 대표는 이공계 연구자 출신이 아니다. 처음에는 기술의 원리도 잘 몰랐던 사업가였다. 그러나 기술을 둘러싼 환경과 사업의 기회를 엿보고 기업가 정신으로 달려들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수소연료전지 제조사, 엘코젠이다.

기술이 좋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다. 테크 사업이라고 해서 꼭 연구자가 시작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사업가가 시작하는 게 더 유리한 면도 있다. 운푸 대표는 “연구자들은 아이디어도 좋고, 사업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실패를 많이 한다”며 “제품 개발이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사업을 하려면 고객이 필요로 하는지, 제조 가능한지, 스케일업 할 수 있는지, 비용 효율적인지, 공급망은 확보할 수 있는지 등을 모두 따져야 한다”며 “연구자들이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연구개발과 사업화는 별개의 영역이고, 시장에서 기회를 보는 사업가들이 활동할 수 있어야 산업이 성장한다는 것이다.

다만, 엘코젠은 내부 연구개발은 물론, 외부 연구기관과도 활발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공장 개소식에도 학계와 연구기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 사업 모델을 만들었으면, 그 다음부터 승부는 기술력에서 갈린다. 엘코젠의 150명 넘는 직원 중 20% 가까이가 박사 학위 소지자다.

운푸 대표는 “시장을 통해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목표를 정한 다음, 연구기관 측에 재료나 재조 과정을 제안하는 등 끊임없이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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