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한국석유공사 여수지사 석유비축기지를 찾았다. 바닷가 부두(제티)에 300m가 넘는 유조선(VLCC)이 접안해 있었다. 부산 해운대의 80층짜리 아파트 '두산위브더제니스' 높이보다 긴 배다. 기지에 비축돼 있던 중동 오만산 원유가 이 유조선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오만산 원유를 빼낸 공간에 미국산 원유를 채울 예정이다. 앞으로 한국이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시그널'이다.
12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석유공사는 올해 중동산 중질유 600만배럴을 미국산 경질유로 교체한다. 연간 통상 교체 물량 200만배럴의 3배 규모다.
석유공사는 이를 위해 비축하고 있던 중동산 원유를 판매하고, 미국산 원유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까지 미국산 원유를 200만배럴씩 구매하는 계약 2건을 맺었다. 남은 한 건도 올해 안에 체결할 계획이다. 올해 계약한 미국산 원유는 내년에 여수 비축기지에 입고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이 같은 조치가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줄이는 데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석유비축기지는 지상탱크와 3개의 지하 암반공동으로 구성돼 있다. 돔 지붕으로 덮인 지상탱크에 500만배럴, 지하공동에 4700만배럴을 담을 수 있다. 석유공사 전체 비축유 9900만배럴의 절반이 이곳 여수에 저장돼 있다.
지하 암반공동은 지하 30m부터 60m까지 땅을 굴착해 조성됐다. 공동 주변에는 수벽공을 설치하고 수압을 통해 원유의 누출을 막는다. 이 때문에 지상에서는 암반공동과 연결된 파이프만 보인다.
이달 실어내는 오만산 비축유는 암반공동에 연결된 파이프를 통해 유조선에 실린다. 시간당 5만4000배럴의 원유가 옮겨져 200만배럴을 실으려면 꼬박 48시간이 걸린다.
[신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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