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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회장의 ‘승계 밑그림’은…

얽히고 설킨 현대차 지배구조

  • 배준희
  • 기사입력:2025.05.14 21:00:00
  • 최종수정:2025-05-14 10: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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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 설킨 현대차 지배구조

조기 대선·상법 개정 움직임 등과 맞물려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재계 이목이 쏠린다. 최근 현대차그룹은 사외이사 권한과 역할 확대를 명분으로 선임(先任)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재계에서는 이를 대선·상법 개정안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보고 있다.

이런 움직임과 맞물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배구조의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지에 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정 회장 개인 평판(Reputation)에 가려졌지만,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대기업 집단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지 못했다. 지난 연말 조직 개편에서 지배구조를 포함해 경영 전반을 총괄하던 기획조정실을 ‘본부’로 재편하고 수뇌부를 물갈이하는 등 눈에 띄는 움직임도 목격된다. 다만 정 회장이 재계에서 대외 평판에 민감한 경영자로 평가받는다는 점과 현대모비스 분할·글로비스 합병, 현대엔지니어링 IPO(기업공개) 잇따른 무산 등 학습 효과에 비춰 수조원을 웃도는 승계 재원을 국내 자본 시장에서 모두 마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사진설명

선임사외이사제 도입

주주권 강화 트렌드 대비

최근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등 3사가 선임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심달훈 현대차 사외이사, 조화순 기아 사외이사, 그리고 김화진 현대모비스 사외이사가 각각 초대 선임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선임사외이사제는 사외이사 ‘대표’를 지명해 이사회에 실질적 리더십을 부여하는 장치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 간 논의를 주도하고 경영진(사내이사)과 정보 비대칭 완화로 사외이사를 의사결정 중심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는다. CEO·총수 등 사내이사 영향력이 강한 이사회를 견제하고 주주·이해관계자 간 접점 역할도 맡는다.

국내에서는 금융권의 경우 ‘금융사 지배구조법’을 따라 선임사외이사제도를 의무화했다. 비금융권인 현대차그룹은 선임사외이사제도 도입 의무가 없다. 삼성전자도 의무가 없지만 지난 2023년 10월 도입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조기 대선·상법 개정안에 대비해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Legitimacy)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금까지 국내 대기업 이사회에서는 실질적 독립성 확보가 해묵은 과제로 지목됐던 터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 그룹 지배력 강화·승계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다중 이슈가 얽히고설켜 있다. 현대차그룹에 선임이사제는 이 같은 이해관계 난맥상을 일정 수준 완충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단 평가다.

선임사외이사제도 외에도 현대차그룹이 풀어야 할 지배구조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2018년 현대모비스 분할·글로비스 합병과 2021년 현대엔지니어링 IPO까지 연거푸 무산된 뒤로는 노출을 최대한 꺼리는 기조로 평가된다.

숙원 과제는 순환출자 구조 해소다. 순환출자는 A계열사가 B사 주식을, B사가 C사 주식을 갖고 있는데, C사가 A사 주식을 소유한 지배구조를 말한다. 10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뿐이다. 순환출자 구조는 ▲지배력 왜곡 ▲경영 투명성 저하 ▲이해관계 충돌 ▲자본 배분 비효율 등 여러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지적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 현대차 → 기아 → 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다. 그룹 지배력 원천은 현대모비스 지분이지만, 정 회장이 직접 보유한 모비스 지분은 0.3% 수준에 그친다. 특히 기아 → 현대모비스 지분 관계는 현대차그룹 순환출자의 핵심 축으로 평가된다. 양 사 간 지분 관계는 정 회장이 낮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를 낳는다. 현대모비스 외 정 회장의 주요 계열사 지분율은 현대차 약 2.7%, 기아 약 1.8%에 불과하다.

이해관계 충돌과 자본 배분 비효율도 순환출자 난맥상 중 하나다. 순환출자로 얽히고설킨 계열사는 경영 효율성보다 지배력 유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수익성 낮은 계열사에도 그룹 전체 지배력 유지를 위해 무리하게 지원하는 폐단 등이 단적인 예다. 이는 그룹 전체 자본 배분 비효율과 주주권 침해 등을 초래할 수 있단 분석이다.

사진설명

순환출자 어떻게 풀까

기획조정실 → 본부로 개편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해서라도 지배구조 정비를 마냥 유예 상태로 두는 것은 정 회장에게도 달갑지 않은 선택지다.

한때 시장에서는 ▲현대모비스 중심 지주사 체제 전환 ▲글로비스 지분 매각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통한 승계자금 마련 등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현재로선 단기간 재추진은 쉽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2018년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존속 모비스(핵심부품·투자부문)’와 ‘분할 모비스(모듈·AS부문)’로 분리하고 분할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공개적으로 시도한 유일한 지배구조 개편 로드맵이었지만, 분할합병 비율 불공정 논란 등에 막혀 사실상 사장(死藏)된 카드가 됐다. 이어 2021년 말 추진됐던 현대엔지니어링 IPO도 ‘상장제도를 승계 재원 마련에 오용한다’는 비판 속에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마저 부진하자 결국 상장을 철회했다.

재계에서는 당시 정 회장이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승계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설익은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던 게 패착이 된 것으로 본다. 연거푸 지배구조 개편이 무산된 이후 정 회장은 국내 자본 시장에서 공개 자금 확보는 사실상 거리를 두기로 했다는 게 재계 평가다.

최근 지배구조 관련 ‘의도된 거리 두기’를 짐작할 수 있는 정황도 목격된다. 지난해 말 조직 개편에서 현대차는 계열사 경영 전반을 총괄하던 기획조정실에 큰 변화를 줬다.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은 계열사 경영 관리를 총괄하던 그룹 컨트롤타워로 과거 삼성전자 미래전략실과 유사한 기능을 맡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총수 일가 핵심 참모 격 인사들이 사장급 보직인 실장 자리를 맡아왔다.

눈에 띄는 대목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장재훈 부회장과 미래 권력을 두고 구조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던 김걸 전 기획조정실장이 지난해 11월 돌연 정몽구재단 부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점이다. 김걸 전 실장은 지배구조 개편 잇단 무산에 이어 계열사 아파트 특혜 분양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그룹 내 권력 구도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는 시선이 존재한다.

둘째, 기획조정‘실’을 기획조정‘본부’로 개편하며 장 부회장에게 ‘담당’을 맡겨 겸직시킨 것이다. 형식적으론 장 부회장이 종전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에서 완성차 품질 관리 등을 총괄하는 부회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계열사 조율·통합을 아우르는 핵심 업무까지 맡아 권한이 집중된 구도다. 다만 기획조정 기능이 과거보다 축소됐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기획조정본부를 전담하는 사장급 임원이 없어져 실질적으로는 조직 규모가 축소됐단 평가가 그룹 안팎에선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획조정실은 MK 명예회장 시대 유산이라는 조직 정체성이 강한 곳으로 평가된다”라며 “권한 집중형 컨트롤타워에 대한 정의선 회장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조치”라고 평가한다.

의사결정 통제권을 소수 인사에게 집중시켜 내부 통제를 더 강화한 조치라는 해석도 나온다. 과거 모비스 분할 같은 주요 사안이 외부에 노출됐던 전례에 비춰 지배구조와 승계 등 민감한 사안은 정 회장과 장 부회장 등 소수 인사만 공유할 가능성이 높단 관측이다. 행동주의 펀드를 둔 운용사 관계자는 “과거 2018년 엘리엇 사태처럼 너무 일찍 전략이 노출되면 행동주의 펀드 등의 타깃이 될 수 있다. 또 사장급 인사는 공적 네트워크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 정보 유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기획조정실을 부사장급 조직으로 격하해 의사결정 권한을 축소시키고 정보 누설 리스크를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출자 고리 외 계열사 매각할 듯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이 해법

이렇다 보니 현시점에서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 개편을 서둘러 추진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평이다. 국내에서 섣불리 비상장 계열사 상장 등을 추진하기보다 승계 정당성 확보에 주력해 경영권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정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정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정몽구 명예회장 보유 주식 증여 및 상속 ▲모비스 중심 지배구조 안정화 등이 거론된다.

핵심은 승계 재원 마련이다. 현재 정 회장의 모비스 지분은 0.3%에 불과하다. 정몽구 명예회장 현대모비스 지분 7.3%를 더해도 약 7.6%다. 이사회를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최소 지분율 15% 정도를 확보하려면 8%를 추가 확보해야 한다. 최근 현대모비스 시가총액(5월 7일 기준·약 24조원)을 고려하면 최소 8% 추가 지분 확보에만 약 2조원이 소요된다. 상속이든 증여든 막대한 세금도 부담해야 한다. 두 경우 모두 50%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데다 최대주주는 할증해 세금(60%)이 매겨진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현대모비스 외에도 현대차 5.4%, 현대제철 11.8% 등을 갖고 있다. 최근 종가 기준 계열사 지분 가치에 세율 60%를 적용하면 정 회장이 부담해야 할 세금만 3조원 가까이 된다. 세부담까지 포함할 경우 정 회장이 마련해야 하는 필수 재원은 6조원에 육박한다.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매각이 검토될 수 있는 전략자산으로는 순환출자 고리 바깥에 위치한 계열사가 꼽힌다.

정 회장 개인 지분이 가장 많은 계열사 중 하나는 20%를 들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회장 승계 자금줄로 주목받은 계열사다. 현대글로비스는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 회장 부자가 2001년 자본금 50억원으로 설립했으며 그룹 물류를 전담한다. 당초 정 회장 지분율이 약 40%에 달했으나 2005년 말 상장하면서 32% 수준으로 줄었다. 이후 정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려 2015년과 2022년 두 차례 지분을 매각해 지금의 지분율로 내려갔다.

다만, 현 수준에서 글로비스 지분 추가 매각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 회장 외 그룹사 보유 지분율이 10%를 밑돌아 자칫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어서다. 그 외엔 이노션 2%, 현대위아 1.95%, 현대오토에버 7.3% 등을 갖고 있다.

최근엔 미국 보스턴다이내믹스 나스닥 상장을 통한 ‘정공법’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일감 몰아주기로 큰 회사’라는 인식이 뿌리 깊은 글로비스 지분 매각보단 승계 정당성 확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어서다. 정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21.9% 보유했다. 현대글로비스도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1%를 확보하고 있고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도 HMG글로벌을 통해 간접 보유 중이다.

나스닥 상장이 베스트 시나리오지만, 단기간 상장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 인수 첫해 19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낸 데 이어, 2022년 2551억원, 2023년 334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금흐름 불확실성이 큰 탓에 몸값도 ‘고무줄’이다. 최저 2조4000억원에서 최고 30조원까지 거론된다. 최저 몸값은 현대글로비스가 지난해 사업 보고서에 기재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11%에 대한 취득원가(2647억원)를 100%로 환산한 가치다.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최소 30조원 이상 기업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재로선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2021년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당시 대주주였던 일본 소프트뱅크와 맺었던 풋옵션(매수 청구권) 행사 시한이 2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올 상반기 IPO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소프트뱅크 잔여 지분을 떠안는 것 외엔 달리 선택지가 없다. 소프트뱅크 잔여 지분 인수 땐 IPO 목표 시한이 사라져 정 회장 승계 추진 일정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순환출자 고리 밖에 있는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와 세금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현시점에선 서둘러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실익이 별로 없는 상황”이라며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마저 미뤄진다면 명예회장이 고령인 점을 감안할 때 증여보단 상속으로 가닥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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