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 회장이 이끄는 DB그룹이 연일 시끌시끌하다. 최근 DB월드와 DB메탈 합병을 추진하자 핵심 계열사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반발하고 나서면서 논란이 뜨겁다.

DB월드-DB메탈 합병하기로
자본잠식 DB메탈 살리기 목적
DB그룹 골프장 운영, 부동산 개발사인 DB월드는 최근 이사회를 열고 DB메탈 흡수합병을 결의했다. DB월드와 DB메탈 합병비율은 1 대 0.03624로 합병가액은 각각 1만1341원, 411원이다.
두 회사가 합병하는 것은 자본잠식 상태인 DB메탈을 살리기 위해서다.
DB메탈은 합금철 분야 국내 1위 회사로 연간 50만t에 달하는 넉넉한 생산 규모를 갖췄다. 2022년 당시 연결 기준 매출 6436억원, 영업이익 1494억원을 기록해 영업이익률이 20%를 넘을 정도로 실적이 탄탄했다. 하지만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 여파로 최근 극심한 경영난을 겪는 중이다. 지난해 영업손실 126억원, 순손실 767억원을 내 수익성이 악화됐다. 매출도 2022년 6436억원에서 지난해 2003억원으로 어느새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DB메탈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강원 동해시 합금철 공장 가동률은 19.57%로 20%에도 못 미친다. 15개 생산라인 중 두 개의 라인만 가동하는 중이다. 2021년 말까지만 해도 가동률이 73.81%에 달했지만 생산라인 가동이 상당 부분 멈췄다는 의미다. DB메탈의 지난해 말 기준 자본잠식률은 79.3%에 달했다. 최근 3년간 직원 300여명 중 절반 이상인 160여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DB그룹은 고심 끝에 DB메탈과 DB월드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DB월드는 충북 음성 골프장 레인보우힐스CC를 운영하면서 부동산 임대, 운영 등 자산관리, 컨설팅 사업을 해왔다.
당장 이번 합병 효과로 취약했던 DB메탈 재무 구조부터 개선될 전망이다. 합병 전 DB메탈 부채비율은 1395%에 달했지만 합병 이후 부채비율은 73.9%까지 줄어든다. 부채비율이 16%로 사실상 무차입 상태인 DB월드와의 합병 효과 덕분이다.
DB그룹은 두 회사를 합병한 후 DB메탈 생산시설이 위치한 동해시 합금철 공장용지 중 절반가량인 10만평 유휴부지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다고 합금철 사업을 아예 접는 것은 아니다. 합병 이후 합금철 사업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철강 업황 변화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DB그룹 측은 “DB메탈의 대규모 유휴부지를 확보하고 DB메탈 자회사 DB월드건설의 시공능력과 결합해 부동산 개발·시공·관리·운영 등 종합 부동산 회사로 키울 계획”이라고 합병 배경을 설명했다.
DB하이텍 소액주주 반발
“DB메탈 구하기에 하이텍 자금 동원”
두 회사 합병을 두고 벌써부터 논란이 뜨겁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DB메탈 자본잠식을 해소하는 데 DB하이텍 자금이 동원됐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DB하이텍은 DB월드 지분 81.76%, DB메탈 지분 28.83%를 보유했다. 앞서 DB하이텍은 지난해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DB월드에 890억원을 투자했는데, 결국엔 DB월드와 DB메탈 합병으로 ‘DB하이텍이 DB메탈 살리기에 동원됐다’는 것이 소액주주들 주장이다.
이번 합병은 DB메탈이 소멸하는 흡수합병 형태라 양 사 합병이 완료되면 DB하이텍이 보유한 DB메탈 지분 28.83%는 사라진다. 또 DB하이텍이 보유한 DB월드 지분은 지배구조 변경에 따라 81.76%에서 72.1%로 대폭 줄어든다. 이와 동시에 김남호 DB그룹 회장이 보유한 DB월드 지분은 기존 3%에서 6.9%로 2배가량 늘어난다.
무엇보다 DB하이텍 실적이 회복세인 상황에서 DB메탈이 보유한 채무까지 DB월드가 끌어안으면 DB하이텍에 부실이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DB하이텍은 전통 공정으로 불리는 200㎜ 웨이퍼를 활용해 전력반도체(기기 내 전력을 제어하고 변환하는 칩),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을 생산하는 세계 10위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이다. 한때 실적 부진에 시달려왔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DB하이텍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5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8% 증가했다. 매출도 2974억원으로 같은 기간 13.7% 늘었다. 전력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지난해 70%대까지 떨어졌던 공장 가동률이 올 1분기에 90%대로 상승한 영향이 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국 내 ‘반도체 자립’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DB하이텍이 수혜를 입었다는 분석이다. 상당수 중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가 미국 대신 다른 나라 업체에 파운드리를 맡기기 시작하면서 DB하이텍의 중국 내 고객 포트폴리오가 넓어졌다. 올 1분기 DB하이텍의 중국 매출 비중은 58%로 전년 동기(56%) 대비 2%포인트 높아졌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반도체 양산 내재화 기조가 확대되면서 중국 법인을 보유한 DB하이텍 파운드리 수요가 늘었다”면서도 “DB월드의 DB메탈 합병으로 DB메탈 영업적자가 연결 실적에 반영되는 점은 악재”라고 진단했다. 재계 관계자 역시 “DB하이텍 실적이 겨우 되살아난 상황에서 계열사 살리기에 동원되는 것을 두고 DB하이텍 주주 불만이 극에 달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DB메탈 차입금에 김남호 회장 부친인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지급보증이 얽혀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용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3년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준기 창업회장이 DB메탈 차입금에 대해 1512억원 지급보증을 섰다고 주장했는데 아직까지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이래저래 DB하이텍 주주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DB아이엔씨, 메탈 합병 철회
지주사 전환 회피 목적?
사실 DB그룹이 DB메탈 합병안을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3년 당시 DB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IT 기업 DB아이엔씨가 DB메탈을 흡수합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DB아이엔씨 측은 “IT, 무역, 브랜드 사업이 안정적 성장세를 보이지만 지속 성장하려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가능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사업 포트폴리오 확보가 필요하다”며 합병 목적을 설명했다. 기존 IT, 무역, 브랜드 사업 등에 더해 DB메탈 전문 분야인 합금철 사업을 합쳐 성장성을 더하고 경영 효율성도 높이겠다는 의미다.
다만 두 회사 합병을 두고 DB아이엔씨의 지주사 강제 전환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면서 논란이 거셌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자산이 5000억원을 넘고, 자회사 지분 가치가 전체 자산의 50% 이상인 기업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이때 지주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DB아이엔씨는 당시 시가총액이 2조원 넘는 자회사인 DB하이텍 주가가 오름세를 보이면서 지주사 강제 전환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DB아이엔씨가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12.42%에 불과한데, 지주사로 강제 전환될 경우 보유 지분 30% 선을 맞추기 위해선 수천억원대 추가 자금이 필요해졌다.
당시 금리 부담이 커지면서 대규모 차입이 쉽지 않은 데다 주력 계열사인 DB하이텍 지분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DB아이엔씨가 DB메탈을 흡수합병해 총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자회사 지분 가치 비율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를 두고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즉각 딴지를 걸었다. “이번 합병을 통해 DB 자산을 늘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강제 전환을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고 꼬집었다. KCGI 측은 당시 DB하이텍 지분 7.05%를 보유한 핵심 주주였다.
시장에서는 DB아이엔씨와 DB메탈 합병을 두고 김남호 DB그룹 회장 일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준기 회장과 장남 김남호 회장, 장녀 김주원 부회장 등 오너 일가는 당시 DB아이엔씨 지분 43.82%를 보유한 상태였다. 또한 김남호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DB메탈 지분 95.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DB그룹은 합병 이후 김 회장과 오너 일가의 DB아이엔씨 지분이 52.47%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논란이 커지자 DB그룹은 두 회사 합병을 끝내 철회했다.
이후 DB는 ‘앙숙’이었던 행동주의 펀드 KCGI와 전격 손을 잡았다. 2023년 말 KCGI의 투자목적회사 캐로피홀딩스로부터 DB하이텍 주식 25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총 1650억원에 양수했다. DB가 사들인 KCGI 지분은 5.6%가량이다. 이로써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아이엔씨 지분율은 12.42%에서 18%로 늘고, KCGI 지분율은 7.05%에서 1.42%로 줄었다. 이후에도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지분을 조금씩 늘려갔다.

DB손보 활용해 지주사 전환할까
최근 3년간 오너 일가에 1350억 배당
DB그룹이 KCGI와 화해 모드로 돌아섰지만 숙원 과제인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DB그룹 제조업 계열사의 최상위 회사인 DB아이엔씨는 DB하이텍 지분 18.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DB하이텍은 DB글로벌칩, 동부철구, DB기술 등을 자회사로 거느린다. DB아이엔씨는 오너 일가 지분율이 42%에 달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DB그룹은 DB아이엔씨와 DB메탈 합병을 추진해 지주사 전환을 회피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외에도 수차례 지주사 전환을 피했지만 언제든 지주사 전환을 다시 통보받을 수 있다.
DB그룹은 2021년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자 DB하이텍 설계사업부를 자회사로 물적분할했다. 이로 인해 DB하이텍 주가가 급락하면서 지주사 전환 요건에서 벗어났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DB하이텍 주가를 인위적으로 눌러 지주사 전환을 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DB그룹은 지난해 5월에도 지주사 전환을 통보받았지만 DB하이텍 주가 하락으로 다시 요건에서 제외됐다.
DB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될 경우 지주사는 2년 내 자회사인 DB하이텍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DB아이엔씨의 DB하이텍 지분이 18.6% 수준인 만큼 12%가량을 추가 매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DB하이텍 시가총액이 1조7200억원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2000억원 넘는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DB아이엔씨의 현금성 자산은 700억원 수준에 그친다.
재계에서는 DB그룹이 지주사 전환 이슈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금융 계열사 DB손해보험을 활용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DB그룹 오너 일가가 DB손해보험을 통해 충분한 현금흐름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DB손해보험은 밸류업을 위해 배당을 늘리면서 오너 일가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4082억원(주당 6800원)을 배당했다. 이 배당으로 김준기 회장은 286억원, 장남 김남호 회장은 433억원, 장녀 김주원 부회장은 151억원을 챙겼다. 세 사람이 받은 배당금은 2022년 589억원, 2023년 679억원, 지난해 871억원으로 최근 3년간 1350억원에 달한다. DB손해보험의 올해 목표 주주환원율이 지난해(23%)보다 한참 높은 35% 수준이라 오너 일가가 받아갈 배당금이 한 해 1000억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오너 일가가 직접 자금을 투입해 DB하이텍 지분을 매입, 지주사 전환에 나서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DB아이엔씨가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오너 일가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식이다. 앞서 2015년에도 DB메탈이 워크아웃 체제로 접어들자 김남호 회장은 경영 정상화 협약에 따라 571억원 유상증자 중 353억원을 직접 부담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DB그룹이 핵심 계열사 DB하이텍을 뒷배 삼아 자꾸 계열사 합병, 물적분할 같은 꼼수를 쓰는데 이제는 지주사 전환 이슈를 투명하게 처리해야 소액주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9호 (2025.05.14~2025.05.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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