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이하 한화에어로) 기습 유상증자로 촉발된 한화그룹 승계 논란이 정치권으로 비화(飛火)하고 있다. 유증 발표 뒤 논란이 확산하자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4월 2일 페이스북에 사실상 한화 사례를 콕 집어 비판 글을 올렸다. 이후 한화 측은 쫓기듯 개편안을 내놨다.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를 축소하고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갖고 있는 한화에너지를 할인 없이 시가에 참여시키는 게 뼈대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한화 승계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는 등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권 미운털 박힌 배경은
상법 개정 등 명분 빌미
최근 정치권에선 한화에어로 대규모 유증 논란과 한화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를 다루는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 주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남근·오기형 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약 1시간 40분 동안 의원들이 돌아가며 현안에 관해 촌평했는데, 마치 상임위원회 회의를 연상케 했다는 후문이다.
토론회에선 크게 선(先) 지배력 강화·후(後) 대규모 증자, 이사회 낮은 독립성 등이 입길에 올랐다. 발제를 맡은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화에어로 유상증자는 총수 일가 경영권 승계 문제를 넘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가 가진 여러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토론회 직후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당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5명은 화상으로 참석했으며 전체 논의를 마치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며 꼬집었다.
재계에서는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려 한화그룹이 대선 의제를 둘러싼 정치권 정책 선명성 경쟁(鮮明性 競爭)에 휘말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 등 구 야권에선 한화 사례를 계기로 ‘소수주주 보호’ 의제 띄우기에 나섰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재계 대관부서 관계자는 “승계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소수주주 보호는 시민 친화적 개혁 어젠다”라며 “한화 사례는 상법 개정·공정위 개입 명분 확보를 위한 타깃으로 쉽게 말해 ‘손보기 쉬운’ 케이스”라고 촌평했다.
민주당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재계에서는 한화그룹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명 전 대표 대선 승리 땐 입법부와 행정부를 압도적으로 장악한 단일 권력 세력이 등장하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과거와 차원이 다른 정책 대응 역량이 요구되는 만큼 한화그룹이 꼬인 대정치권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분 증여했지만
남은 과제 산적
한화그룹은 금융당국·정치권 압박을 의식해 ▲김승연 회장 지분 증여 ▲일반 유증 규모 2조3000억원으로 축소 ▲나머지는 할인 없이 대주주가 시가 참여 등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한화 측은 “한화에너지가 확보한 1조3000억원은 승계에 사용되지 않았고 김승연 회장 지분 증여로 승계는 이미 완료됐다”면서 “한화에어로는 유럽 진출 등 중장기 투자(총 11조원)를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했으며 대주주 참여와 승계 마무리 발표 등으로 최근 주가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 “일반 유증 규모를 2조3000억원으로 축소하고 나머지는 대주주가 시가로 참여해 소액주주 부담도 줄였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옥상옥 지배구조부터 경영 역량 검증, 승계 재원 마련까지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

과제 1. 옥상옥 지배구조
후진적 지배구조 꼬리표 떼야
이번 유증 논란으로 한화그룹은 ‘옥상옥(屋上屋) 지배구조’를 두고 딜레마적 상황에 처했단 평가다.
옥상옥 지배구조는 지배기업(지주사) 상단에 간접 지배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회사(한화에너지 등)가 존재하는 이중 구조를 일컫는다. 한화 입장에선 지배구조 정비와 총수 일가 지배력 확대를 위해 한화에너지와 ㈜한화 간 합병이 필요하지만, 정치권 압박에 실행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후진적 지배구조’ 꼬리표가 붙은 ‘옥상옥’ 구조를 그대로 두는 것도 한화 입장에선 다음 정권에서 잠재 리스크로 지적된다. 지배력 강화(한화에너지-㈜한화 합병)와 정당성 확보(합병 추진 않는 것) 사이에서 한화 승계 시나리오의 실타래가 꼬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한화그룹은 ‘한화에너지-㈜한화-계열사-증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한화에너지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화 지분을 보유해 옥상옥 구조다. 한화그룹은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는 탓에 지주사 체제는 아니지만, ㈜한화가 지주사 역할을 한다.
이번 증여 후 ㈜한화 지분율은 한화에너지 22.2%, 김승연 회장 11.3%, 김동관 부회장 9.8%, 김동원 사장 5.4%, 김동선 부사장 5.4% 등이다. 삼 형제가 한화에너지 지분 100%를 갖고 있어 ㈜한화 직간접 지분율은 42.7%로 뛴다. 실질적인 그룹 총수 역할을 하는 김 부회장의 경우 ㈜한화 직접 지분은 약 10%에 불과하지만, 간접 지배력은 이를 훌쩍 웃돈다.
특히 총수 일가가 100% 지배하는 회사(한화에너지)가 그룹 지주사를 거쳐 계열사 등을 직간접 지배하는 구조가 입길에 오른다. 간접 지배력을 행사하는 한화에너지의 경우 외부 이해관계자 감시가 불가능에 가깝다. 소유구조가 분산된 지주사와 이해상충 우려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이 탓에 지배구조 정비를 위해 현 옥상옥 구조를 어떤 형태로든 손봐야 하지만, 정치권 압박에 한화 측은 한화에너지와 ㈜한화 간 합병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대주주인 삼 형제가 한화에너지 IPO로 일부 구주를 현금화하고 상장 이후 ㈜한화와 합병으로 한화그룹 지배력을 키운다는 구상이었지만 이는 현재로선 실행하기 힘든 카드가 됐다.
합병을 추진 않겠다는 한화 측 판단을 두고 단기적으론 현 체제 유지가 중립 시나리오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주사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여러 규제가 적용된다. 일반 지주사는 금융 계열사를 소유할 수 없다. 또 지주사(한화)는 상장 자회사(한화에어로 등) 지분을 30%(비상장사 50%) 이상 보유해야 하고 자회사는 상장 손자회사(한화오션 등)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한화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배경이다. 현재 ㈜한화는 한화생명 등 금융 계열사를 두고 있다. 주력 계열사 한화오션은 ‘한화에너지-㈜한화-한화에어로-한화오션’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에 속한다. 지주사 체제 전환 땐 한화생명 등 금융 계열사를 분리해야 하고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도 3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최근 한화에어로가 한화오션 지분율을 30.4%까지 끌어올리자 지주사 전환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다.
민주당 입법 독주로 상법 개정안 불씨가 여전한 점도 부담 요인이다. 대선 국면에서 상법 개정은 주요 정책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개미 표심’을 노려 상법 개정을 밀어붙일 태세다. 유증 사태가 상법 개정 강행의 빌미가 됐단 꼬리표가 붙는 것도 한화그룹 재계 평판엔 흠결로 작용할 수 있다.
과제 2. 경영 능력 검증
장남 OK· 2남 3남 ‘물음표’
지분 승계는 일단락됐지만, 삼 형제는 경영 역량으로 승계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 형제 가운데 장남 김동관 부회장은 대체로 승계 정당성을 인정받는단 평가다. 김 부회장은 방산·조선·에너지 등 핵심 사업 영역을 챙긴다. 다만 한화오션·한화에어로 사례처럼 지배력 강화를 위한 의사결정과 재무안정성(주주·시장 신뢰 확보) 간 우선순위가 충돌할 때 전자에 주력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 점은 부담 요인이다.
차남 김동원 사장과 삼남 김동선 부사장 입지는 탄탄하지 못하단 평이 나온다. 두 형제는 아직 주요 계열사 등기임원에도 오르지 못했다.
김 사장은 한화 금융 부문을 이끌 것으로 점쳐진다. 한화 금융 부문은 ㈜한화가 43.2% 지분을 보유한 한화생명을 통해 계열사 지배력을 유지한다. 김 사장은 중장기적으로 금융 부문 분리·독립경영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독립경영을 위해선 지주사 전환부터 지분율 확대까지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김 사장의 직접 지배력이 취약하다. 그의 한화생명 지분은 0.03%에 불과하다. 향후 지급받을 RSU(양도제한주식)도 현재 0.2%에 그친다. 증여와 한화에너지로 확보한 ㈜한화(10.5%) 간접 지배력을 합쳐도 그의 한화생명 영향력은 5%에 못 미친다. 계열 분리에 나서더라도 삼 형제 등 특수관계인 도움 없인 안정적 지배구조 확보가 힘든 상황이다.
2019년 김 사장 주도로 설립했던 캐롯손해보험이 6년간 적자를 내다 모회사(한화손보)에 흡수합병될 처지가 되면서 리더십에도 금이 갔다. 캐롯손보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간 누적 3339억원의 적자를 냈다. 수익성 낮은 자동차보험과 소액 단기보험 위주로 상품을 꾸린 것이 패착으로 지목된다. 김 사장이 총괄 중인 글로벌 사업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유통·로봇·반도체 계열사를 맡게 될 삼남 김동선 부사장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는 평가다. 현재 김 부사장은 총 6개 회사(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한화로보틱스·한화비전·한화모멘텀·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을 맡고 있다. 아워홈 인수 전후 김 부사장 승계 정당성에 관한 평가가 명확히 갈릴 전망이다. 다만 인수자금은 물론 후속 투자까지 자금 조달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인수자금 7500억원 가운데 2500억원만 자체 투입한다. 나머지는 재무적투자자(FI)와 인수금융으로 조달한다. 시장에선 김 부사장 측이 아워홈 인수로 현금 마련이 다급해져 한화에너지 상장을 다소 서두르게 됐단 분석도 나온다.
과제 3. 증여세 어디서
한화에너지 IPO·감액배당 저울질
증여세 재원 마련도 과제다. 증여세 규모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증여 개시일인 4월 30일 전후 각각 2개월인 3월, 4월, 5월, 6월 평균 주가로 결정된다. 증여세 납부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시선이 우세하다. 지분이 삼 형제에게 분산돼 이뤄졌고 5년 분할 납부를 고려하면 연간 부담 금액이 벅차다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한화 승계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확산하고 있는 점은 승계 재원 마련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3월 한 달 평균 주가로 가늠해보면, 김 부회장 등이 내야 할 증여세는 2218억원(3월 4∼31일 평균 종가 기준) 규모로 추정된다. 가장 많은 지분을 받는 김 부회장이 감당해야 할 세금은 950억원에 달한다. 동원·동선 형제가 각각 632억9000만원을 부담한다. 삼 형제는 증여세를 5년간 분할 납부한다. 김 부회장은 연평균 약 200억원이 필요하다. 동원·동선 형제는 연평균 140억원 안팎이 소요된다. 김 부회장은 연봉만으로도 연 납부액 절반 정도를 부담할 수 있다. 동원·동선 형제는 사정이 팍팍하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계열사에서 받은 연봉 총액만 92억원 정도다. 동원·동선 형제는 각각 12억원, 22억원 정도 연봉을 받았다.
시장에서는 주식담보대출과 한화에너지 IPO·감액배당 등이 재원 마련 방안으로 거론된다. 3형제는 이미 주담대를 활발히 쓰고 있다. 한화에너지 IPO 때 구주매출을 하거나, 비과세 감액배당을 고려할 수 있지만 당국·정치권 견제가 변수다. 한화에너지 IPO로 구주매출 땐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상장 제도를 악용한다는 비판에 휘말릴 수 있다. 감액배당도 현재로선 다소 눈치가 보이는 카드다. 자본준비금 일부를 감액해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하려면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 동의를 구해야 한다. 총수 일가와 외부 이해관계자 간 이해관계를 정렬·일치시키는 게 만만치 않은 과제로 지목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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