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은 국내 배터리 업계 맞수이자 ‘악연’으로 불린다. 2020년 당시 배터리 기술 유출을 놓고 대규모 소송전을 벌인 후 거래 관계를 완전히 끊었지만 최근 다시 거래를 재개하면서 화해 모드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SKIET, LG에 분리막 공급하나
소송전 이후 4년 만에 신규 계약 관측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는 최근 미국에 위치한 배터리 셀 제조 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 분리막 원단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물량은 전기차 30만대 분량으로 공급 시기는 올 4월부터 내년까지다. 금액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SKIET는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과 함께 배터리 4대 소재인 분리막 생산 전문 업체다.
SKIET는 계약 조건에 따라 고객사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종 납품처가 LG에너지솔루션-스텔란티스 합작법인(JV)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LG화학이 SKIET로부터 분리막 원단을 넘겨받아 가공한 후 LG에너지솔루션에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LG와 SK가 화해 모드에 들어갔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두 기업 악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에 배터리 기술 관련 특허 침해 소송을 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2020년 당시 한국과 미국에서 법적 소송이 이어지면서 양측은 배터리 관련 모든 거래를 끊었다. LG에너지솔루션 구매 담당자들은 SKIET 등 SK 계열 배터리 소재 기업과 거래하지 않기로 했다.
양측 소송 결과 미국 ITC는 2021년 2월 SK온이 LG에너지솔루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SK온의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10년간 미국 수입 금지 명령도 나왔다. 미국 수출 길이 막힌 SK온 입장에서는 워낙 답답한 상황. 당시 정부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섰다. 그 결과 2021년 4월 SK온 측이 2조원 규모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을 조건으로 법적 분쟁을 끝내기로 했다. 그럼에도 워낙 깊어진 양측 갈등의 골은 좁아지지 않았다.
이 여파로 SKIET는 실적 직격탄을 맞았다. 2007년 이후 10년 넘게 LG에너지솔루션에 분리막을 납품해왔는데 우량 고객을 잃은 탓에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SKIET는 2023년 501억원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지난해에는 2910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매출(2179억원)보다 영업적자폭이 더 클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침체)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데다 미국의 중국산 배터리 소재 배제 정책이 나오면서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다시 협력 관계를 복원했다는 분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IET와 결별한 후 선전시니어테크놀로지, 창신신소재 등 중국 업체로부터 분리막을 공급받아왔다. 그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변수가 생겼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각국에 관세 폭탄을 퍼붓는 데다 중국 기업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한 조치를 내놓는 등 적극적인 ‘중국 봉쇄’에 나서자 LG에너지솔루션 고민도 커졌다. 미국에서 만드는 배터리용 분리막을 중국산이 아닌 한국산으로 대체할 필요성이 생겼다.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배터리 분리막 시장의 중국 점유율은 무려 88.8%에 달한다. 앞으로는 상호관세 여파로 미중 무역 불확실성이 커지면 중국 이외 국가 점유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틈타 SKIET가 LG에 다시 납품을 재개할 기회를 잡았다는 의미다. SKIET는 지난 2월에도 글로벌 고객사와 2914억원 규모 각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분리막 수주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대중국 분리막 관세가 높은 수준으로 지속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처럼 미국에 공장을 둔 배터리 셀 업체들은 중국산 소재만을 고집할 수 없다. 관세 불확실성으로 중국 이외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SKIET가 수혜를 입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SK넥실리스도 수혜?
적자 탈출 가능할지는 미지수
SKIET가 LG에너지솔루션과의 거래를 재개하면서 SK그룹의 또 다른 배터리 소재 업체인 SK넥실리스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넥실리스는 배터리용 동박을 제조하는 SKC의 자회사로 2차전지 동박 시장 글로벌 1위 업체다. 오랜 기간 LG에너지솔루션에 물량을 공급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넥실리스로부터 배터리용 동박의 70%가량을 공급받아왔다.
하지만 SKIET와 마찬가지로 SK넥실리스 역시 LG와의 소송전이 시작된 이후 LG에너지솔루션과 재계약을 맺지 못했다. SKIET처럼 LG에너지솔루션에 납품하던 물량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솔루스첨단소재 등 다른 기업에 뺏기면서 적자로 돌아섰다.
SK넥실리스는 지난해 1676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2023년(682억원 적자) 대비 손실 규모가 2배 이상 커지면서 SK그룹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지만 이제 분위기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SK넥실리스는 2023년 10월부터 가동을 시작한 말레이시아 공장에 기대를 건다. 말레이시아는 한국보다 전력 단가가 절반 이하로 낮고, 인건비도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동박은 도금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체 제조비의 15% 이상을 전기료가 차지하는 만큼, 말레이시아 공장 생산성이 높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SK넥실리스가 말레이시아 공장 가동률을 높여 LG에너지솔루션 등 우량 고객을 다시 확보하면 영업흑자 달성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SK그룹 입장에서는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다. SKIET나 SK넥실리스 같은 배터리 소재 업체에는 희망이 생겼지만, 배터리 셀 업체 SK온은 여전히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SK온은 지난해 매출 14조347억원, 영업손실 1조868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도 2조616억원에 달한다.
SK온이 부진에서 탈출하는 데 완공을 앞둔 미국 내 합작공장 가동 실적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SK온은 이르면 연내 포드와의 합작사 블루오벌SK의 켄터키1공장(37GWh)과 테네시공장(43GWh),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공장(35GWh) 등 3곳의 상업 가동을 시작한다. 이로써 22GWh 수준인 미국 내 생산능력이 1년 새 5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중국 업체 질주가 변수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 3사 합산 점유율은 2023년 23.1%에서 지난해 18.4%로 하락했다. SK온 점유율은 4.4%에 그쳤다. 이에 비해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CATL 점유율이 37.9%에 달하는 등 10위권 내 중국 업체 6곳 합산 점유율이 63.4%에서 67.1%로 상승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SK온은 수익성 확보를 위해 투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SK온이 올해 집행하는 설비투자 규모는 3조5000억원으로 지난해(7조5000억원)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다.
“SK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LG에너지솔루션 공급 재개를 앞두며 분위기가 좋아졌지만 안심할 때는 아니다. SKIET, SK넥실리스의 적자 탈출이 녹록지 않은 데다 배터리 셀 업체 SK온 실적도 부진해 그룹 내 배터리 밸류체인이 흔들릴 우려가 크다.” 재계 관계자 분석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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