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시가 급락하더라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4월 16일(이하 현지 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린 이코노믹 클럽 행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증시 하락 시 연준이 개입하는 이른바 ‘연준 풋(Fed put)’을 기대해도 되느냐”라는 사회자 질문에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이어 “시장이 여러 불확실성에 직면했지만 시장 자체는 제 기능을 하며 질서를 유지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미국 증시는 파월 의장 발언을 매파적(긴축 선호)으로 해석하며 큰 폭으로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관세 정책이 경기 침체 우려를 키우고 있다. 금리를 내려 경기를 살려야 하는 연준 입지를 극도로 좁히고 있어 시장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미국 경제가 관세 여파로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연준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이중 책무를 지닌다. 경기 과열 때는 금리를 올려 인플레를 억제하고, 반대로 경기 침체 때는 금리를 내려 경기 회복과 고용 확대를 유도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연준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금리 인하가 인플레를 자극하고, 금리를 올리면 침체가 더 심화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어서다.
제롬 파월, ‘연준 풋’ 가능성에 “No”
최근 들어 연준 내부에서는 ‘물가 안정’을 우선시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저금리’ 기조를 연준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시카고 연은의 오스탄 굴스비 총재 발언이 주목받는다. 연준의 대표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꼽히던 그는 4월 10일 뉴욕 경제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금리 인상, 인하, 동결 중 어떤 선택도 배제해선 안 된다”며 “현재로서는 통화 정책 조치를 취하기 위한 기준이 다소 높아졌다”고 밝혔다. 비둘기였던 그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것. 다만 그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관세 이슈가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비슷한 맥락에서 “노동 시장이 둔화되더라도 정책금리를 유지해 인플레 압력을 억제해야 한다”며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와는 결을 달리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반면 수잔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는 4월 11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인플레가 3%를 넘을 가능성이 있지만, 시장 기능이 흔들린다고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위기 상황에서 연준이 전통적 금리 정책보다는 비전통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로 연준은 2022년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은행기간대출프로그램(BTFP)’을 가동해 긴급 유동성을 공급하며 금융 시스템 위기 확산을 막은 바 있다. SVB 사태는 미국 장기 국채 금리 상승으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의 평가손실이 커지면서 발생했다. 최근에도 관세 우려로 장기 금리가 급등하고 있어 콜린스 총재 발언이 SVB 사태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결국 연준은 증시나 정치적 압력보다 경제의 본질적 흐름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다는 교과서적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은 관세 여파와 인플레 흐름, 그리고 시장 반응 속에서 윤곽을 드러낼 공산이 크다.
[뉴욕 = 홍장원 특파원 hong.j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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