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구개발(R&D) 캠퍼스에서 최근 만난 오승률 유무인복합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유·무인 복합체계는 어쩔 수 없는 방향"이라며 "사람이 전투 상황에서 최종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필수적인 정보에 집중할 수 있도록 AI가 사전에 다양한 전장 상황을 정리하고 선별해준다"고 밝혔다. 이날 이뤄진 시연에서는 원격조종 운행 외에 앞이나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인식해 따라가는 추종 운행도 보여줬다. 하지만 아직 완전 무인화로 가기 전 단계인 반자율 운행 기술을 구현하는 수준이었다. 오 수석연구원은 "적용되는 AI는 데이터 학습을 통해 흙길, 풀숲, 관목 등을 구별하고 경로를 탐색해 나아간다"며 "주변 환경 식별보다 더 발전한 단계인 전투 상황 판단 기술을 적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전투 현장에서 상황 판단은 탑재된 이미지센서(카메라)에서 포착한 사람이나 운송 수단을 이미 데이터로 학습한 아군·적군 정보에 따라 피아 구별을 해준다. 만약 총성이 울리면 파형과 음압을 분석해 적군의 총기에서 나온 것일 땐 해당 방향으로 총기가 자동 조준된다. 다만 최종 발사는 윤리적 문제로 사람이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뿐 아니라 한국 방산 업체들은 육해공을 막론하고 무인 무기 개발에 나섰고, 정부는 육군용 다목적 무인차량 구매 사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방위사업청은 국내 업체들이 개발한 다목적 무인차량의 제안서를 평가했다. 특히 이번 다목적 무인차량은 정부가 아닌 방위산업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라는 것이 특징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업체가 자체적으로 '이러이러한 무기가 군에 필요하다'고 정부에 제안한 것이 지금 개발하고 있는 다목적 무인차량"이라며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도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방위산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많이 향상돼 최근 들어서는 정부와 군에 기술을 먼저 제시하거나 외국의 수요에 맞춰 무기체계를 제안할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전투 수송용 다목적 무인차량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그런트'도 개발 중이다. 항속거리가 기존보다 3배가량 늘어난 290㎞로 개발할 예정이다.
이처럼 무인 무기가 필수불가결한데도 불구하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는 크다. 국방기술품질원이 격년제로 발간하는 '국방과학기술수준조사서' 최신판(2023년)에 따르면 우리나라 무인 무기체계는 기술 수준이 중간 단계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무인 무기체계 개발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계획인 '국방혁신 4.0'을 지난해 3월 공개하고 추진 중이다.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을 국방에 적용하기 위한 것으로 'AI 과학기술 강군 육성'이란 목적을 표방하고 있다. 이 가운데 AI 기반 핵심 첨단전력 확보 항목만 구체적으로 보면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구축 △우주 사이버 전자기 스펙트럼 영역 작전수행능력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일선 부대에도 무인 무기가 대거 보급된다.
하지만 무인 무기체계에서 AI 후발 주자라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방혁신 4.0 정책을 더욱 신속하게 추진해 결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원준 전북대 방위산업융합과정 교수는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일부 재래식 무기는 경쟁력이 있지만 무인이나 AI 분야는 아직 취약하다"면서 "특히 군사 보안상 군용 소프트웨어 분야에 규제가 많은 점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도 다목적 무인차량의 데이터 학습을 위해 전방 지역 등에 군이 통제하는 곳의 정보를 얻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신속한 결과를 위해서는 무기 개발 예산의 우선순위를 무인 무기와 AI 개발에 둬야 하는데, 이는 기존 지출 구조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장 교수는 "육해공군이 국방획득 예산에서 각각의 몫을 틀어쥐고 있어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군과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 측 인원이 무기 개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남 안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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