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05 19:15:01
미국·이스라엘 정상회담 지중해 휴양지 리비에라 빗대 가자지구 점령·개발구상 밝혀 팔레스타인 주민 이주도 주장 아랍 5개國, 미국에 항의 서한 유엔 “강제이주案은 인종청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소유해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혀 파장이 커지고 있다.
실타래처럼 엉킨 가자지구에 대해 부동산 사업가다운 해결 방안을 내놓아 무엇보다 아랍 국가들의 반발을 불러 모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를 “죽음과 파괴의 상징”이라고 부르며 오랜 기간 주민들이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자지구가 “중동의 리비에라(Riviera)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리비에라는 이탈리아어로 ‘해안’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남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걸친 지중해 휴양지를 일컫는다.
영구 점령을 염두에 두고 있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장기적인 소유권을 확보하면 중동 지역 전체에 큰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에 대해 네타냐후 총리는 “역사를 바꿀 것”이라며 “정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와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면 하마스의 군사·통치 역량 파괴, 모든 인질 석방, 가자지구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목표 3개가 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지도자라기보다는 부동산 개발업자에 더 가깝게 말했다”고 비평했다. 또 NYT는 “지난해 장녀 이방카의 배우자인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가자지구 해안가 부동산은 매우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면서 “이를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가장 큰 논란 사항은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기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취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가자지구로 돌아가면 수십 년간 계속된 폭력이 반복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며 이들을 요르단, 이집트 등 다른 국가로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론 이들을 수용해야 할 주변 아랍 국가들도 반대하고 있다. ‘인종청소’라는 비난이다.
가자지구 라파에서 거주하는 한 팔레스타인 주민은 AFP통신에 “가자지구 주민 이주는 팔레스타인인이 가자지구에 가진 애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달 3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집트, 요르단 아랍 5개국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공동서한에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의 입장을 명백히 지지한다”면서 “가자지구 재건은 가자 주민들의 직접 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 입장은 확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요르단과 이집트를 지칭하면서 “아직 논의 중이지만 (두 나라 정상이)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마음을 열고 땅을 줄 것이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이 만나는 자리에서 이 의제가 다뤄질 전망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통화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부에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서 탈퇴하라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지 않는 것이냐는 질문에 “두 국가든, 한 국가든, 어떤 다른 국가든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며 “이는 삶을 살 기회를 한 번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 국가로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구상으로,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지지해왔다.
회견 직후 아랍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독립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국교 정상화를 자신의 중요 외교 치적으로 삼고 싶어 한다.
이번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는 아랍 세계를 의식해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이스라엘을 위한 게 아니다”며 “중동의 모든 이들, 아랍인, 무슬림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를 방문할 계획”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 다른 곳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간표는 제시하지 않았다.
한편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지난달 19일부터 교전을 멈추고 생존 인질 33명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1904명을 교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6주간의 휴전 1단계에 들어갔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휴전 2단계에서 모든 인질 송환과 이스라엘군 완전 철수를 협상하고 이후 3단계에서는 영구 휴전과 가자지구 재건 등을 논의하기로 했으나 세부 내용까지는 합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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