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빠른 日대미정책 5대 포인트 범정부 트럼프 대응팀 꾸려 민간차원 선제적 투자 발표 안보문제 최우선 의제 설정 자체방위비 인상 선제 조치 자원외교 카드로 관세 방어 내달 7일 양국정상회담 앞두고 이시바, 회담 준비위해 총력전 관세 폭탄엔 투자 규모로 설득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다음달 첫 정상회담을 앞둔 일본이 깊이 있는 대미정책 조율에 나섰다. 미국과 일본은 전통적인 동맹국 관계이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일본은 잔뜩 긴장한 분위기다.
특히 1기 때 트럼프 대통령과 탄탄한 '브로맨스'를 형성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사망으로 이를 대체할 인물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게 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정치 스타일은 아베 전 총리와 간극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답지'를 찾기 위해 일본 정·관계와 재계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우선 일본 정부는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11월 이전부터 비밀리에 범정부 대책팀을 꾸린 뒤 '트럼프 대책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주도로 외무·경제산업·재무·방위성 담당자들이 모여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내놓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정책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아키바 다케오 전 국가안전보장국장도 포함됐다.
일본에서는 8년 전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에 관한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계속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불안정한 중동 정세, 치열해지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 혼란한 한국 정세 등 난제 때문에 일본에 대한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적으로 돌리지는 않겠지만 '먼 친구' 정도의 의미로 보고 있다"며 "경제와 안보 양 측면에서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도 지난 24일 국회 시정연설 이후 통상적인 업무를 내려놓고 미·일 정상회담에 모든 열정을 쏟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을 최근 만난 사람들을 연쇄 접촉하며 '과외'도 받고 있다. 이달 초에는 미국에 대한 거액 투자를 발표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산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2시간30분에 걸쳐 저녁을 함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관련된 정보를 얻었다. 특히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1기 때 환심을 샀던 아베 전 총리의 외교 수법도 참고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때마다 일본 기업의 미국 내 투자액과 고용 증가 내용 등을 지도에 담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정량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경제 제재를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전략이었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분야 중 하나가 안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 미국 측의 핵우산 제공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방위, 북한 핵대응 등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으로 규정하고 있다. 닛케이는 "미·일 동맹에 기반한 미국의 '핵우산'을 통한 확장억제 강화를 반드시 지켜낸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이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면담에서 이를 전달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해서는 한·미·일 3국이 공동 대응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일본 측의 기본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배제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직접 협상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 1기 때 북핵 문제와 관련해 사실상 배제됐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할 가능성이 높은 주일미군 주둔비 부담 확대 등에 대해 일본 정부는 방위비 인상 카드로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2022년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하면서 2027회계연도에 방위 관련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고, 5년간 방위비로 약 43조엔(약 401조원)을 확보하기로 한 바 있다.
이 일환으로 올해 방위비를 전년도보다 10% 가까이 늘린 8조6691억엔(약 80조9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일본 방위비가 8조엔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우려하는 또 다른 부분은 관세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와 캐나다에 각각 25%, 중국에도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의사를 밝혔다. 철강이나 알루미늄, 반도체, 희토류 등 특정 중요 제품을 대상으로 모든 국가에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다. 아사히신문은 경제산업성 관료 말을 인용해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지난해 상반기에만 340억달러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이에 대한 감축을 요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대미 직접투자와 자원외교를 통해 방어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대미 직접투자는 2023년 기준으로 8000억달러(약 1236조원)에 달한다. 트럼프 1기가 시작됐던 2017년 대비 60% 증가한 것으로 금액으로 보면 캐나다와 영국을 제치고 1위다. 이와 함께 자원외교 부분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 확대를 핵심 에너지 정책으로 내세운 가운데 일본이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를 선언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차원 외에도 일본 정부는 민간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확대도 적극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의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4년간 1000억달러(약 144조원) 투자를 약속한 손 회장은 인공지능(AI) 기업인 스타게이트를 설립하기 위해 챗GPT 개발사인 오픈AI,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 등과 함께 5000억달러(약 720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아울러 손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오픈AI에 최대 36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닛케이와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소프트뱅크가 오픈AI에 150억~250억달러(약 21조6500억~36조800억원)를 직접 투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별개로 일본 정부는 도요타자동차, 파나소닉 등 주요 일본 기업의 대미 투자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1기 때에는 미·일 정상회담을 전후해 이들 기업의 투자 발표가 활발하게 전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