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금리가 장중 급등하며 연중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시장에서는 내년 추가 기준금리 인하보다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0.092%포인트 대폭 오른 2.923%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7일 기록한 연중 최고치(2.894%)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통상 기준금리와 국고채 3년물 금리 격차는 채권시장의 향후 전망을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와 0.4%포인트 이상 벌어지면서 금리 인하보다 동결이나 추후 상승에까지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이날 국고채 10년물 금리도 전일 대비 0.081%포인트 상승한 3.282%로 거래를 마치며 마찬가지로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번 금리 급등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이달 말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발표될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언급하며 금리 인하 기대를 크게 낮췄다.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한 바 있는데 시장에서는 1.8%대로 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 총재는 "완화적 통화 사이클을 유지한다는 게 우리의 공식 입장"이라면서도 "금리 인하 폭이나 시기 혹은 방향 전환은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화정책만으로는 주택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없다"며 "돈이 넘쳐나는 유동성 상황은 오히려 집값 오름세를 둔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5월 기준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내린 이후 7월·8월·10월 3차례 연속 2.5%로 동결한 바 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대책에도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큰 폭으로 계속 오르는 데다 달러당 원화값이 하락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일부 시장 참여자들이 이날 이 총재 발언을 한은이 기준금리 동결을 넘어 향후 금리 인상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며 채권가격이 발작 수준으로 급락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원화가치 하락에 외국인이 국채선물을 대거 매도한 점도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이날 외국인은 3년 국채선물을 1만4469계약이나 순매도했다. 10년 국채선물은 3703계약을 순매도하며 3거래일째 매도세를 이어갔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이날 달러당 원화값은 전일 대비 2.4원 내린 1465.7원에 마감했다. 장중 1470원까지 떨어졌지만 한은 총재의 개입성 발언에 다소 진정됐다.
이날 채권시장의 출렁임에 대해 기획재정부 측은 예의 주시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 측은 "금리 인하 사이클이라는 점을 명시했고 금리 인하 폭과 시기가 데이터에 좌우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겠다"고 설명했다. 한은 부총재보도 나서 "금리 인상을 검토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주식시장으로 단기 자금이 이동한 점도 채권시장의 변수로 꼽힌다. 최근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면서 예금과 머니마켓펀드(MMF) 잔액이 줄어들고 있는 점은 채권시장에 부담 요인이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MMF 잔액은 225조원대에서 움직였지만 현재는 217조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 예금) 잔액은 지난 11일 기준 614조9221억원으로 9월 말(648조3154억원) 대비 33조원 이상 줄어들었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에서 로스컷(손절매) 가능성이 제기되며 투자심리가 위축된 모양새다.
다만 경기 여건을 고려하면 추가 인하 여지는 남아 있어 금리 향방을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경제 상황이 지속되는 만큼 향후 경기 둔화세가 심화되면 한은이 다시 완화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단기 자금 시장이 안정을 찾는다면 현재 수준의 고금리 자체가 채권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며 "연말이 다가오면서 내년 초 유입될 퇴직연금 등 기관 자금의 선제적 매수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