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6.10.06 17:14:32
대한당구연맹 심판으로 4년째 활동, 야구심판 15년 후 당구심판으로 변신, 2024년 대한체육회 최우수 심판
“팬들이 심판의 존재를 모를 정도로 물흐르듯 경기를 진행해야 좋은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당구연맹 박준호(52) 심판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2008년부터 2022년까지 야구심판으로 활동한 뒤 사회인야구를 시작으로 서울시야구협회 소속 및 엘리트 야구 경기까지 15년간 야구심판을 지냈다. 이후 박준호 심판은 ‘코로나19’로 야구대회가 중단된 시기 당구를 접했고 적성을 살려 2023년 당구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구심판으로 활동한 지 4년째인 박 심판은 경기장을 찾아가 심판들의 진행을 눈으로 익히고, 심판 연습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직접 만드 등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2024년에는 대한체육회 클린심판아카데미 최우수 심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판정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팬들이 심판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물 흐르듯 경기를 진행하는 것이 좋은 심판”이라고 말했다.
야구에서 당구로 종목을 바꿔가며 심판의 길을 걷고 있는 박준호 심판을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경기도 시흥 박준호 심판의 대리점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달라.
=대한당구연맹 소속 박준호 심판이다. 1974년생으로 올해 52세이며 본업으로 스테인레스 도소매 업체 대리점을 운영 중이다.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야구심판으로 활동했고 당구심판은 2023년부터 하게 됐다.
▲야구심판을 하게 된 계기가.
=2007년 취미로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야구 규칙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규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직접 심판을 보게 됐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까지 서울시야구협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아마 1년에 평균 60~70경기 정도 심판을 봤다.
▲야구심판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당시에는 엘리트 체육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심판을 보는 경우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외부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비엘리트 출신으로서 전문성이 부족했고 내가 내리는 판정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했기에 더 공부하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붙고 적성에 맞아 오랫동안 심판을 하게 됐다.
▲야구심판에서 당구심판으로 종목을 바꾸게 된 계기는.
=‘코로나19’로 야구대회가 없어 쉬던 중, 2022년 겨울 둘째 아이가 당구를 배우고 싶다고 해 당구아카데미에 보냈다. 이를 계기로 당구가 스포츠라는 것을 처음 알게됐고, 대회가 있다면 심판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평소 적성에 맞았던 심판에 도전하게 됐고 2023년도에 심판자격증을 취득했다.
▲당구심판을 시작했을 때는 어땠나.
=야구심판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슷했다. 다만 야구는 사회인 야구를 하면서 조금이나마 규칙을 알았는데 당구는 전혀 아니었다. 특히 연습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 어려웠다.
▲직접 심판 연습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들었다.
=앞서 말했듯 당구선수는 당구장에 가서 공을 치며 연습할 수 있지만 심판은 어디서 심판 연습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2024년 후배에게 부탁해 직접 경기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연습했다. 점수를 올리고 타이머를 작동시키는 것부터 이닝, 경기 시작, 뒤로가기 등 실제 경기 진행에 필요한 기능을 반복해서 익혔다. 지금도 캐롬과 포켓볼 프로그램을 사용해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있고, 스누커와 잉글리시빌리어드 프로그램도 별도로 제작 중이다.
▲직접 경기장을 찾아 심판을 공부하기도 했다고.
=그렇다. 2023년 7월 경남고성군수배에서 처음 심판을 맡은 뒤 ‘직접 보는 게 가장 많이 남는다’고 느꼈다. 이후 그해 10월 전남 목포에서 열린 전국체전부터 여유가 되면 여러 대회를 찾아다니며 경기 진행을 눈으로 익혔다.
▲대회에서는 주로 어떤 경기를 맡는지.
=대회 전 연맹에서 심판을 선발하며, 선발되면 다른 심판과 마찬가지로 테이블 경기 주심이나 구역심판을 맡는다. 이번에 열리는 경남고성군수배에는 개인 사정으로 신청하지 않았다. 주로 나는 주로 포켓볼 경기를 담당하는 편이다.
▲심판 활동에서 기억에 남는 성과가 있다면.
=2024년 대한체육회 클린심판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심판으로 선정됐다. 당시 409명이 교육을 수료했는데 성실한 학습 태도와 적극적인 참여를 인정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컸다. 심판은 계속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기뻤다.
▲당구와는 원래 인연이 있었는지.
=20대 초반 조금 쳤는데 담배 냄새가 싫어 한동안 당구를 손에서 놓았다. 그러다 당구심판을 하면서 다시 당구장을 찾게 됐다. 워낙 긴 공백기가 있었던 만큼 요즘은 당구장을 자주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하는 일이 바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지만, 짬을 내서 틈틈이 당구를 치려고 한다.
▲야구심판 경험이 당구심판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
=사회인 야구부터 엘리트 야구까지 다양한 경기를 경험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선수부터 성인 선수까지 나이도 다르고 실력도 달랐다. 그 과정에서 항상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정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선수들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 소통하는 부분에서도 야구심판 경험이 도움이 됐다.
▲앞으로의 각오는.
=심판이라는 일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물론 심판은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는 자리다. (웃음) 그래도 항상 판정의 명확한 근거를 갖추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 좋은 심판이 되고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심판’이란.
=팬들이 경기를 보면서 심판이 누구인지 의식하지 못하는 심판이다. 경기 주인공은 선수다. 심판은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면서 물 흐르듯 진행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김기영 MK빌리어드뉴스 기자 pppig112@mk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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