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8.18 07:33:13
배드민턴 첫 세계 1위 母子 길영아 감독·김원호 엄마 이어 아들도 세계 1위 등극 한국 첫 모자 올림픽 메달리스트 올해 서승재와 男복식서 맹활약 세계선수권·내년 AG 우승 후보 최종 목표는 LA 올림픽 금메달 배드민턴 그랜드슬램에도 도전
아들 김원호(26·삼성생명)와 어머니 길영아 삼성생명 배드민턴단 감독(55)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첫 모자(母子) 올림픽 메달리스트다. 지난달에는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배드민턴사 최초의 모자 세계랭킹 1위다.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으로 종목은 다르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세계 최고가 됐다.
최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 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모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길 감독은 “원호 덕분에 과거 세계랭킹 1위였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내가 메달리스트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더니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원호가 기특하다”고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드러냈다.
김원호의 어머니인 길 감독은 올림픽에서 금메달(1996 애틀랜타 혼합 복식), 은메달(1996 애틀랜타 여자 복식), 동메달(1992 바르셀로나 여자 복식)을 모두 획득한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선수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김원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배드민턴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김원호는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업적이 이렇게 대단한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선수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때 길영아 아들이 아닌 김원호로 불리기 위해서는 결과로 증명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계속해서 좋은 성적을 내 어머니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아들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아들이 느낀 부담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길 감독은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원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날 ‘엄마가 평범했으면 좋겠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김원호의 엄마로 살게 해달라고 말했다. 다행히 원호가 씩씩하게 이겨냈고 지난해부터 김원호의 엄마로 불리게 해줘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올해 서승재와 남자 복식 팀을 이룬 뒤 전영 오픈, 말레이시아 오픈, 인도네시아 오픈까지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시리즈 4개 대회 중 3개 대회 정상에 오른 김원호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김원호는 “올해 우승도 많이 하고 남자 복식 세계랭킹 1위에 오를 정도로 잘 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남은 시즌 가장 욕심나는 타이틀은 25일 개막하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다. 내년에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하려고 한다. 2028년에는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서보겠다”고 강조했다.
김원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어머니 목에 걸어 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작년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뒤 어머니께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정말 좋았다. 어머니가 아들을 통해 과거 금메달을 땄을 때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어머니께서 금메달은 하늘이 주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누구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준 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도 드러냈다. 김원호는 “과거에는 어머니의 DNA를 물려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경기 중 나오는 네트 플레이를 보면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언제나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주시고 특별한 능력을 물려준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주변의 시선과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아들이 대견한 길 감독. 세계랭킹 1위가 되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는 애정어린 조언을 건넸다. 길 감독은 “세계랭킹 1위를 경험한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워낙 성실한 선수인 만큼 알아서 잘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는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배드민턴 선수로서 세운 모든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림픽 커리어로는 어머니를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김원호는 길 감독도 이루지 못한 그랜드 슬램에 도전한다. 배드민턴에서 그랜드 슬램은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김원호는 “어렸을 때 장난감이었던 배드민턴 라켓이 지금은 내 인생에 전부가 됐다. 이왕 배드민턴 선수가 된 만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보고 싶다.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부딪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 감독은 아들의 도전을 응원했다. 그는 “올해 26세가 된 원호는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다. 27세에 은퇴한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은 기록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계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원호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즐겁게 선수 생활을 하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김원호는 소속팀 삼성생명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2018년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를 받은 덕분에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든든한 지원군이 돼준 삼성생명에 성적으로 보답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