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7.15 10:49:35
정치는 방향이고, 골프도 마찬가지다. 공이 어디로 가느냐보다 어떻게 쳤느냐가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골프는 권위와 여론, 이미지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했다. 또한 그린 위는 권력자인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무대이기도 했다.
2025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이자 14번째 대통령으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국민의 시선은 새 지도자의 정책뿐 아니라, 생활 방식과 여가 활동에도 쏠린다. 특히 골프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권위, 소통, 이미지, 정치적 함의가 얽힌 특별한 코드로 작동해 왔다. 역대 대통령들이 골프와 맺은 관계, 숨은 일화와 상징,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리더십의 단면을 소개한다.
영친왕– 한국 골프의 ‘왕가 출신 개척자’
조선 말기 고종의 7번째 아들 영친왕은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일본 왕족의 딸 마사코(영친왕의 비가 된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했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주위의 권고로 근심을 덜기 위해 골프를 배웠지만, 망국의 한으로 골프를 자주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친왕의 핸디캡은 25, 주로 해외여행 시 골프를 했고, 라운드 파트너는 이방자 여사가 유일했는데 실력에서는 이방자 여사가 더 나았다고 한다.
영친왕은 1927년 한국 골프장 요람이 된 군자리 코스 건설 시 조선 왕가의 유릉 30만 평을 기꺼이 하사했고, 골프장 완성 시까지 건설비를 비롯해 매년 지원금을 출연했다고 한다. 영친왕은 1929년 군자리 코스가 완공된 이후 몇 차례 라운드를 가졌으나 끝내 왕정복고를 이루지 못한 채 불운한 왕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승만 대통령– 한국 골프의 주춧돌
이승만 대통령은 직접 필드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골프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고 알려졌다. 미국 망명 생활 중 일찌감치 골프를 접해 골프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군자리 골프장의 복구를 지시하고 미군 장성들이 일본 오키나와 골프장으로 이탈하지 않도록 서울 골프장 사용을 독려했다. 아마추어 대회 활성화에도 매우 적극적이어서 골프대회를 만들어 직접 시상은 물론 우승자를 경무대로 불러 다과를 베푸는 등 그의 행보는 한국 최초의 골프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박정희 대통령– ‘골프 예찬론자’의 리더십 실용화
박정희 대통령은 필드에서 플레이를 즐긴 최초의 대통령이다. 최고회의 의장 시절인 1962년 골프에 입문했으며 장충동 의장 공간에 길이 15m, 폭 10m 되는 간이 연습장이 있었고, 청와대 회의장 옆에는 실내 연습장을 설치해 퍼팅 연습을 일상화했다.
박 대통령 골프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친 김종필 총리 증언에 의하면, 골프를 칠 때도 별로 말이 없는 조용하고 절제된 모습이지만 운동이 끝나면 막걸리에 사이다를 탄 막사이다를 즐겼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골프를 육성하는 정책을 견지했고, 골프를 통해 기업인 및 장성들과 교류했으며, 전국 골프장 개발을 독려했다. “골프를 해보니 몸에 좋다”라며 주위 사람들에게 골프를 적극 권한 골프 예찬론자였지만, 43년 만에 군자리 코스를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으로 만들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 골프 정치의 시발, 파워샷의 대명사
청남대에 9홀 플레이가 가능한 미니 골프장을 만들 정도로 최고의 골프 마니아였다. 재임 시 가끔씩 70대를 치는 등 역대 대통령 중 최고의 기량을 갖춘 것으로 추측된다. 핸디캡 12 수준에 파워 드라이브샷을 보여주며, 실전에서는 연습 스윙도 없이 속전속결형으로 플레이했다고 알려졌다. 골프장 임직원들에게 다정다감한 것으로 유명하고, 캐디들에게 가끔씩 금일봉을 전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재임 시 각종 아마추어 골프대회를 폐지하고 골프장을 교통부에서 관장하도록 해 관광업소로 취급받기도 했다. 골프인구는 급증했지만 골프장 건설 시 청와대의 내인가 제도를 받아야 하는 등 허가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골프장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로 떠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골프장이 단순한 사교를 넘어 일종의 권력 배분의 현장으로 이용됐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노태우 대통령– 절제된 친화형, 골프 공화국 조성
청와대에서 골프연습장을 가장 애용한 대통령이었다. 원래 테니스광이었지만 9사단장 취임하면서 골프를 시작해 이후 체육부 장관, 민주정의당의당 대표 시절로 이어지면서 골프에 빠져들었고 청와대에 입성하면서 테니스보다 골프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부인 김옥순 여사도 이때 골프에 상당히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육사 출신답게 퍼팅 감각과 체력이 뛰어났으며, 부인과의 동반 라운드를 즐겨 했다. 세간에는 김옥순 여사가 더 잘 친다는 소문도 있었다.
재임 시절에는 5공화국과 달리 ‘골프 공화국’이란 애칭을 얻을 정도로 골프장 건설이 폭증했다. 내인가 제도 폐지와 함께 인허가권이 시·도지사로 넘어가면서 당시 140여 개 골프장이 인허가를 받았고, 골프장 관장 부처도 교통부에서 체육부로 이관되었다. 많은 골프장 건설에 따른 민원과 환경단체와의 불협화음 등 각종 잡음이 파생되었지만 역대 정권 중 골프인구 신장률이 가장 높게 기록된 시기였다.
김영삼 대통령– 골프 금지령 선언
골프회동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끝내 골프를 거부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89년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안양골프장에서 김종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와의 골프회동 시 티샷을 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모습이 다음날 일제히 신문, 방송에서 빅 뉴스가 되었다. 이 회동 이후 바로 이듬해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포함 사상초유로 여야가 합당하는 ‘3당 통합’의 토대가 되었다.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임기 중 골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공직자 골프 금지령까지 내렸다. 청와대에 설치된 골프연습장도 철거되었고, 청남대 미니 골프장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골프업계로서는 김 대통령 재임 시절이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표현되던 골프장 사업은 순식간에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아들 김현철 씨가 골프와 관련된 논란에 휘말리며 역설적 상징이 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평생 한 번도 안 치며 골프를 부정하다 긍정으로 변화
평생 골프를 치지 않았으며, 골프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지팡이를 잡은 김대중 대통령은 실제 야당 총재 시절 골프장을 없애 논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골프 대중화’를 선언했다는 것은 매우 이채롭다. 1997 대선 당시 보수층을 의식해 퍼블릭 코스의 증설이 시급하다며 골프 대중화를 강조했다. 이 발언 후 문체부와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무분별한 골프 대중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김 대통령이 골프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유는, IMF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박세리 선수가 LPGA투어 우승으로 국민의 사기를 많이 올려준 영향도 컸었다. 이로 인해 주니어 골프 붐도 일어난 시기였다.
노무현 대통령– 갈등과 절제의 여가 그리고 퇴장
노무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권양숙 여사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했다고 알려졌다. 골프 입문 초기부터 스윙에 대해 이런저런 연구를 할 정도로 상당히 애착을 가졌다. 평소 스코어는 90대 중반, 드라이버샷은 200야드로 짧지만 또박또박 치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과 비공식 라운드에서 “이래서 사람들이 골프에 빠지는구먼”이라고 웃으며 말했으나 이후 곧바로 “지금은 내가 골프를 할 때가 아닌 것 같다”라며 공개 사과에 가까운 언급을 하기도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골프만 치면 일이 꼬이는 ‘머피의 법칙’으로 수난을 많이 당했다. 골프광인 이해찬 총리의 산불수난, 군 수뇌부와 골프를 친 후 총기난사 사고가 터지는 등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재임 중 ‘공식 라운드 금지’라는 방침을 세우는 등 골프채를 잡으면서도 항상 국민의 시선을 먼저 생각했다.
이명박 대통령– 비즈니스 상징 골프는 거래가 아닌 관계
이명박 대통령은 1970~1980년대 현대건설에서 임원과 CEO로 근무하면서 골프를 실무의 필수 도구로 체득한 인물이다. 현대가 해외 공사를 따내던 시절 사막 한가운데서도 골프채를 들었었다고 알려졌다. 골프를 철저히 네트워크 소통의 도구로 활용했으며 “라운드를 한번 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대통령 재임 중에는 골프를 자주 하지 않았는데 본인의 철학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다. 한 측근이 해외 정상들과 골프 외교를 제안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재임 시 퍼블릭 골프장 개발 장려, 관광지 주변 골프장을 활용한 레저 산업 활성화 등 골프 인프라 개선에 집중했다. 80타 중반대 실력으로 정몽구 회장과의 무언의 골프는 유명하며 퇴임 후 가장 활발하게 골프를 치는 역대 대통령 중 한 명이다.
박근혜 대통령– 철저한 거리 두기
역대 대통령 중 골프를 공식적으로 가장 멀리 한 인물이다. 30~40대 삼성가와 비공식으로 골프를 쳤다는 일부 증언이 있지만 불분명하다. 재임 중 골프 관련 활동이 거의 없었다. 참모진들의 골프 관련 논란 발생 시 신속히 조치해 골프가 곧 ‘오해의 상징’임을 인식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산과 바다를 택한 대통령
청와대 재임 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골프장 방문 기록이 없다. 골프와 관련해 언론에 노출된 적도, 비공식 목격담조차도 없다. 변호사 시절 또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활동 당시 골프장에 간 적은 있다는 일부 증언이 있지만 동행 혹은 연습장 수준 정도로 추정된다. 재임 시 참모들에게도 골프 자제령을 내렸다. 등산과 낚시를 여가로 삼았고, 청와대 내부에서도 골프 보고가 금기시됐다. 주말 등산회의를 통해 소통하는 스타일을 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 권위 없는 스윙 그러나 정치적 파장
검찰총장 재임 중 수도권 퍼블릭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라운드를 즐기는 모습이 종종 포착됐다. 90타 초반의 실력이었으며, 골프가 사람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 공직자 중에 몇 안 되는 인물이다. 후배들과 필드 토론을 하거나 라운드 후 주요 인사를 결정했다는 사례도 많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비공식적으로 보안 시설이 잘 갖춰진 군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했고, 해당 골프장은 예약이 밀리고 출입이 제한되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았다. 2024년 말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자 트럼프와의 골프 외교 준비 차원에서 골프를 다시 연습 중이라고 말했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한 언론사가 대통령의 골프장 방문을 촬영했다가 경호처의 과잉 조처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골프를 즐겼지만 때로는 정치적 파장으로 이어져 외신은 이를 ‘한국 정치의 클럽하우스 문화’라 묘사했다.
[writer 김훈환(한국골프장경영협회 전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