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2 07:33:00
‘고의성 없는 행정 실수’라고 해서 ‘규정 위반’이란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KFA), 아시아축구연맹(AFC),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을 다 살펴봐도, ‘고의성 없는 실수’라고 해서 ‘규정 위반을 눈 감아준다’는 내용은 없다.
‘고의성 없는 행정 실수’는 ‘프로답지 못하다’는 자백이다. 대한민국 축구계 최상위 단체가 유사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아마추어적인 규정 위반 행위를 두둔한다는 건 정해진 규칙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축구계 구성원에 대한 명백한 모독이다.
규칙을 어겼으면, 원칙에 따라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5월 21일 김승희 KFA 전무이사가 첫 기자회견에 나섰다. 김 이사는 이 자리에서 광주 FC 논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김 이사는 “우리도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며 “단, 선수, K리그의 안정성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적인 고의가 아닌 행정적인 착오로 인해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게 되는 부분은 좀 아닌 것 같다. 최상위 리그인 K리그의 안정성도 생각해야 한다. 대회를 엄격하고 공정하게 치러야 하는 것도 맞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김 이사는 덧붙여 “기본적으로 제도라는 게 항상 완벽을 기하려고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미숙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FIFA에 사실에 기반한 공문을 발송했다. 계속해서 소통하고 있다. FIFA에서도 ‘클리어링 하우스’ 제도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 또한 ‘정착하는 과정’이라고 하더라. FIFA, AFC, 연맹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고 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복수의 K리그 관계자에게 해당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A 구단 관계자는 분노했다.
앞의 구단 관계자는 “우리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규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며 “KFA는 유감 표명이 아니라 사과부터 해야 했다”고 목소릴 높였다.
앞의 관계자는 이어 “핵심은 광주의 규정 위반이다. 광주는 규정을 어겼다. 속 사정이야 어떻든 정해진 규칙을 어긴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KFA 전무이사는 행정적 실수로 오직 ‘경기인’인 선수의 땀과 눈물이 피해를 보는 것만 걱정했다. K리그1 11개 구단 선수의 땀은 땀이 아닌 건가. K리그엔 경기인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각 구단 프런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린다. 선수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도록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 이사의 사고방식, 발언은 KFA, 광주를 제외한 모든 구성원의 땀과 노력을 헛되게 했다”고 지적했다.
B 구단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B 구단 관계자는 “지금 많은 구단이 분노하는 포인트가 무엇인 줄 아느냐”며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 축구계는 늘 그렇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버티면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갈 것이란 확신이 있는 까닭이다. 광주는 김 이사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21일에서야 구단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과문을 내놨다. 문제가 불거진 지 일주일만이다. KFA는 그런 광주를 비호하고 대변한다. ‘소통’을 강조하는 새 집행부가 출범하면서 KFA의 이번 사안 처리를 더 눈여겨봤다. 그런데 그대로다. 우스갯소리로 앞으로 무언가 잘못했을 때 ‘실수’란 단어 하나면 ‘다 해결될 것 같다’는 얘길 한다. 규정을 지키며 공정하게 경쟁하려는 사람만 바보 되는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C 구단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C 구단 관계자는 “김 이사가 대한민국 축구계 최상위 단체를 대표하는 전무이사라면 더 이상 경기인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의 관계자는 이어 이렇게 주장했다.
“KFA 전무이사는 정몽규 회장 다음으로 높은 인사다. 대한민국 축구 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기자회견만 보면, ‘매일 성실하게 규정을 준수하며 일하는 축구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 건은 선수 등록을 총괄하는 KFA 잘못도 매우 크다. ‘선수 영입이 불가한’ 구단이 영입한 선수를 뛸 수 있게 해준 건 KFA 아닌가. KFA도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KFA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는 말로 타 구단 구성원들에게 이해를 강요하는 듯했다. KFA 전무이사라면, 사과와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했다. 세상에 ‘고의성이 없는 실수’라서 ‘규정 위반’을 이해하는 조직이 어디 있나.”
규정을 어겼으면, 규정에 따른 처벌 조항만 보면 된다.
광주는 AFC로부터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2024-25시즌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규정 ‘제26조 선수 자격’을 보면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제26조 제1항 제2호엔 ‘자국 축구협회 이적 및 등록 규정, FIFA 선수 지위 및 이적 규정에 따라서 소속 클럽에 유효하게 등록되어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제26조 제4항엔 ‘AFC 사무국이 선수 등록을 승인했다고 해서, 해당 선수의 출전 자격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각 클럽은 선수의 출전 자격을 확인하고, 자격 있는 선수만 출전시켜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AFC 징계 및 윤리 규정에 따라서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제26조 제5항 제3호엔 ‘등록 시 제출된 서류가 위조되었거나 조작됐거나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경우 출전 자격이 없는 부정 선수로 간주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광주는 올해 ACLE 리그 스테이지 2경기, 토너먼트 3경기를 치렀다.
AFC가 광주가 2025년 치른 ACLE 5경기를 모두 몰수패 처리한다면, 연맹도 이를 따라야 할 수 있다.
연맹 상벌 규정에 FIFA의 훈련 보상 및 연대기여금 미지급에 관한 징계 조항은 없다.
연맹은 상위기관인 AFC, FIFA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단, 연맹 경기 규정 제33조 ‘패배로 간주 되는 경우’ 제2항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공식 경기에 무자격선수가 출장한 것이 경기 중 또는 경기 후 발각되어 경기 종료 후 48시간 이내에 상대 클럽으로부터 이의가 제기된 경우, 무자격선수가 출장한 클럽이 0:3 패배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경기 중 무자격선수가 출장한 것이 발각되었을 경우, 해당 선수를 퇴장시키고 경기는 속행한다.’
포항 스틸러스는 해당 건이 알려지고 치른 5월 18일 광주와의 맞대결에서 0-1로 졌다. 포항은 경기 후 연맹 규정에 따라서 공식 이의제기를 한 상태다.
연맹은 포항으로부터 광주가 공식전 출전 자격이 없는 선수들을 그라운드에 내보냈음을 지적하는 공문을 받아 해당 내용을 검토 중이다.
광주는 아사니 영입으로 발생한 연대기여금 3천 달러(한화 약 420만 원)를 송금하지 않아 FIFA로부터 지난해 12월 17일 선수 등록 금지 징계를 받았다.
광주는 이를 약 5개월이 지나서야 인지했다. 그 사이 광주는 10명의 선수를 영입해 K리그1 14경기와 코리아컵 2경기를 치렀다. 광주는 징계 기간 ACLE 5경기도 소화했다.
원칙대로 하면 이토록 큰 논란이 될 사안이 아니다.
한 해 예산 수백억 원을 들여 K리그에 참가하는 구단들이 ‘고의성 없는 실수로 규정을 위반했지만, 징계는 규정대로 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KFA 공정위원회 규정 제14조 ‘징계 사유 및 대상’ 제1항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경우에 대해여 징계 심사할 수 있다.’
제14조 제1항 제7호엔 이렇게 나와 있다.
‘부정 참가, 대회진행 방해 등 각종 대회 중 발생한 대회 질서 문란 행위.’
KFA 규정 어디를 찾아봐도 광주의 사례는 징계 사유지 비호의 대상이 아니다.
[이근승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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