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1.23 13:37:21
21세기 초 메이저리그(MLB)에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가 최근 아시아인 최초로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신인왕과 리그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쥔 데다, 역대 최다 안타(미일 합산)를 기록한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일본 못지 않게 야구에 열광하는 한국 야구팬 입장에서 이치로의 입성은 부럽기만 합니다. 적어도 아직까진 한국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은 요원하다는 이유도 있죠. 그러나 언젠가 등장할 것이 확실한 한국인 헌액자를 꿈꾸며 명예의 전당은 무엇인지, 이를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는지를 살짝 알아보겠습니다.
명예의 전당은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이곳은 야구 팬들에게 “야구의 성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설립의 뿌리는 의외로 거짓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1907년, 스폴딩 위원회는 야구의 기원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에브너 더블데이가 1839년 쿠퍼스타운에서 야구를 발명했다는 이야기를 공식화했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어떤 근거도 없지만 ‘미국만의 전통’을 만들고 싶단 열망에 그런 사소한(?) 오류는 뒤로 밀렸습니다. 결국 ‘더블데이설(說)’을 바탕으로 야구가 탄생한지 100년이 된 1939년, 쿠퍼스타운에 명예의 전당이 설립됐습니다. 설립 당시에는 타이 콥, 베이브 루스 등 ‘최초의 5인’이 헌액됐습니다.
‘더블데이설’은 결국 향후 야구 역사가들에 의해 철저히 부정됐습니다. 그러나 거짓에 기반을 둔 명예의 전당은 여전히 야구선수들의 꿈꾸는 종착역으로 남아있습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MLB에서 활약한 선수가 은퇴 후 5년이 지나야 후보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미야구기자협회(BBWAA) 회원들은 매년 개별 후보자들이 쿠퍼스타운에 입성할 자격을 갖췄는지 투표를 하고 75%이상 득표하면 입성하게 됩니다. 투표율이 5% 이하면 후보자 자격이 박탈되고, 이상이면 다음해 다시 한 번 평가를 받게 되지요. 후보자들은 최대 10년간 이런 심판대에 오르게 됩니다. 이 기간동안 75%의 벽을 넘지 못하면 최종적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후 베테랑위원회 등을 통해 헌액자로 등극될 수 있지만, 이런 선수들은 투표를 통해 헌액된 이들보다 낮게 평가됩니다. ‘수질 관리’가 엄격하다보니 명예의 전당 입성은 바늘구멍과 같습니다. 올해 기준 그동안 MLB를 밟았던 선수들중 단 0.7%만이 입성할 수 있었죠.
명예의 전당은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준수하고 있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습니다. 1939년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1루수 루 게릭은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 일명 ‘루 게릭 병’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은퇴식은 1939년 7월 4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렸고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는 감동적인 연설을 남겼습니다. 게릭의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BBWAA는 그 해 12월, 5년의 유예 기간 없이 그를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특별 조치를 취했습니다. 당시 36세였던 게릭은 최연소 헌액자가 되었으며, 그의 등번호 4번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영구 결번 처리되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예외 조치는 이후로는 전례가 없었습니다.
입성 여부가 투표로 이뤄지다보니 헌액 기준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헌액된 보스턴 레드삭스의 ‘빅 파피’ 데이빗 오티즈입니다. 그는 후보자가 된 첫 투표에서 77.9%의 높은 득표율로 입성했습니다. 오티즈는 스테로이드 약물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있는 선수입니다. 그러나 그가 통과하지 못한 약물 검사의 적정성과 정확성이 문제가 되며 여유롭게 야구의 성지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죠.
반면 다른 한 켠에선 그가 야구 기자들과 팬들에게 사랑받는 선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각각 역대 최다 MVP 수상자와 역대 최다 사이영상 수상자인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 등 언론과 사이가 나쁜 선수들은 엄청난 기록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증과 약물 사용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헌액에 실패했습니다.
과거 선수들도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명예의 전당 입성자인 게일로드 페리는 커리어 내내 부정투구를 멈추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타자와 심판을 현혹했는지를 대담하게 고백하기도 했죠. 이치로 이전 역대 최대 안타 기록자이자 당대의 스타였던 피트 로즈는 감독 시절 스포츠 도박에 연루되어 영구 제명돼 명예의 전당 헌액 자격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로즈의 활약상은 소속팀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우승기록과 함께 쿠퍼스타운 박물관의 전시물로 남아 있습니다.
야구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스포츠로 인식되지만, 명예의 전당에는 여성들의 공로도 기려지고 있습니다. 최초로 헌액된 여성은 에프라 맨리로, 2006년 그녀는 니그로 리그의 뉴어크 이글스 구단주로서 선수 복지와 시민권 운동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재키 로빈슨 흑인 선수로선 최초로 니그로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이적할 당시, 맨리는 니그로리그의 계약이 인정받도록 싸웠습니다. 즉 이전에는 ‘실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던’ 니그로리그를 수면위로 끌어올렸고, 구단들이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보낼 때 정당한 보상을 받도록 한 것입니다.
이후 2010년에는 야구 역사학자 도로시 세이모어 밀스가 헌액되었습니다. 그녀는 야구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녀의 연구는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지녔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야구장 건축가 재닛 마리 스미스가 헌액되었습니다. 그녀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오리올 파크와 같은 현대적인 야구장을 설계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매년 열리는 명예의 전당 투표는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보수적인 모습이었던 투표 경향이 개방되며 오히려 문호가 너무 넓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죠. 이치로와 함께 올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C.C. 사바시아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첫 후보자가 된 올해 86%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역대 5번째 ‘첫 턴 입성에 성공한 좌완투수’가 됐습니다. 나머지 4명은 샌디 쿠팩스, 스티브 칼튼, 톰 글래빈, 랜디 존슨이죠. 사바시아가 위대한 선수라는 것엔 이견이 없지만 앞의 네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것입니다.
이를 두고 깐깐했던 과거 ‘올드보이’ 유권자들이 은퇴한 뒤 젊은 야구기자들에게 투표권이 생겼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많습니다. 결국 명예의 전당은 단순히 기록을 기리는 공간을 넘어, 시대의 흐름과 함께 스포츠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투표와 평가 기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겠지만, 이런 논쟁조차 명예의 전당이 가진 독특한 상징성을 더욱 공고히 합니다. 그 변화 속에서 쓰여질 흥미로운 새 역사와 논란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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