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1.18 15:07:10
“고모는 회사 규정에 없어서 개인휴가를 쓰셔야 합니다.”
호주제가 폐지된 지 십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상다수 기업에서 경조휴가 규정에 조부모와 외조부모간 차별을 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대기업에 다니는 10년 차 직장인 A씨는 얼마전 고모상을 당했으나 회사로부터 경조사비 및 휴가를 받지 못했다. 지난해 같은 팀 동료가 큰아버지상을 당했을 때 3일의 휴가와 경조사비를 받은 것과 상반된 것이다.
A씨가 회사 내규를 살펴보니 백숙부(부친의 남자형제)상에 대한 휴가 및 경조사비 규정은 있으나 부친의 여형제(고모)·모친의 형제(이모·외삼촌)에 대해서는 규정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A씨는 “2025년에 이런 성차별이 버젓이 회사 내규에 적혀있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주변에 물어보니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기업 대다수가 유사한 내규를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상위 10대 민간 기업의 장례 휴가 규정을 살펴본 결과, 이 중 7개 기업은 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한 장례 휴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백숙부상에 대해서는 평균 2∼3일의 휴가를 지급했다.
10대 기업은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으로 집계한 결과를 토대로 했다.
10대 기업 중 1개사는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 모두 휴가를 지급하지 않았고, 2개사는 이들에 대해 모두 동일한(1∼2일) 휴가를 지급하고 있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도 백숙부·고모·이모·외삼촌상에 대해서는 모두 휴가가 지급되지 않는 식으로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그간 인권위가 내린 판단에 기반했을 때 이 사안도 ‘차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3년 인권위는 기업들이 친조부모상과 외조부모상에 대해 경조휴가 및 경조비 지급 차등을 두는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기업들은 인권위에 “외조부모상을 당한 직원은 외손이라 친손과 달리 직접 상주 역할을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차이를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성별과 관계 없이 1∼2명의 자녀만 출산하는 등 가족 구성의 변화로 부계 혈통의 남성중심으로 가정의례를 치르지 못하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차별관행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성차별적 관행을 개선하는 동시에 변화하는 가족관을 반영해 내규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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