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6 17:59:11
이재명 대통령의 제70주년 현충일 기념식 추념사는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진보층을 넘어 보수 진영에 손을 내민 국민통합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민주화운동 유공자는 물론 독립운동 및 군 유공자에 대한 두터운 지원과 예우를 거듭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의 군을 바라보는 시각과 역사 인식에 대한 보수 진영의 의구심을 털어내고 통합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군과 경찰, 소방관에 대한 각별한 예우를 강조하며 12·3 비상계엄 사태로 사기가 저하된 제복 공무원들을 다독였다. 다만 역대 대통령들이 현충일 추념사 때마다 빼놓지 않았던 대북 메시지는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 대통령이 대북정책의 방향성을 놓고 숙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희생’과 ‘헌신’이라는 표현을 각각 10번, ‘책임’과 ‘보상’이라는 단어를 5번과 4번 사용했다. ‘예우’ ‘기억’도 3번씩 사용했다. 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로 민주주의 열사 외에도 독립운동가, 참전 용사들을 언급하면서 이들 덕분에 나라를 되찾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민주주의 모범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고 했다.
앞서 민주당 정권 대통령들은 현충일 추념사를 보수층의 불신을 털어내고 국민 통합 메시지를 내는 기회로 활용해 왔다. 일례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을 스물두 차례나 언급했고, 민주열사라는 단어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먼저 언급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썼다. 이 대통령 역시 보수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애국 개념을 이날 추념사에서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좌우 진영 모두를 아우르는 탈이념적 역사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제목 공무원에 대한 예우를 강조한 점도 통합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밤을 지새우며 나라를 지키는 군 장병들과 재난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 범죄 현장에서 발로 뛰는 경찰관들의 헌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 국민께서 안심하고 일상을 누리는 것”이라며 “제복을 입은 시민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오직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복무 여건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과 취임 직후 “비상계엄 사태 때 군 장병이 국민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부당 명령에 소극 대응해 큰 혼란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며 군을 다독이는 발언을 여러 번 했다.
한편 이날 현충일 추념식에는 지난달 해군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박진우 중령, 이태훈 소령, 윤동규 상사, 강신원 상사의 유가족과 지난해 12월 제주 서귀포시 감귤창고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임성철 소방장의 유족이 특별 초청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별 초청자는 애초 국가보훈부 초청 명단에는 없었으나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행사장에 입장하며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를 전했다. 특히 한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 유족이 오열하자 그의 손을 한동안 잡은 채 말을 건네며 다독였다. 이 대통령은 박 중령의 세 살배기 자녀를 직접 쓰다듬고 배우자에게 위로를 전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혜경 여사는 박 중령의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에서 순직 장병들과 임 소방장을 호명하며 “깊은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며 “국민께서 고인들의 헌신을 뚜렷이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추념 공연에서는 호적상 큰아버지의 딸로 살아오다 유해 발굴을 통해 친부인 송영환 일병을 찾은 송재숙 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송재숙 씨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상영된 뒤 직접 편지를 낭독했다.
이어 숙연한 분위기 속에 소프라노 이해원이 ‘보고 싶은 얼굴’을 노래했다.
이어 바리톤 김주택이 국방부 성악병 및 세대별 국민합창단과 함께 ‘너의 이름을 부를 때’를 선보였다. 이날 추념식은 전 참석자의 ‘현충의 노래’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이 대통령은 이날 1998년 12월 24일 비무장지대(DMZ) 지뢰 제거 작업 중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은 김희태 씨, 6·25 전쟁에 참전해 1950년 12월 30일 충무무공훈장을 받은 고 박지식 씨의 자녀 등에게 국가유공자 증서를 수여했다.
이번 추념식에는 우원식 국회의장, 조희대 대법원장, 김형두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이 참석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도 자리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군사령관,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양용모 해군참모총장, 이영수 공군참모총장, 강신철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등 군·안보 관련 인사도 참석했다.
원내 비교섭 정당 지도부도 일제히 이날 추념식에 참석했다. 조국혁신당에서는 김선민 당 대표 권한대행과 서왕진 원내대표가, 개혁신당에서는 천하람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과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진보당에서는 김재연 상임대표가 참석했다. 이들 외에도 4000여 명이 이날 행사에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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