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7.14 07:30:00
엘파글린다, 날아다니네 남주 피예로 매력은 아쉬워…영화 못지 않은 황홀한 귀환
무대 조명이 꺼지고 음악이 흐르자, ‘글로벌 핵인싸’ 글린다가 눈 앞에 나타난다. 관객들은 순식간에 ‘오즈’로, 아니 ‘위키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스크린에선 볼 수 없었던 마법의 세계를 오감으로 체험하니, 이것이 진짜다.
1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위키드’ 오리지날 내한 공연이 지난 12일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했다.
예상대로 객석은 꽉 찼고, 8세부터 80세까지 전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공연이자 앞서 스크린에서 메가 히트에 성공한 만큼 가족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 (학생 자녀와 시니어 관객들이 상당수였다.)
이번 공연은 브로드웨이 역사를 새로 쓴 유례 없는 흥행 괴물을 ‘오리지널’ 원어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귀하고도 드문 기회. 본고장 브로드웨이와 똑같은 연출, 무대, 넘버를 그대로 옮겨온 오리지널 프로덕션. 투어 특성상 쉽게 움직일 수 없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호주·싱가포르를 거쳐 마침내 한국에 도착했다.
기대한 대로, 스크린으로는 결코 체감할 수 없는 무대 조명과 음향, 안무, 음악이 오감을 흔들며 꽉 찬 몰입을 이끌어낸다.
‘오즈의 마법사’를 뒤집은 이 황홀한 세계는 관객의 눈앞에서 생생히 구현되며, ‘위키드’가 왜 지금까지도 독보적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증명한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글린다 역의 코트니 몬스마(27)와 싱가포르 공연을 이끈 엘파바 역의 조이 코핀저(31)는, 재치 넘치는 상큼 케미와 탄탄한 음역, 섬세한 감정선을 뽐내며 원조다운 앙상블을 보여준다. 50년 경력의 사이먼 버크(마법사 역), 연기파 제니퍼 불레틱(모리블 학장)까지 합류해 무게감을 더한다.
사랑스러운 눈망울과 재치 넘치는 발랄함으로 중무장한 코트니 몬스마의 청아한 보이스는 ‘글린다의 정석’답고, 조이 코핀저 역시 소문난 ‘라이징 스타’답게 안정적이고도 다이나믹한 에너지를 내뿜는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날아다닌다. 탄탄한 가창력을 기반으로 언어적 장벽이 전혀 느끼지 않는 생생한 표현력과 높은 캐릭터 싱크로율로 보는 내내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인기 많은 바람둥이 왕자, 남주 피에로 역도 ‘라이징 스타’ 리암 헤드가 소화했다. ‘그리스’, ‘금발이 너무해’ 등을 통해 눈도장을 찍은 그의 무대는 사실 좀 아쉽다. 등장부터 다소 불안해 보였던 그는 두 실력파 여주 사이에서 튄다. 자신의 시그니처 넘버를 소화하는 내내 음정과 움직임 모두 무겁다.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할 정도로 불안정해 아쉬움을 안긴다.
이들의 무대는 2003년 한국 초연 이후 수없이 선보여온, 그 중에서도 ‘옥정페어’(옥주현·정선아)로 대표되던 한국판 ‘위키드’와는 다른 결의 감동이다.
이들이 노련함과 캐릭터의 대비, 한국 무대의 장점인 ‘현지화된 감정 전달’과 ‘말맛’으로 한국어 정서적 공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면, 오리지널 무대는 배우들의 모국어 표현, 관객 소통 방식, 무대 연출의 세밀함 측면에서 보다 정밀하다. ‘원조’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다. 다만 일부 감정선에선 더 정제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의상 하나로 세계관을 증명하는 내공도 놀랍다. 무대의 조명과 움직임에 따라 색과 분위기가 달라지며, 단 한 벌도 같은 디자인이 없다. 다채로움의 향연에 눈은 주체할 수 없이 즐겁다. 인형 같은 글린다 덕분에 그 쾌감을 최고치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엘파바의 2막 드레스는 ‘지구의 지층’에서 영감을 받은 360겹의 레이어드 드레스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며 예술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그만큼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표현됐다.
1막과 2막, 대학생에서 마녀로 성장해가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서사는 의상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읽힐 정도로 이야기 자체를 품고 있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신시아 에리보가 출연한 ‘위키드’ 영화가 전 세계 7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위키드 신드롬’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대가 주는 감정의 깊이는 여전히 강렬하다.
뮤지컬에서만 먼저 만날 수 있는 넘버들 ‘For Good’, ‘As Long As You’re Mine’ 같은 명곡들, 그리고 2막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서사. 그 모든 것이 눈앞에서 펼쳐지며 오감을 자극하는 무대적 쾌감, 이것이야말로 영화로는 느낄 수 없는 진짜 ‘마법’이다.
정교한 세트, 날아다니는 원숭이, 12.4m 타임 드래곤, 350벌에 달하는 의상, 트리플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OST까지, 뮤지컬 ‘위키드’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현상을 보는 듯하다. 스펙터클하고도 압도적이다.
게다가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판타지 작품만은 아니다. 권력과 시선, 소수자, 자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유쾌하면서도 철학적으로 아름답게 풀어낸다.
그것은 스크린이든 무대이든 상관없이 작품 자체의 가장 빛나는 미덕이요, 현시대에도 유효한 이야기이자 메시지다.
여기에 이번 라인업은 프로덕션이 발굴한 재능 넘치는 신예들이 대거 가세한만큼 폭발적인 에너지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왜 이 기록을 세웠는가’에 대한 답을, 현장에서, 관객 저마다의 감각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고전의 맛과 새로운 에너지가 조화롭게 무대를 감싸며 순수 복합예술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그야말로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진수다.
만약 스크린에서 처음 위키드를 만났다면, 이번엔 무대 위에서 그 감정을 다시 확인할 차례다. 분명 또 다른 첫사랑이 될 것이다.
반면 이미 이 무대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왜 다시 이 자리에 앉았는지, 앞으로도 계속 찾게 될 것임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떠올리게 된다. 170분간의 오즈의 마법은 끝나도, 그 감동은 늦은 밤까지도 계속될 테니 말이다.
초연 이후 22 년째 멈추지 않는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뮤지컬 ‘위키드’는 오는 10월 26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만날 수 있다. 이후 부산 공연은 11월 드림씨어터에서, 대구 공연은 내년 1 월 계명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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