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5 07:31:26
박용현 대표 NDC 25 기조강연 “K게임, 정체의 벽에 갇혔다” 유튜브·틱톡과 경쟁서도 밀려 모바일·PC·패키지 모두 위기 해외 통할 ‘빅게임’으로 돌파
“기회의 문이 열려 있을 시간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빅 게임’으로 시장을 빠르게 돌파해야 한다.”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4조원을 돌파한 ‘K게임 최강자’ 넥슨이 게임산업 위기론을 들고나와 주목된다.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게임 영역이 성장 정체에 빠졌으며, 한국 게임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골든타임도 넉넉하지 않다는 섬뜩한 경고에 파장이 일고 있다.
박용현 넥슨게임즈 대표 겸 넥슨코리아 개발 부사장은 24일 경기 성남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개막한 ‘넥슨개발자콘퍼런스(NDC) 25’ 기조연설에서 “PC, 모바일, 패키지 게임 시장 모두 정체에 빠져 있거나 위기”라며 “한국의 PC방 게임 순위를 봐도 출시된 지 10년 이상인 게임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게임산업 정체에 대한 위기감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위기론을 제기한 당사자가 지난해 사상 첫 매출 4조원을 돌파한 한국 대표 게임사 넥슨이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게임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호황기가 끝나면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한 상황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전 세계 게임산업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연평균 13% 성장했으나 2021년부터는 성장률이 1%대로 급격히 떨어졌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게임 이용률이 2022년 74.4%로 정점을 기록한 후 매년 하락해 지난해에는 59.9%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넥슨과 크래프톤 등이 선방하고 있지만, 많은 중견 게임사는 영업적자 또는 실적 감소를 기록하며 위기를 맞았다.
박 대표는 “게임 순위를 보면 출시 10년 이상 된 게임이 여전히 다수 포진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얼마나 정체됐는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 “모바일에서는 특히 유튜브나 틱톡과 같은 비게임 애플리케이션 매출이 게임 앱을 앞지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단순히 다른 게임사의 작품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숏폼 콘텐츠처럼 이용자의 한정된 여가 시간을 사용하는 모든 앱이 경쟁 상대이기 때문이다. 한국만 봐도 국내 이용자들의 하루 평균 유튜브 시청 시간이 올해 초 기준 약 140분에 육박할 정도다. 최근 수년간 중국 게임사들의 모바일 시장 공습이 거세진 것도 위협 요소다.
최근 들어 한국 게임사들이 도전하고 있는 콘솔 시장도 급격한 개발비 상승으로 녹록지 않다. 박 대표는 “이용자들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개발 비용이 폭증하고 있다”며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2018년만 해도 개발비가 1500억원 수준이었지만 5년 새 4500억원 수준으로 3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박 대표가 타개책으로 강조한 것은 그동안 한국에서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닌 과감히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빅 게임’ 중심의 전략이다.
박 대표는 “넥슨과 같이 덩치 큰 게임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모가 있는 ‘빅 게임’으로 승부해야 한다”며 “빅 게임은 단순히 대작이 아닌 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중국 외 지역에서 750만장 판매고를 기록하며 주목받았던 중국의 ‘검은 신화: 오공’을 거론하며 “중국과 동유럽의 신흥 개발사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곳도 있고, 막대한 자금으로 글로벌에 진출하려는 게임사도 있다. 한국은 한발 늦은 셈”이라면서도 “한국은 풍부한 라이브 서비스 게임 노하우와 K컬처의 인기와 같은 장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게임 개발에 집중하는 것뿐만 아니라 마케팅 방식을 글로벌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개발 조직 운영이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대표는 이어 “우리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수년밖에 없다”며 “익숙하고 안전한 바다를 벗어나 거친 대양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과감한 도전을 강조했다.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 또한 이날 환영사에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함께 소수의 대형 IP 중심의 시장 재편, 산업의 양극화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재미’라는 게임의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규제 중심의 게임 정책이나 게임사들의 노사 갈등도 K게임의 위험 요소로 거론한다. ‘던전앤파이터’ 시리즈를 제작한 넥슨의 자회사 네오플은 사측과 성과 보상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않으며 이날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파업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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