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0 18:00:00
아버지라면 딸과의 유대감을 더 쌓아보는 것이 어떨까. 딸이 더 오래 건강하게 살게끔 하려면.
20일 미국 노트르담대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아치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개코원숭이들을 관찰했더니, 아빠 원숭이와 깊은 유대감을 쌓은 암컷 원숭이일수록 수명이 더 길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 회보 B’에 18일 공개했다.
인간을 제외하고 아버지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포유류는 극소수다. 가장 큰 영장류 중 하나인 개코원숭이 역시 마찬가지다.
연구팀은 이 점에 주목하고 새끼 초기의 부계 관계가 미래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했다. 수컷 대신 암컷에 초점을 맞췄다. 수컷의 경우 성체가 되어 다른 사회 집단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수명을 추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의 암보셀리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암컷 개코원숭이 216마리들을 실제 관찰했다. 그 결과, 암컷 원숭이의 약 3분의 1이 3년 이상 아빠 원숭이와 같은 집단에서 살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머지 3분의 2는 아빠 원숭이가 집단을 떠났거나 암컷 원숭이가 생후 3년 이내에 사망한 경우였다.
연구팀은 이어 암컷 원숭이가 생후 첫 4년동안 아빠 원숭이와 유대감을 나눈 정도를 조사했다. 유대감은 서로를 털 손질(그루밍) 해주는 빈도로 따졌다. 연구팀은 “털 손질은 위생과 사회적 유대감을 위한 것”이라며 “사람으로 따지면 앉아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암컷 원숭이들이 성체가 되어 얼마나 아빠 원숭이와 함께 오래 살았는 지도 따졌다. 이 모든 조사들은 유전학 데이터를 통해 암컷 원숭이와 수컷 원숭이 간 부계관계가 입증된 후 진행됐다. 암컷 216마리와 부계 관계가 확인된 수컷 원숭이는 모두 102마리였다.
연구팀은 관찰 결과를 종합해 분석에 나섰다. 그 결과, 아빠 원숭이와 같은 집단에서 더 오래, 유대감을 쌓은 암컷 원숭이일수록 그렇지 않은 원숭이 비해 수명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 4년까지 차이가 났다. 암컷 원숭이의 평균 18년임을 감안할 때 꽤 큰 차이다.
아빠 원숭이와 더 오래 살거나 더 많이 털 손질을 해준다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되어도 암컷 원숭이 수명은 최대 3년이 늘어났다는 점도 확인됐다. 그러나 아빠 원숭이를 제외하고 다른 암컷이나 수컷과의 관계는 암컷 원숭이의 수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에 여러 메커니즘이 작용했다고 봤다. 연구팀은 “딸이 싸움을 벌이면 아빠가 개입할 가능성이 높고 호전성을 보여 딸 주변에 일종의 ‘안전지대’를 만든다”며 “음식을 뺏기거나 싸움으로 인해 다치거나 괴롭힘을 당할 가능성이 줄어들며 딸 원숭이가 건강한 성체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아빠 원숭이는 딸 원숭이의 사회적 네트워크 확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개코원숭이 간 교감은 주로 수컷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아빠 원숭이 근처에 있는 딸 원숭이는 엄마 원숭이와 있는 것보다 더 다양한 사회적 교류를 할 수 있다. 집단에서 인기 있는 구성원이 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딸 원숭이와 깊은 유대감을 쌓는 것은 아빠 원숭이 입장에서도 손해는 아니다.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데 있어서 오히려 효과적 전략이 될 수 있다. 암컷은 보통 18개월마다 새끼를 낳는데 수명이 길어지면 그만큼 더 많은 수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연구팀은 “수컷 원숭이는 어린 성체가 되었을 때 번식 성공률이 최고조에 달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면 암컷을 두고 다른 수컷과 싸우는 능력이 떨어진다. ‘아빠모드’로 전환해 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더 많은 후손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많은 포유류에서 아빠는 양육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지만, 개코원숭이의 경우 사소한 기여조차도 딸 원숭이에게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이번 연구는 인간 양육의 진화적 근원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1971년에 시작돼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영장류 연구 중 하나인 ‘암보셀리 개코원숭이 연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미국 국립보건원(NIH)는 이 프로젝트를 50년 넘게 지원 중이다.
연구팀은 “이 프로젝트를 지속할 수 있도록 수년간 지원해 주신 NSF와 NIH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그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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