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1 17:36:32
차기정부 정책 제언-강대희 한국원격의료학회장 혈압 반지·심부전 패치 등 일상에서 의료데이터 측정 맞춤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대 디지털헬스케어가 미래 먹거리 亞원격의료학회 10월 출범
“심전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한 뒤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심부전의 위험도를 알려주는 패치도 있고, 혈압, 심박수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스마트폰 앱으로 보여주는 반지도 개발되어 있어요. 하지만 개발비에 한참 못미치는 수가때문에 임상에서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장래성이 큰 원격의료 산업을 적극 밀어줘야 합니다.”
강대희 한국원격의료학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지금을 ‘의료 패러다임이 질병 치료에서 예방과 돌봄으로 바뀌어가는 시대’로 정의하고 디지털 헬스케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인당 병원 방문횟수 1위, 평균 재원일수 1위임에도 국민이 느끼는 의료 이용 만족도는 꼴찌”라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의료개혁이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 주도로 2021년 출범한 원격의료학회는 디지털 헬스와 비대면 진료의 도입을 두축으로 첨단의료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고 있다. 학계뿐 아니라 산업계와 병원계 전문가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강 회장은 “대선 국면에서 모든 후보들이 1순위 과제로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는데 디지털 헬스가 해답이 될 수 있다”며 “AI 신약 등이 키워드로 거론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자본력이 부족하고 보유 중인 후보물질도 많지 않아 글로벌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이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는 디지털 헬스란 주장이다. 그는 “디지털 헬스를 주도하는 엔지니어들은 실제로 시제품을 만들어본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정보통신(IT) 강국인 우리나라는 소재, 센서, 통신, 기계설계 등 여러 기술을 오랜 시간 쌓아왔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와 추진력만 있으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 다음날인 4일부터 국정과제 모니터링팀을 가동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헬스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는 ‘진료실’이라는 개념이 확장된 덕분이다. 혈압과 혈당, 심전도 등병원에서만 가능했던 검사들이 작은 반지나 패치로 대체되면서 가정에서도 누구나 건강 관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강 회장은 “시시각각 수집된 환자들의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료진이 맞춤형 진단을 내릴 수 있게 됐는데 이는 최근 트렌드인 정밀의료와도 맥을 같이 한다”며 “환자들이 매일 각종 수치 등을 확인하면서 스스로 경각심을 갖고 자기 몸을 더욱 잘 돌보게 된 것도 원격의료의 긍정적 측면”이라고 말했다.
붕괴된 지역의료를 살리는 데 있어서도 디지털 헬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 회장은 “서울대병원 정형외과에서 수련받은 전문의 중 비수도권에서 일하는 비율은 10%도 안된다”며 “지방의료원이 의사 연봉을 3억~4억원까지 제시해도 채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료 공백을 메우려면 디지털 기기를 바탕으로 원격 협진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실효적인 방법”이라며 “현재 서울대 의대 지역의료혁신센터에선 강원 춘천, 전북 남원, 제주 등과 함께 인프라 구축에 돌입했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선 이미 원격의료가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원격의료학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전체 진료의 30% 이상이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중국 평안보험의 비대면진료 플랫폼인 굿닥터에 접속하는 환자들의 진료 건수는 일평균 수천 만건이다.
강 회장은 “한 달 전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초청을 받아 원격의료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온라인 접속자만 1000명이 넘었다”며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오는 10월 아시아원격의료학회를 출범하고 산업 발전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원격의료가 활성화하려면 가장 먼저 수가가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 회장은 “우리아이들병원 의료진이 개발한 AI 청진기의 경우 디지털 청진기에 딥러닝을 접목시킨 모델로, 자동 호흡음 분류는 물론 분석의 정확도도 높였지만 비용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웰트의 불면증 디지털 치료제도 효능은 뛰어나나 수가를 인정받지 못해 임상 적용과 해외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검증된 디지털 기기들이 확대 적용될 수 있도록 정부가 기술 평가 등의 규제를 과감히 풀고 수가 체계도 개선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원격의료의 또 다른 축인 비대면 진료의 안정화도 새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되고 있으며 약 배송도 불가해 반쪽자리란 지적을 받고 있다.
강 회장은 “일본에서 당뇨·고혈압 환자들의 비대면 진료는 일상이 됐고 미국에선 드론으로 약 배송까지 하는데, 우리나라는 입법 논의조차 진전이 없다”며 “코로나19 대유행 때 이뤄진 3000만건의 비대면 진료 중 위중한 부작용은 10건도 안돼 플랫폼 자체에 대한 안전성은 검증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벽에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이, 주말에 복통으로 고생하는 어르신 등 1차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비대면 진료의 효과가 입증된 만큼 새 정부가 이를 안착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며 “올 여름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30년 가까이 끌어온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가 하루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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