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그 외침은 공허하게 들린다. '이공계 인재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투자 확대, 제도 개편, 인재 양성 수치가 나열되고 있지만, 정작 국가 경쟁력을 무너뜨리고 있는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최상위권 인재들이 의대에 몰리는 현상은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 공대 중 최고 명문이라는 서울대 공대의 합격선조차 전국 대부분 의대보다 낮다. 그나마 의대 대신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공대나 카이스트에 합격한 인재들조차 결국에는 등록을 포기하거나 자퇴하는 일이 잦다. 의대 진학을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2024학년도 연세대 인공지능학과 수시 합격자의 97.4%,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합격자의 95%가 등록을 포기했다.
대선 후보들은 반도체나 AI 등 첨단산업을 키우겠다고 강조하지만, 인재 없는 산업 육성은 허상일 뿐이다. 이들 분야에 진출할 두뇌가 빠져나가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이다. 지금대로라면 미국·중국·일본과의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은 꺼질 것이다. 의대 쏠림 해소는 이제 국가 생존의 문제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들의 이공계 인재 전략은 정밀함도, 긴박감도 결여돼 있다. 이재명 후보는 AI 분야 100조원 투자, 병역 특례 확대를 약속했고, 김문수 후보는 AI 인재 20만명 양성, 과학기술 부총리 신설,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를 내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의대 블랙홀'을 어떻게 뚫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우수 인재들이 과학자가 아닌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는 현실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거창한 전략도 무의미하다. 교육·연구·산업 전반의 보상 체계와 사회적 명예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공계 최상위권 학생에게는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지원하고 연구직 처우를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창업을 통해 천문학적 수익과 사회적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천재들은 의사가 아니라 과학기술자의 길을 택하게 되고, 대한민국의 미래산업도 새롭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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