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05 13:35:34
장면 1. 서울 남대문 시장 한복판, 활기 넘치는 상인들의 목소리 사이로 낯선 기계음이 들려온다. 은행 ATM 기기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다가가 보니 ‘코인 환전기’다. 비트코인이나 테더 같은 가상자산을 넘기면 시세에 맞춰 현금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내 거주 외국인 노동자까지 이 기계를 통해 디지털 자산을 실물 화폐로 손쉽게 바꾼다. 개발사 다윈KS의 이종명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외국인 전용 ATM 기기를 전국 곳곳에 설치하고 있는데 외국인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서서히 이용률이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장면 2. 한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 김 모 씨는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꺼내 들고 레돗페이라는 앱을 켠다. 익숙하게 터치 몇 번 하자 일반 카드처럼 결제가 완료된다. 놀라운 건 원화가 아닌 충전된 스테이블코인이 차감된다는 점. 비록 레돗페이 결제 카드 발급 비용이 100달러로 다소 부담스럽지만, 비자(VISA) 가맹점 어디서나 가상자산을 직접 결제로 이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김 씨는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최근 가상자산이 일상생활 속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코인으로 물건을 사고, 환전하며, 심지어 일부 업체 직원은 급여까지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곳곳에는 코인 환전기가 등장하는 등 그야말로 ‘코인 일상화’ 시대가 열리는 모양새다.
코인 일상화 주역은?
스테이블코인 결제·송금 가능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가치저장수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는 사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결제·송금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 등 법정화폐와 일대일로 연동돼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초월한 금융 서비스는 물론 ‘이자 농사(Yield Farming)’의 핵심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씨티그룹은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1조6000억달러(약 22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비트코인에 이어 가상자산 시장의 새로운 주류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에서는 스테이블코인 ‘테더’가 번번이 거래량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미 시장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왜 뜨나?
‘느린 송금’ ‘비싼 수수료’ 대안
“과거 법정화폐 담보 방식이 주를 이뤘던 스테이블코인이 이제는 수익형 구조, 실물자산 연계, 자동 수익 분배 등 다양한 금융 기능이 추가되며 진화하고 있다.”
코빗 리서치센터의 최근 보고서 내용 중 일부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결제 시스템은 해외를 중심으로 놀라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기존 은행의 스위프트(SWIFT)망이나 페이팔 같은 핀테크 플랫폼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결제가 주목받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송금·환전 수수료와 전송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결제가 가능해 기존 금융 인프라 접근이 어려웠던 개발도상국 등 낙후 지역에도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장점도 큰 매력이다. 이에 따라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 등 글로벌 결제 기업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현재는 코인 은행 역할을 하는 가상자산 거래소들 또한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가격 변동성이 없어 사실상 달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더욱 확산되면 코인 결제 시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스테이블코인이 이처럼 각광받는 이유는 금융권의 ‘가려운 곳’을 확실히 긁어줘서다. USDC의 경우 가격이 미국 달러와 연동돼 있어 코인 결제의 가장 큰 장애물이던 시세 변동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거래 금액의 3~4%를 수취하던 기존 국제 송금, 결제 플랫폼에 맞서 훨씬 빠른 전송 속도와 낮은 수수료율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분야는?
비자·마스터 등에 업고 결제 활황
가상자산 결제 규모가 급격히 커지면서 이를 정식으로 도입하려는 글로벌 기업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신용카드 결제 네트워크 기업이다.
마스터카드는 지난해 4월 스테이블코인 결제 서비스를 전격 시작했다. 이를 위해 바이낸스, 오케이엑스(OKX) 등 세계적인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전략적으로 손잡았다. 이 서비스는 가상자산이 담겨 있는 전자지갑과 카드를 직접 연동해 지갑 내 잔액 결제 시 지불할 수 있는 구조로, 사실상 ‘가상자산 체크카드’와 다름없다. 특히 결제 시점에 스테이블코인이 자동으로 법정화폐로 전환돼 가맹점에 대금 정산이 이뤄지며, 일부 선진적인 가맹점에서는 법정화폐 대신 가상자산으로 현물 정산을 받을 수도 있도록 시스템을 유연하게 구축했다.
비자는 2021년부터 이미 크립토닷컴을 핵심 파트너사로 두고 스테이블코인 결제 파일럿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실행해왔다. 크립토닷컴은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이자 가상자산 결제 카드를 발행하는 선두 기업이다.
두 회사는 크립토닷컴 카드를 통해 결제 수단으로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전격 추가했다. 크립토닷컴이 비자에 USDC로 대금을 정산해주면, 비자는 이를 다시 가맹점에 현지 법정화폐로 결제 대금을 지급하는 구조를 완성한 것. 이런 글로벌 플랫폼과 연계, 국내에서는 립페이(REAP pay), 스텔라페이(Stella pay), 디티씨페이(dtc pay), 알케미페이(alchemy pay) 등 다수의 해외 가상자산 결제 업체가 영업 중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관리부터 탈중앙화 금융(DeFi, 디파이)·대체불가토큰(NFT) 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유니콘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박수호·나건웅·최창원·조동현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3호 (2025.06.09~2025.06.17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