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3 15:11:48
국평에 밀리던 아파트의 반란
최근 강남구에서는 압구정3구역에 포함된 대형 아파트가 130억원에 팔려 화제를 모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현대7차 전용 245㎡가 지난 4월 25일 130억5000만원(8층)에 매매됐다. 역대 최고가다. 직전 거래는 지난해 6월, 3월이었고 각각 115억원(9층, 10층)에 거래됐다. 10개월 만에 15억원 이상 가격이 올랐다. 2023년 8월 입주한 신축 아파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101㎡는 지난 3월 74억8000만원(9층)에 실거래되며 신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2003년 입주한 영등포구 ‘당산삼성래미안4차(1391가구)’에서는 올 들어서만 아파트 18채가 사고팔리며 신고가도 나왔는데 모두 40평대인 전용 115㎡, 133㎡ 아파트였다.
각각 재건축, 신축, 구축 단지인 이들 아파트의 공통점은 전용 100㎡를 초과하는 ‘중대형(이하 중형·대형 포함)’ 아파트라는 점이다. 그동안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값은 전용 85㎡ 이하의 중소형 아파트가 주도해왔다. 20~30평대 아파트값이 오르면 그보다 큰 40~60평대 중대형 아파트값도 차례로 따라 오르는 식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전용 100㎡를 초과하는 중대형 아파트 인기가 심상찮다. 매매 거래 비중이 부쩍 늘어나는가 하면 올 들어 서울에서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주택 유형 역시 대형 아파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라 신고가 쓰는 중대형
재건축·신축 가리지 않고 상승
통상 아파트 면적은 전용면적별로 ▲60㎡ 이하는 소형 ▲60㎡ 초과~85㎡ 이하는 중소형 ▲85㎡ 초과~100㎡ 이하는 중형 ▲100㎡ 초과~135㎡ 이하는 중대형 ▲135㎡ 초과는 대형 아파트로 분류한다. 편의상 옛 10~30평 중반대에 해당하는 전용 41~100㎡를 ‘중소형’, 그 이상을 ‘중대형’ 아파트로 통칭하는데 공공·민간 통계를 보면 중대형 아파트 인기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에서 매매된 전용 100㎡ 초과 아파트는 2000건이다. 전월(1015건)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고, 전년 같은 달(530건) 대비 3.8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가 부쩍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3월 전용 100㎡ 이하 중소형 아파트 매매 거래량(1만36건)이 전월 대비 46.8%, 전년 같은 달(3233건)보다는 3.1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중대형 아파트 매매 거래 증가율이 크게 높았다.
분기별로 살펴보면 올 1~3월 중대형 아파트 매매 거래량(4327건)은 전체 매매 거래(2만9709건)의 14.6%를 차지했다. 1년 전인 지난해 1분기 이 비중이 11.1%, 2023년 1분기만 해도 4.1%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전체 거래에서 면적 큰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부쩍 늘었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 3구에서 올 1분기 중대형 아파트 매매 거래량 비중(26.1%)이 상대적으로 컸다. 2023년 1분기만 해도 이 비중은 20%에 그쳤다.
또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2022년=100)는 ▲전용 135㎡ 초과(110.5) ▲전용 102~135㎡(98.3) ▲전용 85~102㎡(103) ▲전용 60~85㎡(95.2) ▲전용 60㎡ 이하(89.7) 등으로 집계됐다. 매매가격지수는 기준 시점의 평균 가격을 100으로 두고, 그 이후의 가격 상승·하락률을 지수화한 것이다. 소위 주택 시장에서 인기가 많다는 ‘국민평형(전용 84㎡)’과 전용 59㎡가 포함된 중소형·소형 아파트보다 면적 큰 아파트의 가격 상승세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큰 아파트 왜 인기?
알고 보면 ‘가성비 똘똘한 한 채’
중대형 아파트 인기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중소형 아파트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3.3㎡당 가격이 낮아 저렴해(?) 보인다. 지금까지 매매가 총액이 적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좋은 중소형 아파트가 많이 오르다 보니 30평대 아파트와 40평대 아파트 가격 차이가 줄었다. 덕분에 단위면적당 값은 중대형 이상이 훨씬 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앞의 당산삼성래미안4차(1391가구)의 경우 전용 84㎡ 최근 실거래가(1층 제외)가 17억5000만원, 주력 면적인 전용 115㎡는 19억5000만원(신고가), 전용 133㎡는 21억원(20층)이다. 3.3㎡당(공급면적 기준) 가격으로 환산하면 전용 84㎡는 3.3㎡당 5300만원, 전용 115㎡는 4535만원, 전용 133㎡는 4375만원 선이다. 신고가를 썼다는 압구정 현대7차 전용 245㎡(옛 80평)에 대해서도 압구정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반포동 신축 아파트가 3.3㎡당 2억원, 3억원도 넘어가는 상황에 3.3㎡당 1억6000만원 꼴인 압구정 재건축 아파트가 되레 저렴해 보일 수 있다”며 중대형 아파트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또 중대형 아파트는 절대적인 공급량이 적다. 2006~2007년만 해도 강남권과 수도권 ‘버블세븐’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분양 아파트의 34~37%에 달했던 중대형 아파트 공급 물량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줄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 규모별 인허가 실적’을 봐도 2010년까지 전체 인허가 실적의 20% 안팎이 전용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였지만, 이후 매년 10% 안팎을 유지 중이다.
중대형 아파트 비중은 2021년 10.5%에서 2022년 14.8%로 반짝 늘었는데 이후 2023년(13.3%), 지난해(12.8%)에 걸쳐 다시 감소세다. 그나마 이들 물량은 아직 공사 중이거나 입주 전일 가능성이 높다. 중대형 아파트 공급 자체가 적다 보니 재개발·재건축 호재가 없는 구축 중대형까지 인기가 높아졌다. 자산가가 많은 서울 주요 지역 아파트는 신축 중대형 평형 희소가치가 더 높다.
또 고소득자가 증가하고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거치면서 1~2인 가구, 핵가족이어도 넓고 쾌적한 집을 선호하는 수요가 늘었다. 여기에 대출 규제와 세금 부담 등으로 소형 주택 여러 채 대신 ‘똘똘한 한 채’ 아파트를 매매하는 이가 늘어났다는 풀이도 나온다. 결국 상대적인 저렴함, 공급 부족, 트렌드 변화에 ‘똘똘한 한 채’ 선호까지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맞물려 중대형 아파트 부활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중대형 인기 추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소득이 받쳐주지 못하는 지역이나 서울 외곽 지역은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지난 2월 분양한 방배동 ‘래미안원페를라’의 경우 전용 121㎡ 1순위 경쟁률이 57.5 대 1이었고 당첨 가점도 69점에 달했다. 반면 지난해 말 분양한 노원구 월계동 ‘서울원아이파크’ 전용 120㎡A는 청약 경쟁률이 1.61 대 1에 그쳤고 120㎡C는 미달이 났다. 즉, 중대형 선호 현상은 강남 3구, 용산구, 성동구, 여의도 등 일부 ‘고소득’ 지역에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단순히 중소형 아파트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대형 아파트를 매수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중소형 아파트의 경우 직장 접근성, 교육환경 우수성, 생활 인프라와 편의성 등이 주요 고려 요소지만 대형 아파트는 여기에 더해 단지 입주민 수준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대형 아파트는 중소형 아파트보다 더 섬세한 입지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1호 (2025.05.28~2025.06.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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