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6 13:03:51
최근 한국 영화 산업 전체를 뒤흔들 만한 ‘깜짝 뉴스’가 전해졌다. 국내 멀티플렉스 브랜드 2위인 롯데시네마와 3위 메가박스가 전격 합병한다는 소식이다. 점유율을 늘리고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는 아니다. 관객 수와 상영작 급감 등 한국 영화 위기에 따른,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다. 한국 영화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천만 영화가 연신 쏟아져나왔던 201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 얘기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높은 콘텐츠 경쟁력과 관객 충성도를 자랑하던 한국 영화 산업은 전에 없이 흔들리는 중이다. 극장가는 자구책 마련에 분주해왔지만, 합병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위기에서 탈출할 극장가 ‘비상구’는 어디에 있을지 분석해본다.
롯데-메가, 생존 위한 합병
관객 수·매출 급감…흥행작 無
한국 영화의 위기 요인은 복합적이다. 팬데믹 같은 천재지변부터 급증한 OTT 영향력 등 트렌드 변화까지 다양하다. 한 번 위기가 찾아오자 악순환 굴레에 빠졌다. 투자·기획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영화 업계는 텐트폴 대작보다는 속편이나 리메이크 제작에 여념했고 콘텐츠 경쟁력은 약화됐다. 실적 개선을 위해 극장가가 티켓값을 올리면서, 관객 사이에서는 보다 검증된 영화만 선택하는 경향이 확산됐다. 이는 관객 수 감소는 물론 영화 다양성이 저해되는 현상을 이끌었다. 콘텐츠 약화로 극장을 찾는 관객 발길이 뜸해졌고 이는 또다시 이른바 ‘안전빵’ 영화만 제작하게 되는 양상으로 굳어졌다.
한국 영화 위기는 통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2024년 극장 매출액은 1조1945억원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평균(1조8282억원)과 비교하면 65% 수준이다. 관객 수(1억2313만명)는 코로나 이전(2억2098만명)보다 1억명 가까이 줄었다. 최근 3년간 극장 매출과 관객 수는 박스권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을 운영하는 기업 실적도 악화했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 운영사 메가박스중앙 모두 실적 부진에 허덕인다. 2019년 7711억원이었던 롯데컬처웍스 매출은 지난해 4517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역시 14억원에서 3억원으로 감소했다. 2023년 영업손실 84억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간신히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메가박스중앙 상황은 더 심각하다. 팬데믹 이전과 매출은 비슷하지만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2019년 영업이익 39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영업손실 127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682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적자다.
최근 롯데시네마-메가박스 전격 합병 이유도 여기 있다. 수익성이 급감하고 매출 대비 운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서 합병을 택했다. 수익성이 낮은 상권 위주로 극장을 통폐합해 효율을 높이고 투자배급을 공동으로 진행해 비용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덩치를 키우기보다는 ‘정리’에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멀티플렉스뿐 아니다. 영화 산업 부진으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단관 극장’도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1958년 개관한 충무로 대한극장이 66년 만에 문을 닫았다. 2021년에 서울극장이 운영을 종료하면서 서울 단관 극장 최후의 보루로 여기던 대한극장은 그동안 누적된 적자를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폐업 결정을 내렸다.
극장에서 상영할 국내 영화 개봉편 수도 매년 감소 추세다. 2019년 한국에선 영화 총 1740편이 개봉했는데, 2023년에는 1410편, 지난해에는 1344편까지 줄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했던 2020년(1693편)보다도 요즘이 훨씬 위축된 모습이다.
흥행작도 없다. 2019년 천만 영화가 무려 5편 쏟아져나왔지만 지난해에는 ‘파묘’와 ‘범죄도시4’ 2편에 그쳤다. 2022년과 2023년 역시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외하면 천만 영화가 한 편(2022년 아바타: 물의 길, 2023년 서울의 봄)뿐이었다. 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도 상황이 비슷하다. 2019년에는 30편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5편에 그쳤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암울하다. 벌써 한 해가 절반 가까이 지났지만 관객 수 300만명을 넘어선 영화가 ‘야당’과 ‘미키17’ 단 두 편뿐이다.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파묘와 범죄도시 흥행으로 한국 영화 시장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연간 기준으로 따지면 오히려 전체 관객 수가 역성장했고 올해와 내년 전망은 더 부정적”이라고 우려했다.
관객·제작자, OTT로 ‘대이동’
수익 악화 → 가격 인상 → 관객 감소
한국 영화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내몰렸을까. 팬데믹 여파가 크긴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게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 중론이다.
3가지 요인이 겹쳤다. 극장 수익 계산 공식을 단순화하면 ‘(관객 수 × 티켓 가격) - 운영 비용’이다. 그런데 관객 수는 줄고 티켓 가격은 높이기 어려우며 운영 비용은 되레 늘어나고 있다.
지인해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팬데믹 이후 급감한 관객 수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에 계속 빼앗기는 중이다. 수차례 가격 인상 탓에 티켓값을 지금보다 더 높이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여기에 임대료와 인건비 같은 고정비가 계속 늘어나면서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고 설명했다.
관객 수 감소는 역시 OTT 영향이 크다. 영화 감상 대체재가 늘어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발길이 뜸해졌다. 조금만 기다리면 극장 개봉작을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또 시공간 제약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 소비 트렌드를 바꿨다. 요즘엔 극장 대신 아예 OTT로만 개봉하는 영화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30%대였던 국내 OTT 이용률은 지난해 79%까지 높아졌다.
점유율을 빼앗기면서 영화별 수익률도 떨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제작비 30억원 이상을 투입한 국내 상업 영화 37편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평균 추정 수익률은 -16.4%다. 2023년(-31%)보다는 그나마 개선됐지만, 본전에 한참 못 미치는 수익을 거뒀다.
관객만 빼앗긴 것이 아니다. 콘텐츠도 극장보다는 OTT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제작사가 OTT로부터 받는 수익에는 ‘리스크’가 없다.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보통 제작비에 비례한 고정 액수를 OTT가 제작사에 지급한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손실 부담이 없고 제작비를 키우면 키울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OTT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100억원 제작비를 들인 콘텐츠를 만들면 흥행에 참패해도 제작비 10%인 10억원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다.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쿠팡플레이 등 국내외 OTT가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를 늘리면서 극장을 떠나 OTT에 둥지를 트는 제작자가 크게 늘었다”며 “원래는 영화로 만들기로 계획했던 작품을 드라마로 각색해 OTT에서 제작하는 감독과 투자사도 많다”고 설명했다.
박성준 한국영상대 영상연출학과 교수는 “개인 취향 맞춤형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OTT 콘텐츠 소비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다양성 영화 제작 지원이 축소됐다. 흥행에 유리한 OTT 대작 위주로 산업 구조가 재편되면서 영화 산업이 큰 위기를 맞이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오른 영화 티켓 가격도 극장을 외면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관객 수 감소로 수익이 악화하자 국내 극장가는 적자 만회를 위해 티켓값을 거듭 올렸다. 2018년 국내 평균 영화 관람료는 약 8100원이었지만, 2023년에는 1만1900원으로 치솟았다. 멀티플렉스 극장은 2018년 이후 5차례 가격을 올려 이제는 평일 티켓값이 1만5000원을 넘어섰다.
티켓값이 오르자 소비자 사이에선 ‘평소에는 OTT를 감상하고, 비싼 극장은 기념일이나 데이트 같은 특별한 날에만 간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이러다보니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이른바 ‘대작’에만 극장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극장은 돈을 벌기 위해 흥행이 예상되는 작품 스크린 수만 늘려나갔고, 영화 애호가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줄어든 탓에 극장에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티켓값 인상 → 관객 수 감소 → 수익 악화 → 검증된 영화만 제작·개봉 → 콘텐츠 다양성 악화 → 관객 수 감소’라는 악순환이 극장가를 옭매는 모습이다.
“비용 줄이고 경험 판다” 안간힘
임영웅 콘서트 보고 야구팀 응원도
위기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극장가도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내놓기에 여념이 없다.
최근 결정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합병도 그중 하나다. 롯데그룹과 중앙그룹은 올해 5월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합병 절차에 돌입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를 거친 뒤 승인이 나면 곧바로 합칠 계획이다. 당분간 합작법인을 공동 운영하며 조직을 효율화하고 신규 투자를 유치해 재무 건전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롯데컬처웍스 관계자는 “합병을 통해 불필요한 경쟁을 줄이고 경영 안정화로 지속 가능한 사업 환경을 구축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가박스중앙 관계자도 “양 사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공동 마케팅 진행 등으로 비용 절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영화관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양측이 최후의 수단으로 합병 카드를 내놨다는 의견이 나온다. 올해 1분기 롯데컬처웍스는 영업손실 104억원을, 메가박스중앙은 영업손실 103억원을 기록했다.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양측 모두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합병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눈치다. 영진위에 따르면 상영관 수를 기준으로 한 지난해 국내 영화관 시장점유율은 CGV 43.8%, 롯데시네마 29.8%, 메가박스 24.9% 순이다. 양 사 합병 시 CGV 점유율을 넘어 업계 1위 사업자가 된다. 다만 같은 지역에 겹치는 극장과 스크린 수를 조정할 경우, 점유율은 소폭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 이후 영화 배급 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CJ ENM·플러스엠·롯데엔터·쇼박스·NEW 등 빅5로 불리는 주요 배급사 경쟁 구도도 달라질 전망이다. 배급사 빅5 중 천만 영화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은 CJ ENM(7편)인데, 콘텐트리중앙 플러스엠(4편)과 롯데컬처웍스 롯데엔터(2편)가 함께하면 CJ ENM과 맞먹는 규모가 된다. 한 영화 업계 관계자는 “합병으로 인해 고정비 절감, 중복 투자 제거, 투자·배급 통합 등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 유치와 부채비율 감소 등 재무건전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면서도 “관객 수 확대나 경쟁력 제고 등 관점에서는 특별한 기대효과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만 줄 수 있는 ‘경험 판매’에 집중하는 모습도 보인다. 극장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OTT 시장과 차별화를 위해서다. ‘특수 상영관’을 늘려 관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스포츠 경기를 생중계로 보여주는 ‘라이브뷰잉’은 현재 멀티플렉스 3사 모두 뛰어든 상황이다. 야구·농구·e스포츠 경기를 대형 스크린으로 관람하며 자기 팀을 응원하는 문화는 OTT에서는 즐길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특히 CGV가 적극적이다. 경기 생중계는 물론 각종 유통 업체와 협업해 야구 관련 마케팅을 이어가는 중이다. CGV는 올해 3월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업무협약을 맺고 프로야구리그 단독 생중계와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야구 생중계 때는 하이트진로와 협업해 맥주 ‘켈리’가 포함된 세트 메뉴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체험에 초점을 맞춘 콘텐츠 연계형 프로그램을 늘려가는 중이다. 롯데시네마 ‘무비플러팅’은 극장과 소개팅을 묶었다. 롯데컬처웍스가 결혼정보회사 노블레스수현과 손잡고 지난해 4월 선보인 프로그램으로, 프리미엄 상영관인 샤롯데관에서 남녀가 단체로 영화를 감상한 후 다대다 미팅을 진행한다. 롯데시네마는 체험형 전시 공간 ‘랜덤스퀘어’,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롤플레잉 체험형 콘텐츠 ‘라이브시네마’, 국내 최초 버튜어 전용 공간 ‘브이스퀘어’ 등 다양한 액티비티 공간도 운영한다.
사운드와 스크린에 집중한 ‘특별관’을 늘리는 경향도 뚜렷하다. ‘메가박스 돌비시네마’는 생동감 넘치는 화면에 집중한 ‘돌비 비전’과 모든 방향에서 관객을 감싸는 듯한 사운드를 자랑하는 ‘돌비 애트모스’ 기술을 결합한 특별 상영관이다. 롯데시네마 사운드 특화관 ‘광음시네마’도 일반 상영관 대비 좌석 점유율이 높다. CGV 역시 아이맥스를 비롯해 정면뿐 아니라 좌우 면에서도 관람이 가능한 스크린X 상영관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천장 스크린을 추가한 세계 최초 4면 스크린X를 선보이기도 했다. 특별관은 티켓값이 비싼 만큼, 수익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
요즘 극장가가 ‘팬덤 경제’에 집중하는 이유도 수익 창출과 무관하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나 특정 아티스트에는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아티스트 콘서트나 뮤지컬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가 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등 컬트 시장을 공략하는 움직임도 적극적이다. 놀고 있는 빈 상영관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인 데다, 독점 상영으로 고객 충성도와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아티스트 굿즈 판매 등 부수입을 늘릴 여지도 많다.
실제 팬덤을 기반으로 한 공연 장르는 극장가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극장에서의 공연 매출액은 264억원으로 2019년 장르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액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CGV가 선보인 임영웅의 두 번째 공연 실황 영화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공연 실황 영화 최초로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기존 공연 실황 영화 소비층이 10~30대 젊은 관객 중심이었다면 임영웅 공연 영화는 50대 이상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관객층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평가다. 티켓 가격이 2D는 2만5000원, 스크린X는 3만2000원으로 일반 영화보다 1만원 이상 비싼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찾아 수익성 면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 공연 영화 ‘김준수 콘서트 무비 챕터 원: 레크리에이션’과 ‘아이브 더 퍼스트 월드투어 인 시네마’도 각각 관객 수 3만명을 돌파했다. 팬들의 단체 대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공연 영화는 콘서트에 한정되지 않는다. 뮤지컬·오케스트라·클래식 등 세부 장르 스펙트럼 확장세가 계속되고 있다.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는 ‘라보엠’, ‘2025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등 클래식 실황 녹화 중계를 이어가고 있다. 현지 라이브와 날짜·시간 간격을 최대한 좁혀 상영하면서, 클래식 팬 지지를 얻었다. 메가박스가 지난해 10월 개봉한 뮤지컬 공연 영화 ‘엘리자벳: 더 뮤지컬 라이브’는 5만명 관객을 모았다. 엘리자벳 10주년 공연을 영화화한 콘텐츠로, 옥주현·이지훈 등 인기 배우 공연을 치열한 예약 경쟁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과거엔 B급 문화로 여겨졌던 일본 애니메이션도 이제는 극장가 주요 수익원이다. 귀멸의 칼날·주술회전 등 흥행 성공에 힘입어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개봉이 잇따른다. 올해 3월 개봉한 ‘진격의 거인 극장판 완결편’은 5월 현재 기준 관객 수가 85만명을 넘어서며 올해 전체 개봉작 중에서도 관객 수 8위에 랭크되는 저력을 보였다.
한국 영화 위기 극복 제언
독립영화 육성…‘홀드백’ 해결을
전문가들은 영화 산업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 차원 지원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콘텐츠 속에는 음식·패션·음악 등 한 국가의 문화가 모두 담겨 있다. 한국 문화 산업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 현재, 영화 위기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영진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윤호 동국대 영상대학원장은 “최근 문화 패권 전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1980년대 세계 영화 시장을 주름잡던 홍콩이 중국화되면서 존재감이 약화된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아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교수 역시 “OTT 등 소비 트렌드 변화로 인한 예술 분야가 위축되고 있는데, 이를 지키고 육성하는 나라가 진정한 문화 강국”이라며 “문화 안보 관점에서 영화 산업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육성·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업 영화뿐 아니라 저예산 독립영화에 관심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주목할 만하다. 콘텐츠 다양성이 늘어나면 관객 수 증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는 독립영화가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다시피 하다. 위기를 맞은 극장가가 당장 돈이 되는 상업 영화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극장 상영 기회가 없는 독립영화를 살리기 위해서는 ‘영화제’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역 소규모 극장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영 기회가 줄어드는 독립영화 배급과 상영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이다. 박성준 교수는 “소규모 극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일본도 지역 채널 위주로 유통을 다변화해 생존법을 찾았고 홍콩 영화 역시 다양한 배급 채널을 확보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년간 이어진 ‘홀드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홀드백이란 영화가 극장에서 일정 기간 상영된 후 IPTV나 OTT로 넘어가기까지 기간을 말한다. 홀드백 기간이 길어져야 관객 입장에서 극장을 찾을 유인이 높아진다. 과거에는 극장 상영 3개월 후 유료 결제 시장으로, 1년 후에 공중파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상영 한 달 만에 OTT로 넘어가는 사례도 많다.
홀드백이 지켜져야 한다는 데 전문가 의견이 모이지만, 중소 제작사 입장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개봉 전 마케팅비를 투입한 중소형 제작사는 2·3차 시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충분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율에 따라 영화발전기금과 부가세 등을 차감하고 극장과 일정 수익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부율이란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하는 동안 거둔 관람료를 극장과 배급사가 나누는 비율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이 부율 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극장과 배급사 사이 수익을 나누는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홀드백 문제 해결 열쇠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봉 첫 주에는 제작사에 90%를 몰아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비율을 조정하는 슬라이딩 부율 제도 도입을 논의해봄직하다”며 “개봉 초반에는 제작자에게 수익을 몰아줘 다음 영화를 무리 없이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고 개봉 기간이 늘어날수록 극장이 돈을 벌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