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2.21 12:04:11
김앤장 넘사벽 1위, 광장 사상 첫 매출 4000억원 돌파, ‘복병’ YK 어느새 7위. 국내 법무법인(로펌) 경쟁 구도를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국내 10대 포럼은 안정적인 매출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부동의 1위’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경쟁자가 도저히 따라오기 힘들 만큼 덩치를 키웠다. 치열하게 2~3위 경쟁을 벌이던 광장과 태평양은 희비가 엇갈렸다. 광장이 처음으로 매출 4000억원을 돌파하며 ‘단독 2위’ 위상을 차지했다. 특허법인과 해외법인을 포함한 총매출은 4300억원이 넘는다. 태평양은 3위를 지킨 가운데 율촌과 세종이 바짝 뒤를 좇는 모양새다.
가장 눈에 띄는 로펌은 YK다. 전국 주요 거점에 사무소를 둔 ‘네트워크형’ 로펌인 YK는 형사 부문에 강점을 보이며 빠른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2023년 10위권에 진입하며 이름을 알렸던 YK는 지난해 7위로 껑충 뛰었다.
2위 그룹 치열한 경쟁
경영권 분쟁 큰손 광장 존재감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매출로 보나 변호사 수로 보나 자타공인 국내 최고 로펌이다. 법률사무소 형태로 운영 중인 김앤장은 정확한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조50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7년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긴 이후로 해마다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김앤장에는 국내외 변호사 외에도 회계사, 변리사 등 전문가 2000여명이 포진했다. 인수합병(M&A)부터 해외 기업과의 분쟁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의 굵직한 법률 자문을 맡아왔다. 지난해에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서울 여의도 콘래드 서울 호텔 매각, 지오영 매각·인수 자문 등을 성사시켰다. 바이아웃 거래 발표 기준 60건, 25조원대 거래를 자문했다.
2위 광장도 로펌 지각 변동의 주인공이다. 광장의 지난해 매출은 4111억원으로 1977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4000억원대를 돌파했다. 2023년 매출 감소로 고전했으나 화려하게 부활했다. 전체 법률사무소·로펌 중 연간 매출 4000억원을 넘긴 곳은 김앤장과 광장뿐이다. 광장이 자랑하는 인수합병팀과 형사공판팀이 앞장섰다. 지난해 광장의 성과를 상징하는 딜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이다. 2023년 최대어로 거래 규모가 6조4500억원에 달한다. 이 밖에 에어인천의 아시아나 화물기 인수 거래를 성사시켰다. 형사공판 부문에서는 허영인 SPC 회장 배임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관련 불공정거래행위로 기소된 카카오 투자대표의 방어를 맡았다. 또한 IT 스타트업 법률 자문 시장에서 이름을 나타냈다. 판교 사무실을 토대로 AI, 블록체인, 핀테크 부문 기업과의 협업을 늘렸다.
2023년 광장과 매출 격차를 10억원까지 좁히며 2위 자리를 위협했던 태평양은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2023년 대비 5.5% 성장한 3918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실적이지만, 경쟁자 상승세가 워낙 높았다. 태평양 매출 성장률은 빅6 로펌 중 가장 낮다. 태평양을 제외한 빅6 로펌은 모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거뒀다. 2위 광장과의 격차도 200억원으로 벌어졌다. 다만, 존재감은 여전하다. 인스파이어 복합리조트 개발, HD한국조선해양의 STX중공업 인수 시 기업결합 신고, 어퍼니티의 SK렌터카와 롯데렌터카 인수 등에서 건재감을 과시했다. 송무에서는 휴젤과 메디톡스 간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분쟁에서 휴젤을 대리해 최종 승소했다. 현대자동차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도 파기환송을 받아냈다. 특허·해외 법인 포함 매출은 4207억원을 기록, 2년 연속 4000억원대를 달성했다.
율촌·세종 빅3에 도전장
6위 화우 지난해 성장률 최고
태평양이 주춤거리는 사이, 중위권 로펌들이 가파르게 치고 올라왔다.
‘빅3’에 도전하는 율촌은 2023년 3285억원에서 2024년 3709억원으로 매출이 급등했다. 2022년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매년 높은 성장세를 유지 중이다. 3위 태평양과의 격차도 429억원에서 209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율촌은 금융기관 자문과 함께 SK·LG그룹 총수 분쟁 사건 등 다수 기업 형사사건을 맡았다. 또 2조7000억원 규모 에코비트 인수 자문, 한화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등 소송과 자문 분야에서 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율촌은 중대재해처벌법 관련해서 최초의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이 부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5위 세종은 성장세가 가파르다. 매출 3698억원으로 15%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율촌 뒤를 바짝 좇고 있다. 2위권인 광장·태평양과의 차이도 확 줄었다. 율촌과 함께 기존 빅3 입지를 흔들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한온시스템 인수, 제네시스프라이빗에쿼티의 KJ환경 매각 등 M&A 거래 자문을 큰 폭으로 늘렸다. 동시에 기업금융·공정거래·에너지 프로젝트에서 선전했다. 지난해 재계를 뒤흔든 고려아연, 한미약품그룹 주주 간 분쟁,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소송 등 대형 민형사 소송을 수행하며 실적을 높였다.
화우는 지난해 가장 뜨거운 로펌 중 한 곳이었다. 2021년 연매출 2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제자리걸음이었던 화우는 지난해 매출 2500억원을 달성하며 반등했다. 20% 넘는 성장률로 빅6 로펌 가운데 가장 성장률이 높다. 특허법인과 해외사무소를 포함한 총매출은 2700억원이 넘는다. 2023년 10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이명수 대표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금융감독원 변호사 출신으로 국내 최고의 금융 변호사로 평가받는다.
2024년 3월 한 달에만 금호·아시아나 M&A 계약금 소송, 한미약품 경영권 분쟁 등 주요 기업 소송 2건을 모두 승리했다. 2건을 포함, 지난해 한 해 동안 한앤코의 남양유업 인수 관련 주식양도청구 소송, 한미사이언스 신주발행금지가처분 사건, DB하이텍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사건 등을 모두 승소했다. 강점을 보이던 금융 분야에서도 맹활약했다. 금융 시장 큰 이슈였던 랩신탁 사건과 ELS 사건 관련 다수의 은행, 증권사 고객들을 자문하며 금융 강자 면모를 뽐냈다.
YK와 대륜은 로펌 지각 변동의 주인공이다. 2023년 10대 로펌에 진입한 YK는 지난해 7위까지 올라섰고, 대륜은 처음으로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로펌 매출이 늘어나면서 김앤장을 제외한 주요 법무법인 9곳의 총매출액은 2조원 시대를 열었다.
다만 중위권 로펌 성장세는 주춤하고 있다. 지평은 지난해 4% 늘어난 1206억원 매출을 올렸다. 2021년 19% 고성장으로 ‘1000억원 클럽’에 진입한 이후 4~5%대 성장률에 머무른다. 바른과 대륙아주는 각각 1064억원, 936억원으로 0.6% 증가한 데 그쳤다. 7~10위권에선 동인만 매출 780억원으로 11.9% 성장률을 보였다. 로펌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모양새다.
로펌들은 인공지능(AI)·디지털금융 등 신사업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재계 재편과 금융 규제 강화에 따른 법률 시장 수요뿐 아니라 트럼프 2기를 맞아 미국발 해외 규제 대응과 관련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네트워크 로펌發 지각 변동
YK·대륜 신흥 강자로 굳건히
2024년 로펌 업계의 화두는 단연 ‘네트워크 로펌’의 약진이다. YK와 대륜이 모두 기존 강자들을 제치고 나란히 매출 7위, 9위권에 안착했다. 7~10위권에 포진하던 기존 강자 지평, 바른, 대륙아주, 동인을 모두 끌어내렸다.
네트워크 로펌은 로스쿨 시대에 접어들어 새롭게 등장한 형태의 로펌이다. 전통적인 법무법인은 본사 사무실을 1곳에 두고 일부 지사만 운영한다. 반면 네트워크 로펌은 여러 개 주사무소와 분사무소를 두고 운영한다. 전국에 영업망을 깔고 고객을 모집한다. 수익 분배 방식도 다르다. 기존 로펌은 변호사 개인이 사건을 수임해 번 돈을 각자 가져가는 별산제 방식을 택한다. 반면, 네트워크 모델은 분사무소가 아닌 본사에서 재무·인사 등을 관리하며 수익을 나눈다.
네트워크 로펌은 초창기 개인 형사사건 시장을 휩쓸며 두각을 드러냈다. 소규모 개인 법률사무소만 위치한 지방에, ‘서초동식 서비스’를 소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서는 상속, 기업 송무까지 영역을 넓히며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2023년 10위권에 처음 이름을 올린 YK는 비교적 약점으로 꼽혔던 기업 송무와 자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공격적으로 변호사를 영입하며 덩치를 키우는 전략이 주효했다. YK는 권순일 전 대법관, 한만수 변호사, 추원식 변호사, 이인석 변호사, 배인구 변호사 등 인재를 공격적으로 영입했다.
영입 인재들 활약으로 공정거래그룹과 금융 부문이 급성장했다. 이인석 대표변호사가 진두지휘하는 YK 공정거래그룹은 출범 6개월 만에 차액가맹금 반환 소송, 티몬·위메프 사태 관련 결제대행업체(PG) 법률 자문 등에서 성과를 냈다. 2023년까지만 해도 ‘기업 소송까지 성과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는 세간 평가를 뒤집었다. 금융 부문은 광장에서 20여년간 자본 시장 전문가로 활약한 추원식 대표의 합류 이후 탄력을 받았다.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법률 자문, PEF 상장사 인수, 기업 상장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현재는 홍콩 ELS 사태 투자자 대리 소송을 추진 중이다.
성과는 가파른 실적 성장세로 이어졌다. 2024년 매출 순위가 7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평, 바른, 대륙아주 등 강자를 모두 제쳤다. 1년간 매출 성장률은 96.8%에 달한다. 상위권 로펌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보수적인 로펌 업계 특성상 20%가 넘는 곳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YK 관계자는 “올해는 기업 비즈니스 분야 확장과 내실 강화를 동시에 이루는 게 목표다. 데이터 기반 보상 체계를 도입, 구성원들 동기 부여를 통해 조직 역량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YK에 이어 또 다른 네트워크 로펌 ‘대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2022년 400억원, 2023년 700억원의 매출을 거둔 대륜은 2024년 매출 1000억원을 넘기며 당당히 매출 순위 9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륜은 YK(32개)보다 더 많은 42개의 분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최근 회사 본사를 여의도 파크원으로 이주, 본격적인 기업 법무 소송 시장에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다만, 네트워크 로펌이 잘나가는 만큼, 기존 법조계 견제도 본격화됐다. 최근 대한변협은 네트워크 로펌에 대해 제기된 각종 민원 수십 건에 대해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이른바 거대 네트워크 로펌들은 이번 변협 징계 절차에 모두 포함됐다. 변호사 생태계를 해치고 있다는 판단에서, 변협은 징계 절차 착수에 돌입했다. 현재 네트워크 로펌에 대한 민원 및 징계 요구는 수십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협은 이처럼 네트워크 로펌의 영업 행태에 대해 향후에도 법 위반에 해당한다면 지속적으로 징계를 추진할 계획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네트워크 로펌은 높은 실적만큼 소속 변호사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는 불만이 많다. 이들의 영업 방식을 두고 개인 변호사들의 반발이 커지는 것도 부담이다. 이런 리스크만 잘 해결한다면 새로운 로펌 모델로서 자리 잡을 것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잘나가지만 근심 여전
모럴 해저드·MZ 외면 부담
매년 폭발적인 성장세를 자랑하는 로펌 업계지만, 근심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달아 터지는 도덕적 해이 논란과 주니어 변호사들의 이탈 등 문제가 새로운 해결 과제로 떠올랐다.
가장 뜨거운 이슈는 법무법인 광장의 정보 유출 사건으로 불거진 ‘도덕적 해이’ 논란이다. 광장은 최근 금융당국 조사를 받았다. 직원 일부가 다수 회사의 공개매수·유상증자 정보를 활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정황이 드러나서다. 광장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법률 자문을 맡았다. 이때 민감한 정보가 다수 로펌 측에 전달됐는데, 전산 담당 직원들이 자문을 맡은 변호사 이메일을 열어봤고 정보가 유출됐다. 2023년 광장이 맡은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 건도 비슷한 방법으로 새어나갔다. 치과용 임플란트를 만드는 오스템임플란트는 2007년 코스닥에 상장돼 시가총액 2조원대까지 커졌으나, 2023년 공개매수를 통해 자진 상장폐지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공개매수가는 발표 전 한 달 평균 주가보다 40% 높은 수준이었다.
범죄에 연루된 광장 소속 직원들은 본인과 지인들 명의로 주식을 미리 사두고 주가가 오른 뒤 팔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씩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레인보우로보틱스, 오스템임플란트 외에 또 다른 기업의 미공개 정보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가에 민감한 거래를 자문하는 로펌은 ‘비밀 유지 의무’를 엄수해야 한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자문을 돕는 직원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법률’을 다루는 곳에서 법을 어기는 사태가 일어나자 법조계는 ‘충격적이다’라는 반응이다.
MZ 변호사 이탈도 고민거리다. 과거 메이저 로펌 변호사 위상은 판·검사에 견줘도 뒤처지지 않았다. 고된 노동에도 법조계 경력, 높은 보수 덕분에 로펌에 들어오려는 젊은 변호사가 적잖았다. 그러나 MZ세대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연봉보다는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젊은 세대는 로펌을 선호하지 않는다. 로펌 파트너변호사가 돼 수임 압박을 받느니 상대적으로 편한 업무 환경에서 법률 업무 외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업변호사가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내 변호사 수는 매년 증가세다. 한국사내변호사회 소속 회원 수는 2018년 1974명에서 2024년 3월 기준 2706명으로 37.1%(732명) 증가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젊은 변호사 유출은 물론, 중견 변호사가 본인이 자문을 담당하던 기업 사내 변호사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인재를 붙잡아둘 인사 체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8호 (2025.02.26~2025.03.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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