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19 15:47:56
박선기·윤종주·박현주·이환권 다채롭게 표현된 빛의 흔적들 종로 원서동 예화랑 28일까지
모든 예술 작품은 빛에서 태어나 빛으로 완성된다. 주어진 빛에 응답하며 태어난 세계의 또 다른 언어, 그것이 예술이다.
빛이 없다면 예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모든 예술은 사실 ‘빛의 각주’가 아닐까.
하지만 작가들이 빛을 응답하는 방식은 각기 달랐고, 저 다채로움이 예술의 풍요를 이뤘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예화랑에서 열리는 박선기·윤종주·박현주·이환권 작가의 4인전 ‘빛·흔: 라이트 트레이스’는 빛의 예술을 확인하기에 좋은 전시다. 최근 현장에서 4인의 작품들을 살펴봤다.
갤러리에 들어서면 먼저 박선기 작가의 2022년작 ‘An aggregation 20220707’이 시선을 붙잡는다.
호두알 크기의 크리스털 유닛 수백수천 개를 직육면체 큐브 형태로 나눠 허공에 매단 작품이다. 파스텔 색조의 빛감도 미학적이지만 빛의 근원에 대한 작가만의 해석과 접근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작품 주변을 걷다 보면 빛의 한가운데를 산책하는 듯한 벅찬 환시(幻視)까지 온다.
박 작가는 신라호텔 로비 상층부에 매단 황홀한 작품으로 유명한 바로 그 작가다. 호텔에서의 작품이 허공을 올려보는 형태의 감상인 반면, 예화랑에 소개된 이번 작품은 감상자의 눈높이에 설치됐기에 근접거리에서의 감상이 가능해 더 황홀한 경험울 허락해 준다. 유닛의 반복 배치라는 ‘규칙’, 하나의 색이 이루는 직육면체 큐브의 크기를 달리하는 ‘변칙’이 엇갈린다는 점도 작품의 매력이다.
박 작가는 작가 노트에서 “난 자연의 불규칙적 모습 속에 새로운 논리와 규칙을 덧입혀 시간 너머 정지된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불규칙에서 규칙을, 생명의 소멸에서 탄생을, 논리적 언어에서 시적언어를 동시에 표현하며 치우치지 않는 조화로움과 균형에 대해 성찰한다”고 설명했다.
윤종주 작가의 2023년작 ‘cherish the time-line’은 ‘색 너머의 빛’을 상상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내재한 작품이다.
일정 비율로 쌓아 올린 색들은 단순한 채색이 아니라 아크릴을 활용한 특수 물감으로 인해 표면이 기이할 정도로 매끈하다. 병렬 배치된 하나의 작품들은 색의 온도가 조금씩 달라지는데, 이 때문에 빛이 비춰오는 방향을 떠올리게 된다. 저 멀리서 비춰오는 여명 혹은 박명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들이다. 윤 작가는 “이름없는 색,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색채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자신의 세계를 응축했다.
박현주 작가의 2025년작 ‘낙화(falling flowers)’는 실제로 봐야만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점점의 붉은 빛이 흩뿌려진 듯한 묘한 느낌인데, 그것은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낙화’라는 제목처럼 처연하고 슬프다. ‘유수’ ‘천지’ ‘산수’ ‘풍화’ 등의 단어가 다른 작품들의 제목을 이룬다. 박 작가는 “빛은 자연의 근원이며 그리움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환권 작가의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오묘하다.
석양 아래 길게 늘어뜨린 인간의 그림자에 두 동공을 그려준 듯한 묘한 작품들이다. 다른 작가들이 빛을 향했다면 이환권 작가는 빛의 가장자리를 다루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 중에는 그가 폭설과 강풍으로 쓰러지고 벌목된 후 방치된 나무들을 활용한 조각상도 여럿이다. 시간이 흐르며 갈라진 사람 두상의 ‘틈’마저도 처음부터 이환권 작품의 ‘예정된 일부’였던 것만 같다.
전시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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